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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dReam hunting

한 여름의 간사이, 그리고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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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여행을 행복하게 진행하던 2011년. 급작스럽게 일이 생겼고, 일본을 가게 됐다. 6개월은 텅텅 비어있을 일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부랴부랴 귀국했고, 일본으로 떠났다. 급하면 일이 꼬인다. 간사이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어이없게도 나고야를 먼저 가야했던 슬픈 역사(?)를 뒤로 하고, 급한 업무를 무시한 채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에 입성했다.

 

그전까지 일본을 14~15차례 방문 했던 것 같은데, 모두 업무와 관련된 일정이라 관광다운 관광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정은 도쿄였다. 2010년, 기습적으로 오키나와로 도피성 휴가를 다녀왔지만, 당시에는 '언플러그드 여행'이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 속에, 사실은 나의 행선지를 들키지 않으려고 핸드폰 조차 버리고 떠난 여행이 되다보니 기념할만한 흔적을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교토에서 처음 먹은 식사. 돈까스의 일종인데 세트이며, 저 뚜겅 닫힌 그릇 안에는 미소시루가 있었다. 메뉴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여행 다녀온 직후에도 저 메뉴의 이름은 몰랐다. 메뉴판에 일본어로만 써 있었다. 사진보고 시켰다. 직원이 일어로 묻길래 영어로 대답했다. 종업원은 끊임없이 일본어로, 나는 꿋꿋하게 영어로 말했다. 밥 다 먹고 나올때까지 아무 문제 없이 그렇게 평탄하고 순조롭게 식사가 종료됐다.

 

 

 

 

사람마다 여행에서 의미를 두는 부분이나 주안점이 다를 것이다. 일정에서 양보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숙소만은 반드시 제대로 된 곳을 잡아야 한다. 밥은 지나다가 길바닥에 주저 앉아 먹더라도, 차편을 구하지 못해 하루 종일 걸어다녀도 상관없지만, 적어도 잠자는 숙소만은 아주 편하고 안전해야 한다. 그래서 교통비보다 숙박비가 많이 드는 편이다. 

 

다만, 이 때는 호텔보다 일본 특유의 다다미방에 묵어보고 싶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다다미방이다. 세계 최고의 FIFA 에이전트(가 될뻔한) 석호형이 추천해 준 '행랑민박' 이라는 곳이었다. 한인 민박이고 당시 1박에 3500엔이었다. 호텔보다는 저렴했지만 일반 민박보다는 조금 비쌌다. 약 1주일간 간사이 지역을 돌아보는 내내 이곳에 머물렀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행랑 민박을 검색해봤는데,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무척 친절하셨고, 일정을 마치고 떠나던 날, 직접 말차도 만들어 주셨었는데, 뭔가 허전한 아쉬움이 남았다.

 

 

 

 

짐을 풀고 거리로 나가려 했는데 비가 내렸다. 일하러 왔을 때는 그렇게 날씨가 좋더니, 온갖 저주와 욕설을 뒤로 하고 힘차게 놀러 왔더니 첫 날부터 비가 내렸다. 왠지 불안한 마음에 포털 사이트에서 날씨 예보를 봤더니 1주일 내내 비였다. 심지어 그냥 비도 아니고 '뇌우'다.  그래도 기다리면 잦아들지 않을까 했지만 주룩주룩 잘만 내렸다. 죽어라고 방만 지킬 수 없어 민박집 사장님께 우산을 빌려 거리로 나갔다.

 

 

 

 

교토역 북쪽 출구로 나가자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었다. 교토 서부의 최대 쇼핑몰이라는 포르타였다. 원래 쇼핑몰 같은 데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가지도 않지만, 이날은 상황이 달랐다. 비 오는 거리를 조그마한 일본 우산에 육중한 몸을 의탁하고 다니기가 힘들어서 결국 실내로 들어갔다.

 

 

 

 

거울이다. 지하 상가를 걷는데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길었다. 영등포 지하상가나 주안역 지하상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라고 혀를 내둘렀는데, 걷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데칼코마니 같은 이질감이 커지던 찰나, 계속 이어진 길이 아니라 거울로 막혀있었음을 깨달았다.

 

 

 

 

여기 저기 세일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지하상가와 세일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를 것 없었다.

 

 

 

 

중앙 홀의 천장 위로는 교토 타워가 보인다. 비가 오지 않아 지붕이 선명했으면 조금 더 깔끔한 시야가 됐으려나... 하지만 이날 이후 다시 여기를 방문하지는 않았으니...

 

 

 

 

특별할 것 없는 간판을 찍은 것은 저 맥주 때문이다.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맥주. 지금이야 일반 주점은 물론 편의점에서도 일본 맥주를 구하기 쉽지만, 2011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던 일본 맥주는 아사히를 비롯해 몇가지 종류로 한정되어 있었다. 산토리 프리미엄이나 에비수 같은 경우는 일본에 가게 되면 종종 지인들이 구매를 부탁했던 맥주였다.

 

 

 

 

파르페. 저 때에도 우리나라에서 파르페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다. 밀레니엄 무렵만해도 커피숍에서 파르페를 시켜서 자주 먹었던 나에게, 특대사이즈는 파르페는 매우 큰 유혹이었다. 하지만 일행도 없이 혼자 들어가서 저걸 시켜 먹기에는 나의 뻔뻔함이 조금 부족했다.

 

 

 

 

지하 상가 안에 스타벅스도 있는데, 줄이 참 길었다.

 

 

 

 

지하 상가를 돌아다니다가 선택한 일본에서의 두 번 째 식사는 이것. 이름은 역시 모른다. 이 또한 메뉴판의 사진을 보고 시켰다. 사실, 뒤쪽의 팥이 들어간 메뉴는 반찬인 줄 알았는데 나오고 나서 보니까 후식이었다. 반찬도 없어 달랑 이것만 어떻게 먹나 싶었지만, 먹어보니 맛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포르타의 위치는 교토역 지하다. 교토역은 정말 크다. 영등포역이나 서울역도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는데, 교토도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복잡하기로는 한 수 위 같기도 했다.

 

 

 

 

위쪽에서 내려다 본 교토역의 플랫폼. 

 

 

 

 

자붕을 보니 KTX 광명역이 떠올랐다.

 

 

 

 

교토는 일본의 전통을 상징하는 도시라서 건물을 지을 때 고도 제한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높은 전망대가 교토 타워라고 한다. 높이를 떠나 그냥 타워 자체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교토역 중앙 출구에서 본 교토타워. 전망대로 올라가려면 요금을 내야 한다.

 

 

 

 

일본은 철도의 왕국이다. 그런데 뭔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느낌이다.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참 많았는데, 여기를 지나는 기차와 전철이 너무 많아서 한참동안 노선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도쿄나 후쿠오카로 이동할 때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될 거 같았다.

 

 

 

 

 

 

여러 노선이 지나는 만큼, 신도림 역처럼 복잡했다. 안내 표지판에 한글이 적혀있는 건 반가웠다.

 

 

 

 

 

 

숙소로 돌아온 후, 잠깐 졸고 일어났더니 비가 그쳤다. 우산이 필요 없길래 다시 밖으로 나섰다. 치안이 안전한 나라는 밤에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으니까...

 

 

 

 

여기는 JR선 교토역. 정말 징하게 길고, 엄청나게 크다.

 

 

 

 

밤의 교토 타워는 이런 느낌이다.

 

 

 

 

밤 11시 정도였는데 여전히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토역 중앙 출구 앞에는 교토의 거의 전 지역에서 버스들이 모여드는 것 같았다.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곳.

 

 

 

 

길바닥에 노란 장미가 떨어져 있었다. 누가 놓고간 건지, 벼리고 간 건지... 만약 빨간 장미였다면 X-Japan의 요시키가 생각났겠지만, 하필 노란 장미라 오래 전에 헤어졌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한 꽃이 노란 장미였다. 참고로 노란 장미의 꽃말 중에는 '이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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