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신한은행'의 시대를 마치고 6년간 이어졌던 '우리은행 왕조'는 라이벌로 부상 중이던 KB가 박지수를 선발하며, 황금기에 종언을 고했다. KB가 강이슬을 영입하며 최강의 원투펀치를 구성하자, 우리은행은 2022-23시즌을 앞두고 FA 시장에서 김단비를 잡는데 성공하며, 양강체제의 높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박지수-강이슬'의 KB가 두 에이스의 무게감에서는 우위였지만, 선수 전체의 구성을 놓고 보자면, 박혜진-박지현-최이샘-김정은에 김단비까지 가세한 우리은행이 더 나았다. 김소니아가 김단비의 보상 선수로 나갔음에도 2022-23시즌의 우리은행은 독주 시절 이후 가장 강력한 구성을 갖춘 전력이었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의 핵심인 박지수가 뜻하지 않은 공황장애로 시즌을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하면서 시즌은 '양강체제'가 아닌 '독주체제'로 흘렀고, 우리은행은 왕조시대 이후 5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듬해. 박지수가 복귀한 KB에게 정규리그 1위는 내줬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3승 1패로 이기며 2년 연속 정상에 섰다. '왕조의 부활'을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전력의 구성은 이 두 시즌이 마지막이었다.
이미 베테랑 김정은은 2023년, 친정팀인 하나은행으로 이적해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2연패 이후에는 FA 시장에서 두명의 프랜차이즈 선수가 팀을 떠났다.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우리은행의 황금기를 쌓았던 핵심 주축이자, '위성우 감독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박혜진이 BNK로 이적했고, 화려한 우리은행 라인업에서 소리없는 강자로 확실한 역할을 해줬던 최이샘 또한 신한은행으로 팀을 옮겼다. 그리고 박지현마저 해외진출을 선언하면서, 우리은행은 2년 사이에 기존 베스트5 대부분을 잃게 됐다. 핵심 자원 중에는 김단비만 남았다. 김단비로서는 과거 '단비은행' 소리를 들었던 신한은행 시절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 '단비은행'이 인천에서 아산으로 지점을 옮긴 것 뿐인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이러한 부침 속에 김단비는 최고의 활약을 이어갔고, 우리은행도 무너지지 않았다. 박지수가 유럽 진출을 하며 KB의 전력에도 공백이 생기면서 양강 체제의 붕괴와 군웅할거의 순위싸움이 예상됐던 2024-25시즌. 우리은행은 유일하게 정규리그에서 20승 이상을 수확하며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비록 챔프전에서는 박혜진, 김소니아, 이이지마 사키가 가세한 BNK에게 패했지만, 우리은행은 상당한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적을 올렸고, 김단비 역시 만장일치 정규리그 MVP는 물론 베스트5와 득점상, 리바운드상, 스틸상, 블록상, 윤덕주상, 수비상 등 개인 8관왕에 등극하며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에이스의 부침
하지만 지난 시즌은 부침이 컸다. 특별한 전력 보강은 없었지만, 이명관과 이민지, 변하정 등의 성장이 기대되며 우리은행 자체 전력은 2024-25시즌보다 조금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던 지난 시즌. 우리은행은 정규리그 4위를 차지했고, 플레이오프에서 통합 우승팀 KB에게 패했다. 2012-13시즌 이후 1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역사를 이어갔지만, 위성우 감독 체제에서 가장 좋지 않은 성적과 승률 5할 실패를 기록한 시즌이 됐다. 김단비는 베스트5를 비롯해, 개인 4관왕에 올랐지만 만족스러운 시즌이 되지는 못했다. 특히 3점슛 성공률은 2년 연속으로 저조했다.
김단비를 슈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외곽슛 시도가 적은 선수는 아니다. 김단비는 3점슛 시도수에서 두 시즌 연속으로 리그 7위에 올랐고, 3점슛 시도가 가장 많은 팀인 우리은행에서도 3점슛을 가장 많이 던진 선수다. 하지만 3점슛을 성공률은 2024-25시즌에는 19위(22.3%), 2025-26시즌에는 16위(27.0%)에 머물렀다. 규정 3점슛 숫자를 넘긴 선수 중 김단비보다 정확도가 떨어졌던 선수는 2024-25시즌에는 1명, 2025-26시즌에는 4명에 불과했다. 지난 시즌에는 그나마 시즌 후반이었던 5-6라운드에 외곽이 터져 27.0%까지 확률을 끌어올렸다. 4라운드까지는 22.7%에 그쳤다.
"슛 감각이나 기량의 문제라기보다, 제 생각이 조금 잘못됐던 거 같아요. 내가 너무 밖에서 던지면, 우리 팀은 리바운드를 할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인사이드에 있어야 공격리바운드를 들어갈 수 있으니, 드라이브인을 더 해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차피 외곽에서 저한테 상대 수비가 강하게 붙는게 아니니까 쏘려고 하면 쏠 수는 있거든요. 그런데 난사가 되면 안 되고, 들어가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고 판단한거죠. 공격이 한 번에 끝나버리면 안되고, 나는 결국 인사이드에서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5라운드 이후에는 조금 바뀌었죠. 찬스라고 생각하면 그냥 올라갔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게 맞았던 거죠. 그렇게 했어야 했던거죠."

자격의 증명
김단비는 여전히 우리은행의 중심이자 주장이다. 어느덧 우리은행에서도 다섯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우리은행의 전력 구성이 다소 약해지면서 과거 신한은행 시절의 '단비은행'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자 "그때랑은 다르다"는 생각을 전한다.
"제가 처음 우리은행으로 이적했을 때, '멤버 좋은 팀에 가서 우승하면 좋으냐'는 말도 많이 들었거든요. 솔직히 멤버가 정말 좋은 팀이었잖아요. 엎어져도 우승하는 멤버라고 할 만큼 정말 좋았잖아요? 제가 MVP를 탔지만 진짜 MVP는 제가 아니었죠. 그냥 5명 전부가 MVP였던 시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선수들이 저를 위해 희생을 해줘서 제가 상을 받은 거고요. 이제 두번째 시즌부터 상황이 조금 변했죠. 어려운 시기를 겪다가 준우승 했고, 챔프전에 가서 우승을 했죠. 그래도 그때, 진짜... 어떻게든 제가 실력이 좀 올라와서 우승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사실 이건 좀 부끄럽긴 한데, 제가 그래도 여자농구 선수로서 WKBL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남기고 '업적'이라는 걸 말할 수 있는 건 그나마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힘들게 우승하고, 그 다음에는 주축 선수들이 많이 나갔잖아요. 그때부터가 저한테는 더 의미가 있는 부분이고, 그전까지의 김단비는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신한은행 시절의 김단비도 저 스스로는 좀 부끄러웠어요."
김단비 스스로 자신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는 시즌은 2024-25시즌이었다. 우리은행이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김단비는 개인 8관왕에 올랐던 시즌이다.
"'에이스'라는 평가, '단비은행'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팀을 이끌어 갈 자신이 없었는데, 우리은행에 온 후, 우승을 경험하고 주축 선수들이 빠진 상황에서 시즌을 치르면서, 김단비라는 선수가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시즌이 됐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은 기록, 어떻게 보면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 남긴 시즌이라고 생각해요."
김단비는 이미 오랫동안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선수다. WKBL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지 오래인 그가 스스로 증명해야 할 부분이 그렇게 크게 남아있었던 걸까?
"신한은행 시절의 김단비라면 증명해야할 게 너무 많았어요. 부족한 것도 너무 많았고요. 선수로서, 자기 한계를 느껴봐야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신한은행 시절의 김단비는 한계를 느껴보기 전이었어요. 여기 이적한 후에는 정말 내가 쓸 수 있는 내 몸의 모든 걸 다 쏟아낸 선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위성우 감독 체제 이후 우리은행에 뿌리내린 강한 훈련과 운동량이 한계를 극복하고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경험에 이르게 한 것일까?
"훈련과 운동량도 있고, 또 저한테 알맞게 코칭을 해주신 부분도 컸어요. 저는 못하는 걸 안하는 습성이 있고 포기가 빠르거든요. '어차피 안되는 건데 뭐하러 하나' 이런 건데... 솔직히 포스트업도 못하는 거라 안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위 감독님이 끝까지 시키시더라고요. 위 감독님이나 코치였던 전주원 감독님이 저를 어릴 때부터 보시면서 저를 너무 잘 알고 계셨잖아요. 그 분들을 다시 만나서 정말 좋은 코칭을 받았고, 제가 농구 선수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 볼 수 있게 해주신 거 같아요."
"아! 하지만 힘들었고!(웃음) 정말 힘들었다는 건 절대 뺄 수 없죠."

고난의 2025-26시즌
하지만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맞이한 지난 시즌은 결과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우선은 동기부여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좋았던 멤버들이 대거 나가고 쉽지 않은 시즌을 치르면서 정말 죽어라고 다 쏟아내고 나니까, '나 다 쏟아냈는데, 더 이상은 진짜 못하겠다. 너무 힘들다' 같은 게 조금 왔던 거 같아요. 저 스스로 동기부여를 제대로 가져가지 못한거죠."
몸 상태도 문제가 됐다. 우리은행 이적 후, 정상 다툼을 이어가며 김단비는 긴 시즌은 물론 큰 경기와 승부처에서도 결코 지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지난 시즌은 끝내 쏟아지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지쳐요. 사람인데요. 지난 시즌 보셨잖아요. 찌그덕거리는거...(웃음) 그런데 사실 작년 플레이오프때는 지쳤다기 보다 아팠어요. 그냥 그 시리즈는 아예 끝났었죠. 솔직히 너무 아파서 혼자 생각으로는 다시 농구를 할 수 없는 줄 알았어요."
"시즌 전체로 놓고봐도, 제 선수 생활 중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압박이 심했던 시즌이 작년인 거 같아요. 100%였다고 생각해요. 너무 힘들었어요. 시즌 전에 다치면서 살짝 멘붕도 왔고, 뭔가 마가 꼈는지 팀 동료들도 시즌을 치르면서 다 다치고... 저도 시즌 시작과 끝을 부상으로 때웠잖아요. 시작할 때는 팔꿈치가 거의 80% 정도 파열이었고, 끝날 때는 발이 또 그렇게 되고... 그런데, 뭔가 성적을 내고 우승을 하려면 운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전 시즌에 우리가 정규리그를 우승하고 챔프전에 올라간 건, 멤버 구성이나 상황을 볼 때 운도 많이 따라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그런데 그렇게 운을 끌어 썼기 때문에 작년에는 반대로 운이 따르지 않았던 거 같아요. 뭐, 운의 총량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제 운이 제로베이스가 됐으니 다시 시작해야죠."

새로운 동기부여
어느 새 김단비는 이제 리그 최고참 선수가 됐다. 김정은이 지난 시즌을 마치고 은퇴했고, 동기였던 배혜윤도 시즌을 마친 후 은퇴를 선언했다. 'WKBL 최고령 선수'라는 수식어에 대해 김단비는 "아~ 진짜.. 배혜윤..."이라며 살짝 짜증섞인 장난과 함께 웃음을 보였다.
"일단 최고령이라는 거는 저 말고 또 있어요. 박혜진(BNK) 있잖아요. 저 90년생이에요. 빠른 90. 혜진이도 90년 생이잖아요. 혜진이한테 이제는 '단비야'라고 불러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이번 시즌 우리은행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고 있다. 14년간 팀을 이끌었던 위성우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전주원 코치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FA 시장에서 강이슬이라는 대어를 잡으며 전력 강화에도 성공했다. 아시아쿼터 2명이 함께 뛸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되는 제도의 변경과 더불어 이들의 활약도 변수의 영역에서 조금 더 큰 영향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잘 모르겠어요. 감독님의 첫 시즌이기 때문에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즌이고, 또 잘했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감독님과 함께 팀 컬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그걸 통해 팀이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우승'이라고 목표를 잡기 보다는 (강)이슬이도 왔고, 선수들도 바뀐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단합하고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게 하나하나 쌓이고 올라가면서 우승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지금 당장 우승을 말하기보다는 우리만의 농구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이번 시즌 스스로가 가져갈 동기부여와 개인적인 목표를 마지막으로 전했다.
"강이슬이도 왔으니까 똑바로 해야죠. 이슬이가 왔는데 제가 대충할 수는 없잖아요. 둘이 잘 맞추고, 또 선의의 싸움을 할 거에요. 그래서 둘 다 베스트5를 받겠다. 뭐 그런 목표를 말하고 싶어요. 우리은행에서 베스트5 중 포워드 2명 나올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제 목표입니다."
'fAntasize | 글 > iNside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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