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BL에서 팀을 가장 많이 옮긴 선수는 누구일까? 특별히 자료를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바로 떠오르는 인물은 김보미 해설위원이다. 1986년생인 김보미 위원은 수피아여고를 졸업하고 2005 WKBL 신입선수선발회에서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우리은행에 입단했다. 이후 KDB생명(금호생명), 하나은행, KB스타즈를 거쳐 삼성생명에서 은퇴했다. 16년간 프로에서 활약하며 5개 팀에서 뛰었고, 업셋 우승으로 선수 커리어를 마쳤다. 팀의 베스트 멤버로 뛰었던 시즌은 많지 않았지만, 선수생활 내내 투지넘치는 플레이로 알토란같은 역할을 했다. 4번의 이적 중 김보미 위원이 스스로 선택한 것은 단 한 번. FA 자격을 얻어 KDB생명에서 하나은행(KEB하나)으로 옮긴 것이 유일하다. 첫 이적은 팀이 2:3 트레이드를 결정한 것이었고, 마지막 두 번은 FA 선수가 이동하면서 보상 선수로 이적했다. 많은 팀에서 활약했지만, 그 이적이 자의였던 것은 한 번 뿐이었다.
에이스급 선수 중에서 이동이 많았던 선수는 정선민 전 하나은행 코치를 꼽을 수 있다. 농구대잔치 시절 SKC 소속이었던 그는 프로 출범과 함께 신세계에서 활약했고, 2004년 KB로 이적했다. 2007년에는 신한은행에 합류하며, '레알 신한은행 왕조'의 한 축을 이뤘고, 2011년 KB로 복귀해 WKBL 커리어를 정리했다. 미국과 중국에서의 커리어를 제외하면 프로에서 3팀에서 뛴 것인데, WKBL 출범 당시부터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음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동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WKBL은 트레이드가 흔한 리그는 아니다. 선수 풀이 넓지 않은 가운데 6개 구단, 전체 선수의 폭은 100명 안팎이기에 트레이드가 활발하지 않았다. 공격적인 영입보다는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보수적인 분위기도 한 몫 했다고 본다. FA 역시 극히 폐쇄적이었고, 1-2차 FA의 구분으로 2020년 이후 선수들의 이동 가능성을 높였지만, 기본 골격은 물론 상당히 빡빡한 보상선수 규정 등은 여전히 WKBL이 선수 이동과 관련해서는 매우 허들이 높다는 걸 느끼게 한다. 특히, 에이스, 주력 선수급의 이동은 더 쉽지 않다. 이름값이 높은 선수일수록 원소속 구단의 적극성은 높을 수밖에 없고, 선수들 또한 팀을 옮기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구조에서 에이스의 이름을 달고도 두 번이나 팀을 옮긴 선수가 등장했다. 강이슬이다. 삼천포여고를 졸업하고 2013년 전체 1순위로 하나은행에 입단한 강이슬은 리그 최고의 슈터이자,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2021년, FA 자격을 획득해 KB로 이적한 강이슬은 염원하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화려한 5년을 보냈고, 지난 달 우리은행으로의 두 번째 이적을 선택했다. 데뷔 이래 4번의 FA 자격을 획득 했고, 이중 2번은 잔류, 2번은 이적이었다. FA 제도 변경으로 주력 선수의 이동 가능성이 높아진 2020년 이후, 실제로 이적을 선택한 첫 번째 최대어이기도 하다.

대형 FA 이적의 개척자
"재밌었어요. 저도 많이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다른 어린 선수들도 굉장히 많이 성장을 했고, 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김완수) 감독님도 감독님으로서 굉장히 많이 성장을 한 것 같고, 팀(KB)이 전체적으로 많이 한 단계 올라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냥 즐겁게 시즌을 치렀던 것 같아요. MVP를 받지는 못했지만,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누가 받아도 축하할 수 있었어요. 정규리그와 챔프전에서 MVP를 받은 (박)지수와 (허)예은이한테 축하한다고 다시 한 번 전해주고 싶어요."
강이슬이 돌아본 지난 시즌이다. KB를 이끌었던 허(예은)-강(이슬)-박(지수) 트리오는 리그 최강의 트라이앵글이었고, 자신의 자리에서 리그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세 명의 선수가 팀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박지수의 부상 결장이라는 치명적인 상황에도 KB는 챔프전을 3경기 만에 여유롭게 정리했다. 박지수와 허예은이 각각 MVP를 들어올린 것과 달리 강이슬은 내심 기대했던 명예로운 개인 트로피를 챙기지는 못했다. 김완수 감독도 "모든 선수들이 열심히 했고, MVP를 받은 선수들 모두가 그 자격을 갖췄지만, 사실 (강)이슬이가 지금의 팀이 갖춰지고 (허)예은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양보도 많이하고 희생도 많이했다. 우리 선수들 모두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정말 기쁘게 생각하는데, 이슬이가 MVP를 받지 못했다는 부분만 놓고 생각하면 아쉬움도 크다"고 말했을 정도.
"그러게요. 기자님들이 저를 너무 안 예뻐하시는 거 아니에요?"
"운이 없다기보다 그냥 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다보니 당연히 받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아쉬운 마음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 결 편해지더라고요. 지수, 예은이 모두 그 상에 어울리는 활약을 했고, 우리 팀 모두가 잘했으니까..."
큰 웃음으로 통합 우승의 기쁨과 약간의 아쉬움을 털어낸 그에게 본격적으로 FA의 시간을 물었다.
벌써 4번. 1차 FA였던 첫 FA 때는 당연히(?) 친정인 하나은행에 잔류했다. 두 번째 FA 자격은 그를 KB로 이끌었고, 세 번째 FA때는 KB 잔류를 선택했다. 당시 강이슬은 "다른 팀으로부터 연락이 하나도 없었다"고 쿨하게 말했다. 그리고 네 번째 자격을 획득한 지난 달. FA 시장이 열린지 8일 만에 전격 이적을 선택했다. KB와 가장 뜨거운 라이벌리를 이어왔던 우리은행으로 대한민국 현역 최고의 슈터가 소속을 옮겼다.
"이번 FA 기간 중에 식사라도 한 번 하자면서 의향을 보여주신 팀은 KB 포함해서 4팀이었는데, 실제로 제안을 주신 팀은 KB랑 우리은행이었어요."

5월 1일, 우리은행의 새벽 급습
강이슬의 이적 스토리는 이미 언론에 다 알려졌다. FA 시장이 열리던 5월 1일 자정이 됨과 동시에 울린 전주원 우리은행 신임감독의 전화와 바로 이어진 첫 미팅. 그리고 일본까지 날아간 영입 작전이 그것.
"사실 자정 딱 될 때 '누구든 한 분 정도는 연락을 주시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시겠지만, 제가 KB로 옮길때도 당시 국장님이 딱 시간이 되자마자 미리 작성했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셨었잖아요. 나를 간절히 원하는 팀이 있다면 연락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제 에이전시 대표님도 '혹시 모르니까 안 자고 있겠다'고 하셨거든요. '연락 안 오면 말지'하고... 뭐 불 끄고 잘 준비해야겠다 하고 침대로 가고 있는데 그때 전주원 감독님께 전화가 온 거에요. 받자마자 '내려와~ 지금 밑에 있어, 주차장이야'라고 하셨어요. 그때 조금 깜짝 놀랐어요. 새벽에 직접 오실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좋게 보면 적극적인 성공 스토리지만, 색안경을 끼면 뭔가 음습한 스토리다. 우리 집 앞에 이미 접근해 있던 스토커쯤 되려나? 강이슬도 "제 개인 정보가 노출된 것"이라며 웃었다.
"(전주원) 감독님이 간절하면 다 알아낼 수 있다고 장난처럼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그때는 그걸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이렇게 너를 원한다'라고 하시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 새벽에 카페에 이동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번 FA가 시작되기 전, 강이슬이 생각하고 있던 기준은 자신의 성장 가능성이었다. KB에 잔류하면 지금의 흐름을 이어서 진정한 '왕조 건설'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다른 팀으로의 이적은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더 발전시켜야 하는 숙제였다. 둘 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누구나 그랬듯이 잔류를 기본으로 둔다는 생각도 있었고, 비교적 늦은 나이에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 '성장의 맛'을 보고 나니, '선수 강이슬' 자체의 도약도 머리에 남았다. 그런 강이슬에게 우리은행은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자정 습격에도 '관심의 표현'에 그치지 않고, 세부적인 제안을 동반했다.
"그날 다 이야기하셨어요. 저도 제 입장을 말씀드렸거든요. 해외진출... 미국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 도전이 정말 나한테 중요하다는 것도 말씀드렸는데, '그런 조건과 계약 기간을 다 정리해 왔다. 마음에 드는지 봐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금액 외에 해외 진출 같은 부분 때문에 부가적인 부분이 많은데, 그런 조건까지 다 준비를 해서 오셨어요. 놀랐죠. 이 시간에 오신 것도 그렇지만, 첫 날 첫 만남인데 제 니즈에 대해 정말 많이 파악을 해서 제안을 해주셨으니까요. 그렇게 자리가 끝난 게 1시를 좀 넘었을 때였던 것 같아요."

KB의 역습
우리은행의 위력적이고 효과적인 선공. 이제는 KB의 후공이다.
사실 KB의 발걸음도 우리은행에 뒤지지 않았다. 5월 1일 자정. KB의 김완수 감독 역시 강이슬에게 연락을 했다. 강이슬은 "내려오라는 전주원 감독님이랑 통화를 끝내고 나니 김완수 감독님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고 했다. 장문의 메시지였는데,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우리은행과 만나고 돌아와서 확인했다고 한다. 이미 새벽이라 답장은 자고 일어나서 보냈다. 강이슬은 "KB랑도 협상을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김완수 감독님이 제가 필요하다고 정말 진정성이 느껴지는 문자를 보내주셔서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김완수) 감독님하고 10년이에요. 하나은행에서 코치로 5년, KB에서 감독으로 5년. 감독님이 선수한테 일대일로 본인 마음 같은 걸 잘 표현하진 않으시거든요. 저도 오해를 한 적도 있고 상처를 받은 적도 있어요. 서운한 것도 많죠. 그런데 고마운 것도 정말 많거든요. 속상한 것들은 우승하는 순간 그냥 다 없어졌어요. 저도 나이 먹고 그러니까 그런게 부질없고, 지나가면 추억이고 그런 거 같더라고요."
KB와의 만남은 이튿날인 5월 2일이었다. KB 구단 사무실에서 만남을 가졌다. 강이슬은 솔직하게 1차 조건에서 우리은행이 더 좋았다고 전했다. 장기계약을 원했던 부분부터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놀랍도록 조합되어 있었던 점에서 우리은행이 우세했다.
"(박)지수랑 저랑 동시에 FA였잖아요? 그리고 그 외에도 FA가 된 선수들이 많았고... 그래서 KB가 제 니즈를 완전히 맞춰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소속 구단의 제안이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우리은행의 제안이 조금 더 좋았던 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우리은행이 우위에 섰던 것은 여기까지의 이야기. KB의 본격적인 반격은 이후에 펼쳐졌다.
강이슬은 첫날 우리은행과 만났고, 이후 우리은행과의 협상은 강이슬의 에이전트가 진행했다. KB 또한 2일에 처음 강이슬을 만났고, 3일에는 강이슬의 에이전트를 만났다. 강이슬은 두 구단과 한 차례씩 만난 후, 고향인 사천으로 내려갔기에 이후의 진행 상황을 에이전트에게 진행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KB는 3일, 강이슬의 에이전트를 만난 후 늦은 밤, 김완수 감독과 구단 프론트가 직접 사천으로 내려와 강이슬과 새벽까지 다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사천에 머물며 강이슬에게 공을 들였다.

강이슬의 여행 변수
뜬금없이 등장한 변수는 강이슬의 여행 일정이었다. 불쑥 튀어나왔다기보다, FA 시작부터 미리 기다리고 있던 분기점이었다. 강이슬은 5월 5일부터 2박 3일간 일본 후쿠오카로 가족 여행을 잡아놓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챔프전 끝나고 48시간 뒤부터 FA 협상이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 끝나고 4월 말부터 협상을 시작해서 일주일 정도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 주에 사천으로 가기로 했으니 그 때 여행을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근데 계획 다 잡고 예약했는데, FA 시작이 5월 1일이라는 거에요... 취소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많이 당황했어요. 구단들도 저를 진짜 개념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 같고, 갑질하는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이상, 강이슬의 변명이다.
아무튼 FA 기간 한 가운데에 삐쭉 자리잡은 강이슬의 여행 일정은 KB와 우리은행 모두에게 변수였다. 사천까지 직접 이동한 KB는 조건을 수정하면서 보완했고, 5월 4일에도 강이슬과 김완수 감독의 약속이 잡혔다. 하지만 하필 그날, 주변으로부터 숱한 연락이 쏟아졌고, 지인들과 주변인들 사이에서 잔류와 이적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강이슬에게 전해졌다. 아침부터 계속 이어진 전화의 홍수 속에 강이슬은 부득이하게 김 감독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김완수 감독은 강이슬을 보지 못하고 '신한 SOL Bank 2026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 통영대회'를 보기 위해 이동했다.
"뜻밖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김 감독님께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양해를 구했어요. 그런데 저 출국하는 날, 공항에 감독님이 커피 2잔을 들고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사실, 그날 비행기가 지연이 되서 예정보다 좀 여유있게 공항에 나갔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그걸 알 수가 없으시잖아요? 뜨거운 커피가 다 식었더라고요. 너무 죄송했어요. 여행 잘 다녀오라고 하시면서 커피를 주시고 가셨는데,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하고.. 그랬죠."
결국 최종적인 제안 조건은 우리은행과 KB가 대동소이했고, 어떤 부분은 KB가 더 낫기도 했다.

결정
당초 강이슬은 일본에서 돌아온 후 최종적으로 결정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도착해서도 에이전트 대표와 계속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여행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에이전트 측에서는 "결정을 빨리해도 상관없고, 반대로 끝까지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결국 강이슬은 결국 5일 밤, 6일 새벽 사이에 어느 정도 마음을 잡았다. 여러 조건과 다양한 변수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도전'에 마음이 조금 더 기울었다. KB에 남는다면 더 안정적인 상황에서 우승에 도전하며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반대로 그 과정에서 스스로 나태해질 수 있다는 경계가 있었다. 금액과 조건보다는 그 부분이 더 큰 기준이 됐다. 그리고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는 전주원 감독의 연락도 마음을 움직였다.
"도쿄 올림픽 때 좋은 기억이 많았어요. 물론 대표팀이랑 소속팀은 다르겠지만, 올림픽 때 전주원 감독님이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아 있어서, 감독님께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강이슬은 에이전트 측에 "어느 정도 마음을 정한 거 같다. 우리은행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간다"라고 했다. 에이전트는 이 부분을 우리은행에 전달하며, 강이슬이 한국에 돌아온 뒤 한 번 더 정리해서 연락을 하겠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우리은행이 "마음을 정했으면 당장 사인을 해야하지 않냐"며 바로 일본행에 올랐다.
전주원 감독은 "FA 전력 보강이 필수인 상황이었고, 강이슬을 데려오는 게 간절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기에 바로 도장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바뀌기 전에 잡아야 하니 바로 일본으로 간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강이슬의 우리은행 이적이 결정됐고, 강이슬이 일본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8일 오전, FA 이적이 발표됐다.

만약에...
지나간 일에 대한 가정은 의미 없는 짓이다. 그래도 '만약'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만큼 타임슬립으로 가능성을 되감아 보는 상상력은 달라질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만약, 5월 1일 자정에 강이슬이 전주원 감독의 전화를 받기 전, 김완수 감독의 메시지를 먼저 봤다면... 아니면 김완수 감독이 메시지가 아닌 전화를 선택해 전주원 감독보다 먼저 통화에 성공하고, 그 통화로 인해 전주원 감독이 강이슬과 자정의 첫 통화를 하지 못했다면, 이 FA의 결과는 달라졌을까?
"모르죠. 그만큼 저에 대한 KB의 간절함이라고 제가 느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결국 이것 저것 진행과정을 다 돌아보면, 저로서는 이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선택지가 두 군데 뿐이었고, 그걸 놓고 고민하다가 제 기준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은행이랑 계약했는데, '아 그게 아니었나보다'라고 생각하면 뭐 어쩔건데요... 저에게는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최선의 선택 후에는 지나온 일의 정리도 필요하다. 우리은행과 최종 계약을 하기 전, 강이슬은 김완수 감독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김완수 감독은 강이슬이 프로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지도자다. 강이슬은 "10년 동안 같이 있으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서 애증의 관계인 것 같다"면서도 "김 감독님께는 정말 감사한 게 많다. 사실 아직도 일본으로 출국하는 공항에 커피를 들고 나와 계셨던 모습이 떠올라서 이 결정이 참 죄송하다"고 말했다.
"감독님께도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반 농담처럼... '감독님도 더 좋은 감독님이 되셨으니까 이제 선의의 경쟁을 합시다'라고 했는데 '난 너랑 헤어지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어'라고 하시는 거에요. 정말 아쉬워하신다는 게 느껴져서 더 죄송했죠. 자주 연락하자고는 했는데 제가 이적한 거라 먼저 연락드리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또 연락을 주셔서 밥 한 번 먹자고 하시더라고요. 아직 약속을 잡지는 않았는데 좋은 거 사주시겠죠? 이번에 최고 대우 받으셨다고 하던데요..."
팀에서의 역할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주전 슈터가 KB에서는 4번은 물론 센터 백업에 궂은일까지 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화하지 못한다는 것. 데뷔 당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가 될 제목'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강이슬은 하나은행에서 최고의 슈터로 성장했고, KB에서 시즌을 치르며 점점 내외곽을 오가고 리바운드와 궂은일을 병행하는 변화를 가져갔다. 결국 KB보다는 슈터로서의 장점을 더 몰아줄 수 있는 팀에 강이슬이 끌릴 것이라는 지적이 등장한 것이다.
"글쎄요. 사실 WKBL에서 제 사이즈의 피지컬이면, 어느 팀을 가도 4번을 봐야하는 시간이 있어요. 롤에 대한 불만은 없었어요. 제가 주구장창 5번으로 뛴게 아니잖아요. 슛을 던지지 않는 5번도 아니었고... 마지막 시즌은 풀로 4번을 뛰었지만 그러면서도 팀에서 제 장점을 살려주려고 했고, 선수들도 그 부분을 살리려고 움직였어요. 계속 말씀드리지만 성장과 도전이라는 스스로의 갈증이고 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지, 롤에 대한 불만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강이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자 하는 전주원 우리은행 감독 역시 강이슬의 골밑 활용 또한 장점이라고 언급했다. "리그 최고의 슈터이기도 하지만, 포스트업과 인사이드 공략, 리바운드 가담도 강이슬의 확실한 강점인데 이걸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면서 "이런 부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할 것"이라 덧붙였다.

쉬운 여자(?) 강이슬
대어가 등장하는 FA 시장에는 숱한 소문이 돈다. 이번에 강이슬을 두고는 '김단비가 이미 작업을 마쳤다. 무조건 우리은행으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니.. (김)단비 언니가 작년부터 팬들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강이슬 내년에 올 거야. 꼭 와야 돼. 내가 어떻게든 데려올 거야'라고 말을 한 거에요. 그냥 말만 그렇게 하는거죠. 장난인 건데, 언니가 계속 주변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제가 '그런 게 지라시를 만드는 거'라며 그만 하라고 막 그런 적도 있거든요. 그게 소문으로 돈 게 아닌가 해요."
2021년, 강이슬이 KB로 옮길 당시에도 FA 거취를 놓고 고민하던 강이슬에게 박지수가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강이슬은 두 번의 FA 이적 모두, '①가장 먼저 연락을 준 구단 ②팀의 에이스가 연락을 한 구단'을 선택했다. 핵심 선수를 앞세워 가장 먼저 연락하는 게 강이슬 공략의 포인트였던 것일까?
"그런데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가장 먼저 연락을 구단에서 주고, 그 팀의 핵심 선수가 관심을 준다는 건, 그만큼 나를 간절하게 원한다는 거잖아요. 물론 그럼에도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협상하는 동안 '이 팀이 정말 나를 원하는 거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체감이 확 다르다고 생각해요. 팀을 옮기면 새로운 동료들과 적응도 해야하고, 분위기나 이런 부분에서 다른 부분도 있을 수 있는데, 그 팀의 선수가 그렇게 연락을 주면 그런 부분의 위험이랄까? 그런게 미연에 방지되는 상황이잖아요. 저 뿐 아니라 누구나 비슷할 거 같아요."
하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소문은 어디나 많잖아요. 롤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것고 소문이고... '공주 농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뭐 KB에서 불화설? 그런 얘기가 나왔던 것도 어이 없고... 우리은행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받아서 이적하는 거라는 것도 틀리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는 말이 있는데... 연기 나던데요? 맞는게 하나도 없어요."

남기고 가는 기억
"KB에서 좋은 기억이 많죠. 선수들이랑 연락도 했고요. 사실 (성)수연이, (송)윤하, (고)리미는 제가 예뻐하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그랬거든요. 이적 기사가 나갔을 때 전 자고 있었는데, 그 기사가 나가니까 얘들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런데 미안해서 답을 못하겠는 거에요. 개인적으로 예뻐했던 애들이고, 얘네가 성장해서 쭉쭉 올라올 때 옆에서 도와주면서 같이 농구하면, 내가 은퇴할 때 쯤에는 얘들이 더 좋은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갖고 있었거든요. 오후 쯤 돼서야 답을 했던 거 같아요"
여행 하루 전, 이적과 잔류를 놓고 많은 조언의 의견을 줬던 이들 중 강이슬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었던 것은 염윤아였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구단으로부터 코치 제안을 받았다고 전한 염윤아는 코치가 된다면 팀 내에서 자신이 강이슬에게 줄 수 있는 도움과 여러가지 부분들을 이야기했고, 그로 인해 조금 더 제안 받은 FA 조건을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언니의 그런 이야기들이 진짜 확 끌렸어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고 힘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지... 평온한 바다에 괜히 돌 던지고 싶은 뭐 그런..? 새로운 곳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쪽으로 기울어 진거죠. 그런데 뭐... 윤아 언니는 '결국 안 남고 갔잖아. 그럼 됐어'라고 할 거에요. 아시잖아요. 언니 완전 쿨 한거..."
2021년 강이슬이 KB에 합류하며 KB는 박지수와 강이슬로 최강의 내외곽 원투펀치를 구성했고, 허예은이 성장하며 '허강박 트리오'를 앞세워 리그에 군림했다. 연속 우승으로 새로운 왕조를 탄생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5번의 시즌 중 3번의 정규리그 우승과 2번의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다. 박지수가 공황장애와 부상 등으로 정상가동 되지 못한 2022-23시즌, 해외 진출로 자리를 비운 2024-25시즌을 고려하면, 박지수와 강이슬이 정상적으로 치른 시즌은 모두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잠깐 나태해진 시기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KB가 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갔고, 저도 우승이 가장 간절했던 시기였고, 서로의 니즈가 잘 맞았고, 지내는 동안의 미련은 없는 거 같아요. 아쉬움은 남을 수 있죠. 통합 우승을 두 번 밖에 못했으니까... '그 좋은 멤버로 조금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조금 더 열심히 할 걸'같은 미련은 없는 거 같아요. 중간에 잠깐 주춤하던 시기에 스스로 마음을 잡지 못해 좋지 못했던 시기는 있었을지언정, 마지막에 정말 쏟아부을 만큼 쏟아부었고, KB에서 뛰고 싶은만큼 여한없이 뛰고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만큼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 행복했어요. 누구나 항상 행복하지는 않잖아요? 살아가다보면 다 굴국이 있는데, KB는 제 인생에서 하나의 변곡점이었는데, 그래도 꽤 높은 변곡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행복지수가 상당히 높았던... KB에서의 5년은 정말 행복했어요."
내외곽의 원투펀치로 최강의 듀오를 이뤘던 박지수와의 호흡도 이제는 국가대표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됐다. 이들의 조합 역시 5년간 통합 우승 2회이기에 기대에 못미쳤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박지수와 강이슬이 함께 뛴 경기에서 KB는 73승 11패, 86.9%의 승률을 기록했다.
"(박)지수랑 같이 뛰는 건 정말 재미있었어요. 지수가 건강상의 이유로 몸이 완전한 상황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몸 상태일 때는 정말 대단하거든요. 이적 후 처음 우승할 때, 지수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압도적이었어요. 통합우승은 못했지만 정규리그를 차지했던 2023-24시즌 때도 정말 대단했고요. 그런 지수랑 같은 팀이어서 너무 즐거웠어요. 지수가 핸드오프 상황에서 저한테 어시스트 패스를 만들어 줄 때 좋았다고 했는데, 저도 그게 정말 좋았어요. 살짝 아쉬운 건, 제가 지수한테 볼을 투입할 때는 빅투빅이니까 내가 주면 잡고 내려오지 말고, 앨리웁으로 그냥 쏘라고 그랬는데, 그걸 잘 안하더라고요. 저는 그거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런 멋진 하이라이트 필름을 더 많이 만들고 싶었는데... 지수랑 같이 뛰면 이런 것들도 생각하고 기대하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청주 홈팬들에 대한 기억은 강이슬이 절대 두고 갈 수 없는 강렬한 추억이다. WKBL 5개 팀에서 뛰어봤던 김보미 위원은 과거 "청주 팬들을 내 편으로 등 뒤에 두고 청주에서 뛰는 그 기분은 KB에서 뛰어보지 않은 선수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벅찬 느낌"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강이슬도 강하게 동의했다.
"3쿼터 끝나고였나? 응원가가 나오다가 갑자기 반주가 꺼져요. 그러면 팬들이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는데, 진짜 소름이 돋아요. 그 기분은 KB 선수가 아니면 느낄 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응원하고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러준다는건 모든 선수들이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게 느끼는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청주는 뭔가 달라요. 가족 단위 팬들이 많아서 아기들이 시간이 지나 조금씩 자라서 경기장에 오는 모습도 눈에 보이고요. 돈독함이 있고, 선수로서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복하죠."
이제는 그 청주의 팬들을 등 뒤에 두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봐야 한다.
"어... 저 KB에서 할만큼 했잖아요? 열심히 뛰었고, 최선을 다했고, 통합 우승도 했고..."
웃으며 대답한 강이슬이 KB에서의 기억을 짧게 갈무리 했다.
"비록 이적을 결정했지만 '5년동안 KB에서 최선을 다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팬들도 많이 계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솔직히 응원을 받다가 청주 팬들을 상대로 경기 한다는 걸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힘들겠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벌써부터 미리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은행 팬들도 아산에서 그에 맞게 열정적인 응원을 해주실거고, 저는 어딜가든 최선을 다해야죠. 그런데 청주 팬들이 저한테 야유를 심하게 보내거나 하시면... 음... 스포츠에서 당연한 부분이니까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조금만 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정이 있잖아요~"

우리은행의 강이슬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챕터다. 하나은행의 강이슬은 프로 입단 후 루키에서 에이스로 올라섰고, KB에서의 강이슬은 정점에 선 슈터이자 만능 선수로 최강 전력의 한 축이 되면서 염원하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서른 두살, 이제는 베테랑을 넘어 노장 소리를 들을 문턱에 접어든 강이슬은 여전이 '대한민국 최고의 슈터'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은행에서 또 다른 챕터를 시작한다.
"KB에는 경기에서 구심점이 될 선수, 경기에서 역할을 해줄 선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보니, 농구 자체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모으고 다독이면서 언니 역할을 하는 게 필요했어요. 그런데 우리은행은 KB에 비해 가용 인원이 많은 상황은 아니잖아요. 저 스스로 몸 관리, 부상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아요. 어쨌든 저도 나이를 더 먹어가니까요. KB에서보다 플레이 자체에서 할 일도 더 많아질 거 같아서, 수비나 동료를 활용하는 부분도 더 준비를 해야될 거 같아요. 또, 우리은행이 슈터가 필요해서 저를 데려왔는데 슛이 안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제가 잘하는 것도 더 잘 할 수 있게 안정감 있게 만들어야 될 것 같고,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됐으면 좋겠어요."
내용이 좋아도 결과가 따라와야한다. 대형 FA로 이적을 한 선수에게는 팀 성적과 관련해서도 큰 책임이 있다. 우리은행에는 김단비라는 확실한 중심이 있지만, '단비은행'이라는 별칭의 무게가 짓누르던 어려움을 강이슬이 분담하며 결과까지 도모해야 한다.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이 이끌던 지난 14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그 화려한 전공을 최전선에서 보좌했던 전주원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FA의 이동과 더불어 아시아쿼터 제도의 변화까지 동반한 다음 시즌은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은행도 전력 보강에 성공했지만, 다른 팀들의 동향도 만만치 않다. 전주원 감독조차 새 시즌의 목표에 대해 "섣부르게 이야기 할 단계는 아니다. 차근차근 준비해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강이슬은 어떨까?
"'이루어야 할 목표'라고 하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도 새롭게 도전하는 출발선에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진짜 불확실하고 확률도 높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해보고 싶은 건 있어요. 제가 KB 이적 첫 해에 통합 우승을 했던 것 처럼, 우리은행에서도 이적 첫 해에 통합 우승을 해보고 싶어요. 물론, KB도 너무 강하고, BNK도 강하고, 신한은행도 선수 영입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압도적이지 않죠. 오히려 떨어진다고 보실 거 같아요. 하지만 공은 둥글고, 결과는 까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그냥 통합 우승을 목표 삼아서 동기 부여를 하고 싶어요. 이적 하는 팀마다 바로 통합 우승을 시킨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요. 그리고 아직까지 받아보지 못한 MVP도 도전하고 싶고요. 선수 개인으로서, 팀으로서 가져갈 수 있는 가장 큰 꿈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목표로 잡아놓으면, 제가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며 도전하지 않을까요?
'WKBL 최고의 슈터'가 되어 '리그에서 가장 어린 에이스'의 역할을 수행했고, '초대형 FA 이적의 개척자'가 되어 자신이 소원했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대한민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강이슬의 다음 목표는 WNBA 도전과 함께, 당면한 다음 시즌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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