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한 10년 정도 전.. 아니 8-9 전이었을까? FA 제도가 현행 상태로 바뀌기 전이었을 시점이다. 쉽게 말해 원소속 구단이 최고액(3억)을 제안하면 FA를 획득해도 팀 이동이 제한되던 시절... 지겹도록 몇년동안 FA 제도에 문제가 있고, 심각한 오류라고 외롭게 주장하던 때였다. 농구를 잘하면 잘할수록 이동할 방법이 없어지는 제도. '에이스'를 큰 힘 들이지 않고 우리팀 창고에 박제할 수 있는 이상한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어떤 관계자에게 '그런 기사, 구단들이 매우 불편해 한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FA제도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혹은 적극적으로 WKBL 회의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던 시기. 그럼에도 번번이 기존의 벽에 부딪히던 시기였다. 제도가 아니라 족쇄에 가깝다는 의견에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여긴 안 된다. 절대 이거 안 바뀐다. 생각들이 없다. 바뀌려면 KB가 통합 5연패 정도 해서 나머지 팀들이 담합하면, 박지수 FA 될 때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라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틀렸다. 차츰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2020년, 현행 제도와 같은 형태로 변화가 생겼다. 처음 FA 권리를 획득할 때는 기존과 같지만, 선수가 FA 권리를 두 번째로 행사하게 되는 시점부터는 원소속 구단의 최고액 제안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물론 처음부터 깔끔하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초반에는 지킬 것이 많은 관계자로부터 원망섞인 짜증도 있었다. 괜히 멀쩡한 제도를 손 봐서 구단 운영만 힘들게 했다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전력의 균형이 영원하지 않는 상황이 마련되면서 어느 정도 분위기는 바뀐 것 같다. 그리고 FA 제도가 바뀐다면, 그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박지수가, 드디어 2차 FA 권리를 획득하며 시장에 나왔다. FA 제도의 변화를 이끌지는 않았지만 WKBL 역사상 최초의 연봉 5억원 시대를 열었다. 아마도 박지수가 단독으로 최고 연봉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박지수 무용론의 그래프
박지수는 대체 불가의 자원이다. 기량과 높이로 본인이 갖고있는 본연의 가치도 높지만, 리그에서 정상적으로 맞설 수 있는 대항마가 없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비대칭 전력이다. 박지수 한 명의 유무는 팀이 우승 후보에서 플레이오프 도전권까지 평가가 엇갈리게 되는 엄청난 변수다. 그런데 2025-26시즌에는 이 절대적 신뢰에 물음표가 생겼다. 시즌을 통으로 부상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박지수에게 부상 딜레마가 따라다닌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작년 튀르키예에서 뛸 때도 부상으로 인한 부침이 있었다. 리그로 복귀한 지난 시즌은 정규리그 개막을 앞두고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 "나이를 먹다보니 몸이 아프다"는 발언을 하면서, 대부분 박지수보다 나이가 많은 참석자들 사이에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부상에 대한 고민이 엄살은 아니었다. 튀르키예에서도 부상으로 고생했던 박지수는 비시즌, 국가대표로 차출됐을 때 어깨를 다쳤고, 개막 무렵에는 다른 팀과 연습 경기 과정에서 정강이를 다쳤다. 나을만 하면 다치고, 나을만 하면 다치는 상황이 이어지며 미디어데이에서 부상과 몸관리에 대한 고민을 언급한 것.
말이 씨가 된 것일까? 박지수의 부상 불운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컨디션을 조금씩 끌어올리던 시점에 신우신염에 걸려 한동안 결장해야 했다. 팀에서 배려를 해준다해도 시즌 중인만큼 마냥 여유를 두고 몸을 만들 수는 없었다. 복귀했지만 이후에도 팔에 미세 파열이 생기고, 무릎 부상도 당하면서 한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다. 시즌 말미, 컨디션이 완전히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현재의 몸상태에는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의 정규리그 역전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정규리그 6경기를 결장했지만 개인 통산 5번째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다. '바스켓퀸' 정선민에 이어 박혜진(BNK)과 최다 정규리그 MVP 부문 공동 2위에 올랐다. 4라운드와 5라운드 MVP를 차지하며, 라운드 MVP는 총 20회로 이 부문 역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지수는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3경기 평균 22분 34초를 뛰며 20.7점 9.7리바운드 2.3어시스트로 팀의 3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챔프전을 준비하다가 발목에 큰 부상을 입었고, 시즌을 마치게 된다. 결국 부상으로 시작해 부상으로 끝난 시즌이 됐다. 통합우승에도 불구하고 박지수가 돌아본 2025-2026시즌의 회상은 아쉬움이었다.
"아쉬움. 아쉬움이 많이 남죠. 시즌 전부터 정상적인 몸 상태로 시작하지 않았는데, 사실 이전에도 그랬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스스로한테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부분이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시즌 마무리까지 좋지 않아서 그냥 너무 아쉬운 시즌인 것 같아요. 한 가지 부상이 오래갔으면 모르겠는데, 정말 온 몸을 돌아다니면서 여기 저기 부상이 나왔고... 저는 운동선수가 준비가 안됐다는 것 자체로 선수로서 기본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았고, 유독 속상했던 시즌인 거 같아요."
박지수가 절대적인 선수라는 것은 리그 최고 가드 허예은과 최고 슈터 강이슬을 보유했던 KB가 박지수의 유무에 따라 성적이 요동치면서 그 위상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다소 변화가 생겼다. 박지수의 부재에도 팀이 무너지지 않았고 버티는 힘이 생겼다. 허예은의 완벽하게 반열에 오르며, 강이슬-허예은의 축이 강화된 점, 송윤하와 이채은의 성장, 2년 연속 잘 뽑은 아시아쿼터 선수 등 여러 요인이 있었고, 김완수 감독도 팀을 이끄는 능력이 더 나아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박지수 없이 2024-25시즌을 치르면서 박지수에 대한 의존을 벗어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KB가 박지수를 선발이 아닌 교체로 투입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적응만 하면 박지수 없이 하는 농구가 더 위력적일 수 있다'는 시선이 등장했고, 설득력도 얻어갔다.
하지만 하나은행의 돌풍으로 막판까지 치열했던 순위 싸움 속에 박지수의 가치가 다시 증명됐다.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확률높은 상대 공략은 역시 박지수의 몫이었다. 박지수가 라운드 MVP를 차지했던 4-5라운드에 KB는 본격적으로 순위 따라잡기에 나섰고 역전 우승을 했다. '박지수 없어도 큰 문제는 없다'라는 의견은 시즌 개막이 조금 지난 시점에 고개를 들어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가 시즌 말미로 가면서 잦아들었다.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는 박지수의 위력을 여과없이 보여준 시리즈였다.
그러나 박지수가 부상으로 나서지 못한 챔피언 결정전에서 KB가 삼성생명을 완벽하게 제압하자 KB의 통합 우승 결말과는 반대로 '결국 박지수 없이도 가능하다'라는 목소리가 또 높아졌다. 사실 '무용론'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 '대단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하는 쪽이 옳다. 아무튼 KB의 우승과 함께, 이전에는 주류 의견의 테이블에 올려지지도 못했던 'WKBL에서 박지수의 위력'이라는 주제가 이슈로 등장했다.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 강자라는 의견에 반해 인저리 프론, 혹은 28살임에도 어려서부터 국가대표를 병행하며 많이 뛰었기에 본격적인 에이징 커브의 시작이라는 분석이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의심의 시선은 FA의 가치를 크게 훼손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박지수 정도의 선수는 '데려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의 범주에 있는 선수가 아니다. '데려오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의 영역에서도 너무나 확실한 방점이 찍혀 있다. 5년 간 KB의 원투펀치로 활약했던 강이슬이 함께 FA 시장에 나오며, 각 팀들의 상황을 볼 때, '박지수보다는 강이슬에 대한 니즈가 더 높을 수 있다'는 추측도 있었다. 실제로 WKBL 구단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이 오갔다. 하지만, 적어도 박지수가 '최고액'을 기록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FA 계약 기간 중의 변수는 하나가 있었다. 바로 박지수의 발목 부상. 경미한 부상이 아니었고 수술을 필요로 했다. 본인은 "최대한 빨리 회복해서 여자농구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의료진의 판단은 단호하다. '어렵다'보다 더 높은 수위로 부정적인 의견을 전했다. 빠른 수술 일정이 잡혔고, 5월 4일에 수술을 하게 됐다. FA 시작 초반의 변수였다.
"FA가 시작되기 전에는 뭐랄까... 저는 FA가 처음이다 보니, 사실 남들 하는 거 볼 때는 그냥 '부럽다'는 느낌이었거든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그런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제 차례가 되니까 '한 번 해보자', '행복한 고민을 하겠지?' 이런 생각을 했죠. 아니더라고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고... 빨리 결정을 내리고 싶었는데, 나름 고민이 길었던 거 같아요. 주변에서 FA 협상을 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기준은 생각해놓으라고 조언들을 해줬는데, 그 기준조차도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를 몰라서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FA를 한 거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FA 타임 테이블
"연락 온 팀은 3팀이었고요... 그리고 5월 1일 자정. 00시 00분. 저는 그때 연락 받은 거 하나도 없었어요. 저 인기 되게 없죠?(웃음) 그리고 그때 자고 있어서, 연락 왔어도 몰랐어요."
원소속팀 KB를 비롯해서, 이미 언론 보도에 등장했던 대로 삼성생명과 신한은행까지. 3개 팀이 박지수 영입에 나섰다. 이 외에도 박지수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이 있었다. 한 구단은 결국 금액 조건은 비슷한 싸움일거라 그 외에 박지수가 원하는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감독이 직접 박지수의 아버지인 박상관 감독에게 연락해서 '박지수가 진짜 원하는 조건이나 중요한 사항이 무엇인지'를 물었지만, 잘 모르니 직접 물어보시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고민하던 해당 구단은 박지수가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여러 상황을 고려하다가 끝내 제안을 포기했다. 박지수는 "아버지가 이유는 말하지 않고, 그 감독님한테 전화 올지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그래서였나 보다"며 "제안 주시지. 기다렸는데..."라며 손사래와 함께 웃음을 보였다.
박지수에게 계약 의사를 전한 첫 번째 구단은 '당연히' 원소속 구단인 KB였다. 삼성생명과 신한은행은 비슷한 시기에 연락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협상을 시작하지는 못했다. 영입 의사는 전달 받았지만 발목 수술 일정으로 인해 FA 협상은 퇴원 후로 잡았다. 그런데 퇴원 예정일이 하루 밀리면서, 협상 일정도 전부 하루씩 밀렸다. 그래서 박지수의 FA 계약 협상 시작일은 5월 1일이 아니라 6일이었다. 최종 결정 후 사인을 한 게 13일이니 정확히 1주일이 소요된 것. 박지수는 "발표까지 두 주나 걸린 건 죄송하긴 한데, 사실 따지고 보면 저도 1주일 만에 결정한 거라 나름 최선을 다한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초반은 KB에게 유리할 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하고 퇴원하는 동안까지 선수를 관리하는 것은 원소속 구단인 KB일테니 타구단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계약 초반을 선점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 그러나 박지수는 퇴원 전까지 계약과 관련해서는 KB와도 만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게 6일부터 협상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구단간의 명암이 갈리기 시작했다. 보도도 이어졌다. 박지수 영입 경쟁이 KB와 삼성생명의 2파전으로 압축됐고, 그중에서도 삼성생명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뜻밖이다. 원래 FA 계약과 관련해서는 추측과 경과, 흐름과 관련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여자농구는 그런 정보가 공식적인 기사로 나오는 경우가 흔치 않다. 특히 진행 중인 계약 경과에 대해 경쟁중인 구단이 언급되고 어느 쪽이 유리하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더욱 그렇다. 같은 FA였던 강이슬도 그랬다.우리은행이 영입에 나섰고 KB와의 경합에서 우위를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번 FA가 예년과 달랐던 점 중 하나가 이런 부분이도 했다. 박지수도 이런 적은 처음이 아니었냐고 반문하며 조금은 당황스러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지수의 FA 결정이 삼성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왜 나온 것 같냐고 물었다.
"제 마음이 그랬으니까요."

팜므파탈(?)의 결정
박지수에게 영입 제안을 했던 KB, 삼성생명, 신한은행 중 기본적인 조건에서 KB와 삼성생명이 신한은행과는 다소 차이를 보였고, 이에 삼파전은 양강 구도로 바뀌었다. 그리고 흐름을 잡은 쪽은 삼성생명. 결국 박지수가 삼성생명과 계약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고, 발표가 임박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한 주가 넘어가면서 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박지수가 5월 11일 삼성생명, 12일 KB를 만나면서 달라진 흐름이다.11일에 삼성생명과의 만남에서 이적 결정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 소문이 상당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주까지는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오늘은 지난주보다 오히려 진전된 게 없다. 오늘 사인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 상황을 더 봐야할 것 같다. 솔직히 지금 현재 상황에서 말하자면, 박지수의 마음 속에 우리 팀과 KB에 대한 생각이 50:50만 되어도 좋겠다. 우리가 열세인 거 같다. 내일 KB를 만나는 거 같은데, 거기서 결정을 하면 끝나는 거고, 그 후에 우리와 만날 기회가 한 번 더 있었으면 좋겠다" - 5월 11일 삼성생명 측
"만나기는 했는데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만나기 전부터 (박)지수가 오늘은 결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조건을 더 추가한 것도 없다. 그래도 만나자고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래도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봐야 마음이 편한 상황이라, 새로 제안할 게 없더라도 만나서 이야기라도 한다는 마음이었다. 우리가 어려운 게 사실인 것 같다. 쉽지 않다. 이제부터는 지수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다. 우리 팀이나 다른 팀 모두, 더 이상은 만날 계획은 없다고 한다. 지수의 전화를 먼저 받는 쪽이 계약을 하는 상황이다." - 5월 12일 KB 측
박지수가 KB와 삼성생명 모두와 마지막 만남을 종료했을 때, 두 팀 모두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판단이었다. KB는 박지수에게 내부 보고 등 여러가지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그래도 14일 오전까지는 결정을 해달라고 했고, 박지수 역시 그 때까지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KB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마지막에 얼굴 한 번은 꼭 다시 보자며, 14일 오전에 만나자는 의사를 전했다.
KB와 삼성생명 모두 확신이 없었던 상황. 먼저 전화를 받은 쪽은 삼성생명이었다. 박지수는 13일 낮, 임근배 삼성생명 단장에게 전화를 해서 잔류를 선택했다며 죄송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박지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한 다음에 다른 구단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사인하기 전에 먼저 연락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하든, 두 구단을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컸다"고 덧붙였다. 이에, 임근배 단장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우리한테 죄송할 이유도 없고, 잘 결정했다"며,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그때는 꼭 만났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건냈다고 했다. FA 기간 내내, 그리고 마지막 결정 후에도 정말 편한 분위기에서 많은 배려를 해줘서 삼성생명 측에도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박지수는 삼성생명 쪽에 연락을 한 후에 바로 KB에 연락하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또 한 번 고민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너 정말 후회 없겠냐'는 질문을 하며 결정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뭔가를 결정해도 하루에 수십 번씩 마음이 바뀌는 애"라고 자신을 표현한 박지수. 이제는 그게 안 된다는 걸 본인에게 직접 각인시키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해가 진 이후에야 전화를 걸었다. "결정을 한 것 같은데 지금 오실 수 있냐"고 묻는 박지수에게 이미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했던 임설 KB 국장은 "바로 가겠다"고 전했고, 결국 밤 10시 경 계약서에 사인을 받았다. 어차피 다음날 아침에 만날 예정이었으니, 굳이 그 시간에 갈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임 국장은 "(박)지수 마음이 혹시 바뀌기라도 하면 안되니까 얼른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박지수의 잔류가 결정됐다.

결정의 분기점
6일부터 협상에 돌입해 13일에 결정했기에, 'FA 계약'이라는 점과 '역대급 최대어'라는 부분을 놓고보면 그 고민이 길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켜본 이들은 달랐다. KB의 공식 발표가 나온 것은 14일 오전. 1일부터 시작된 올해의 FA 2차 계약 기간이 15일까지였기에, 제3자의 입장에서 박지수의 FA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오래 걸리는 실랑이였다. 박지수가 자신을 향한 양 구단의 오퍼를 얼마까지 끌어올리려고 시간을 끄는 거냐는 말도 나왔다. 박지수는 조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조건 두 개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KB와 삼성생명의 제안은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비슷했다는 것.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삼성생명의 조건이 더 좋은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동기부여를 위한 새로운 도전에 마음이 끌려 삼성생명으로 기울었던 마음이 분명 있었고, 이에 대해 가족과 상의도 했다. 농구인인 아버지와도 당연히 대화를 나눴다.
이번 FA와 관련해 박지수의 이적 가능성이 크게 대두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아버지인 박상관 감독이었다. 현역 시절, 명지대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삼성전자에 입단한 박상관 감독은 이후 KBL 출범 후에도 삼성 썬더스에서 활약했다. 2004년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서 은퇴했지만, 실업과 프로를 거치며 약 10년의 시간을 삼성에서 보낸 인물이다. 때문에 삼성생명은 물론, 삼농회(삼성 출신 OB농구인들의 모임) 서동철 부회장이 단장으로 있는 신한은행이 유력한 이적지로 거론됐다. 이는 FA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횡행했던 소문이었고, 실제로 삼성생명과 신한은행이 박지수 쟁탈전에 뛰어들자 더욱 탄력을 받았다. 박지수는 이러한 소문과 관련해 아버지가 자신에게 특별하게 본인의 입장을 강조한 적이 없었고, 주로 자신이 물어보는 부분에 답을 해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주변의 시선은 달랐다. 그래서인지 박상관 감독의 행동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KB와 삼성생명의 챔피언 결정전 3차전이 벌어졌던 용인체육관. 경기장을 찾았던 박상관 감독을 발견한 임근배 단장이 그를 불렀고, 바로 옆에 앉아 함께 대화를 나눴다. 내빈석이 마냥 편해보이지는 않는 것 같아, "딸과 아버지가 서로 다른 편에 있다"고 농담을 건냈는데, 박상관 감독은 "그래 그 말이 맞아"라며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한 마음에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냥 계시라, 감독님도 삼농회시지 않냐"라고 했지만, "(박)지수가 KB인 것도 있고.. 또 FA가 되는 상황이기도 해서 내가 조심해야 한다"며 자리를 옮겼다.
FA가 시작된 후, 서동철 신한은행 단장도 "이 FA 협상은 철저하게 (박)지수가 진행하고 결정하는 느낌이고, (박)상관이는 조언하는 역할에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KB가 식겁했던 부분도 있다. 박지수는 KB와의 협상을 모두 단독으로 진행한 반면, 삼성생명과의 만남에서는 박상관 감독과 한 번 대동한 적이 있다. 박지수는 "KB에는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협상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걸리는 게 없었는데, 아무래도 삼성생명과는 비즈니스적으로 자리하는 건 처음이라 내 입으로 내가 원하는 부분을 직접 전달하기 애매한 부분도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5월 12일에 이런 상황을 들은 KB 측 관계자는 "그 부분도 불얀요소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현장에 같이 계셨다는 게, 혼자 온 우리 쪽보다는 조금 더 뭔가 마음이 있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박상관 감독의 조언은 KB에게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박지수는 "여러 상황에 대해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상담을 했는데, 그 중에 선수가 이적을 선택하면 잔류와 달리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말이 있었고, 이 때문에 고민이 많아졌다"고 했다. 선수의 이적에는 항상 많은 말들이 따라온다. 에이스급이라면 더욱 그렇다. WKBL에서 단순히 '에이스'라는 것 이상의 역량과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 박지수라면 이 부분 역시 더 클 수밖에 없다.
"가장 고민했던 건... 글쎄... 그런데, 저는 두 구단 어디를 가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느꼈어요. 양 팀 모두 비슷한 조건을 제시하시기도 했지만, 그걸 빼고 정말 시즌만 바라봤을 때에도 제가 해야하는 부분에서 볼 때는 두 구단 모두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았거든요. 시즌을 놓고 봤을 때, 확실하게 유리한 고지라고 보이는 팀이 있었다면 그냥 그 팀을 골랐을 거에요. 그런데 저는 정말 비슷하게 봤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KB에게 조금의 우선 순위가 있었던 건, 그런 뒷말의 모험들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으니까..."
작은 차이였다. 청주 팬들의 뜨거운 응원과 프로 선수로서 KB에서 쌓아왔던 시간들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박지수 개인의 입장만 놓고 바라봤을 때, '새로운 환경과 동기 부여'라는 메리트에 대한 치중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KB 측에서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임했던 마지막 협상도 큰 의미가 됐다.
"사실 제가 구단과의 상황에서 조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걸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팀에 남든 옮기든, 그건 그냥 안고 갈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나)윤정이가 그러더라고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든 해결을 하는게 맞다고. 말을 해보고 대화를 나눠보는게 어떤 선택을 하든 저한테 더 좋은 거라고요. 그래서 KB하고 마지막 만날 때는 사인 안 할 거니까 계약서 없이 만나자고 했고... 또 조건을 더 주신다고 해도 안 듣는다고 했어요. 이제 와서 달라지는 조건에 흔들리고 싶지도 않고, 또 그러지도 않을 거라고 했어요. 내가 그렇게 알고 있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윤정이 얘기를 들어보고, 마지막에 구단과 만났을 때는 결국 그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됐고... 그게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되니까 또 풀리는 게 있더라고요."
마음의 응어리로 남을 수 있었던 오해는 어떤 거였을까? 웃으며 끝까지 답을 하지 않은 박지수는 "이게 원래 그렇다. 제가 팀에 오래 있지 않았냐? 연인 간의 관계에서도 작은 오해여도 그게 커지면서 오해 때문에 힘들어지고 그러는... 뭐 그런 거"라고 애둘러 말했다. 여유 있게 받아치던 박지수에게 "연애 많이 해봤냐"고 묻자, "없다! 원래 못해 본 사람들이 그런 건 더 잘 안다. 남의 연애 더 잘 알고 그렇다"고 발끈했다. 이 짧은 한 문장에 '원래!'라는 단어를 3번이나 써 가며 단언했다.

사이드 스토리
이번 시즌 KB를 이끈 핵심축인 허(예은)-강(이슬)-박(지수) 트리오. 이 중 강이슬과 박지수가 FA 시장에 나왔다. 그리고 강이슬은 박지수보다 이른 시간에 거취를 결정했다. KB를 떠나 우리은행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강이슬의 결정이 박지수의 결정에도 영향을 줬을까?
"아니오. 그렇지는 않았어요. 언니가 옮겼을 때 연락을 줬었어요. 저는 결정이 안 난 상황이었고, 언니가 이적을 한 게 행복한 선택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고, 언니도 저한테 같은 얘기를 해줬던 걸로 기억해요"
허예은이 박지수에게 전화를 했다는 부분도 박지수의 계약 후 관심을 끌었던 부분. 윤예빈이 KB를 선택하는 데에 한 몫을 했던 것이 허예은의 전화였던 만큼, 박지수에게도 허예은의 전화가 의미가 됐을지 궁금했다.
"몇 번 했죠. (허)예은이가 몇 번 전화했어요. 그런데... '팀에 남아 달라' 뭐 그런 얘기는 안하던데요. 뭐하냐고. 빨리 결정하라고 그러던데요..(웃음) 빨리 사인하라고 하더라고요. 내 인생인데 왜 니가 참견하냐고 했어요. (윤)예빈 언니가 예은이의 전화가 컸다고 한 기사를 보긴 했거든요. 저는 뭐... 예은이의 전화가 크지는 않았습니다.(웃음)"
허예은은 박지수의 반응에 대해 살짝 당황하더니 "저 정도 얘기면 당연히 남아달라는 거 외에는 해석이 안 되지 않냐"고 했다. 오글거려서 "언니, 제발 남아줘요"같은 말은 못하겠고, 그 정도면 충분히 의도를 전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지수)언니를 귀찮게 하는 효과밖에 없었던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FA 과정에서 박지수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동료는 역시 절친인 나윤정이었다.
"도움이 됐죠. 제 입장에서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또 이야기를 해주고 하니까... 그런데 결정만 놓고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게... 갈팡질팡 하더라고요. 남는 것과 옮기는 것에 대한 문제에서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서... 윤정이도 저한테 '그냥 남아라'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어요. 제 입장에서 많이 공감해준 거 같아요."
박지수는 FA 계약과 관련해 WKBL에서 가장 열성적인 것으로 유명한 KB의 청주 홈팬들을 상대편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만약 이적을 결정해서 원정팀 선수로 청주에 왔다면 어땠을 거 같냐고 하자 "야유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며 웃었다. 청주 팬들이 좋아서 남은게 아니라 무서워서 남은거냐고 물었다.
"무섭죠! 무서우면서 사랑이에요! 저희 팬들은 경기 중에 음악이 안 나와도 응원가 노래를 부르세요. 그러실 때마다 벤치에서도 막 소름이 돋아요. 그런데 이적하면 상대편으로서 그걸 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무서울 거 같은데요...(웃음) 진짜 경기 중에 소름이 몇 번씩 돋아요. 저는 경기 뛰면서 그런 걸 잘 못느끼는 편이거든요. 뛰다가 벤치에서 감독님이 크게 소리치는 것도 사실 잘 못 들어요.(웃음) 그런게 잘 안 들리는 선수에요. 반면 그런 게 좀 잘 들리는... 그러니까 귀가 트여있는 선수들은 그런 거에도 민감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는데, 저는 그런 쪽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청주에서 팬들이 그러시는 건 귀에 잘 들어와요. 그리고... 제가 이번에 챔프전을 못 뛰면서 벤치에 앉아만 있었잖아요. 그동안 제가 듣고 느낀게 70%밖에 안되는 거더라고요... 정말 대단하다라고 느꼈어요."
하지만 박지수의 계약 기간은 2년. KB는 박지수와의 계약에서 "계약 기간은 지수에게 일임했다"고 했다. 이적이 아닌 잔류를 택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달았던 박지수의 선택은 2년이었다. 그래서 2년 후 KB는 박지수와 허예은이 함께 FA가 되는, 올해와 비슷한 고난을 한 번 더 겪어야 한다. 2년이면, KB 팬들을 적으로 돌려도 견딜 수 있는 내공이 쌓일 것 같냐고 하자 박지수 또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때는... 그때는.. 또 모르겠어요. 그때 어떻게 될 지 궁금해요. 2년 뒤에는 제가 FA를 그래도 한 번 해봤으니까 이번보다는 어느 정도 준비를 할테니까 좀 다를 수 있겠죠. 그래서 2년 뒤에 떠나겠다는 게 아니고요!!(웃음) 어릴 때였으면 그냥 아니라고 그때도 남을거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내가 한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더 커요. 그래서 각오나 바람같은 것도 아닌 이런 부분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당장 내일 내 마음이 어쩔지도 모르는데요. 또 2년 뒤에는 예은이랑 같이 FA가 되는 것도 있고... 상황이라는 게 변수가 되잖아요. 동화처럼 생각하는대로 좋은 것만 되면 참 좋은데, 이상이랑 현실의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사실 이번에도 FA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많이 받고 힘들었는데, 2년 후에 또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시즌을 치렀고, 지금도 부상 중인데 그럼에도 좋은 조건을 제시해준 팀들한테 다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2년 뒤의 저는 어떨지 정말 모르겠거든요. 하지만 정말 멀쩡한 상태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나서 FA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렇게 동기부여를 해서, 그때도 FA 협상을 진행하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아무튼 그때는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보자는 기대가 있습니다."
잔류가 결정되고 나서 팀원들에게 많은 연락을 받았다. 남아줘서 고맙다는 연락이 많이 왔는데 그 메시지들을 보며 자신이 생각보다 고참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박지수. '떠나면 남이려니'하고 신경 안 쓰다가 남았다고 하니, 그래도 주장인데 뒤늦게 어쩔 수 없이 화들짝 연락을 한게 아니었겠냐고 떠 봤다.
"아... 그렇네. 그래.. 그럴 수도 있죠. 그럴 수 있어. 그런데 그런 연락은 진심이 아니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설령 가식이었다 해도(웃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그러는게 쉬운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연락해 준 친구들한테 너무 고맙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안 한 선수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렸나고 하자 "뒤끝있는 성격이라 마음 속에 체크는 해뒀다"고 한다. 연락하지 않은 선수들은 이제라도 연락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체된 최강의 내외곽 원투펀치
2020-21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생명의 언더독 스토리의 최종 희생양이 됐던 KB는 FA 시장에서 '최대어' 강이슬을 잡았다. FA 시작일 자정에 맞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며 적극성을 보였고, KB의 중심이었던 박지수가 강이슬에게 같이 뛰고 싶다고 직접 전했다. 그렇게 구성된 박지수와 강이슬의 내외곽 조합은 WKBL 최고의 원투펀치였다. 국가대표 주득점원 두 명이 내외곽에 포진한 KB는 박지수와 강이슬이 함께한 5년 동안 정규리그 3회, 챔피언 결정전 2회 우승을 기록했다. 박지수가 공황장애로 2022-23시즌을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했고, 2024-25시즌은 해외리그 진출로 빠졌다. 결국 정상적으로 함께 뛴 시즌은 3번. 3번 모두 정규리그는 1위였고, 이 중 2번은 통합 우승으로 마쳤다. 강이슬이 이적을 선택하며 이제는 WKBL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조합이 됐다.
"같이 있는 동안 너무 재미있게 잘 했고, (강이슬) 언니랑 제가 같은 시기에 FA가 되다 보니까 좀 더 연락하고 챙기지 못한 거 같아 미안하긴 한데... 저도 FA를 해 보니까, 그 선택이 언니한테 최선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실 제가 KB에 남는게 더 뒤에 결정된 거라 그럴 여건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제가 잡는다고 잡힐 것 같지도 않았어요. 언니랑 뛴 시간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언니가 저렇게도 슛을 쏠 수 있구나' 이런 거를 같이 뛰면서 감탄했던 적이 많았고, 특히 제가 핸드오프해서 언니가 바로 받아서 쏘는 슛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제가 봤을 때는 밸런스가 다 깨졌는데, 저걸 넣는다고... 했던 것들요. 사실 언니도 그게 가장 좋았다고 저한테 말하는데, 저도 그게 가장 짜릿했던 것 같아요. 이걸 이렇게 넣을 수 있구나... 재미있었고, 너무 좋았어요."
강이슬은 이적 후, KB에서의 5년을 회상하며 '행복했다'고 했다. KB와 본인 모두 서로에게 서로가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만나서 가장 좋은 결과를 이뤘다고 했다. 박지수와의 시간에 대해서는 박지수와 마찬가지로 "재미있었다"고 했다. 특히 몸이 정상적일 때의 박지수는 정말 압도적이었고, 박지수의 핸드오프를 받아서 올라가는 슛이 정말 좋았다고 되짚었다. 박지수에게 앨리웁 플레이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그런 하이라이트 필름을 많이 못 만든게 아쉽다면서도, 박지수와 함께 뛴 것은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언니한테 이적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고, 제 최선은 잔류인 거 같아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잔류 결정을 한 후에는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는데, 서로 최선의 선택을 한 만큼, 각자의 자리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코트에서 좋은 싸움을 해봤으면 해요. 무엇보다 언니도 나도 건강하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재활 잘 하고, 언니도 발목이나 어깨, 이런 데가 아픈데, 재활 잘해서 다음 시즌에 둘다 전 경기 다 출장 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KB의 중심 허예은-박지수
KB는 강이슬을 잃었지만 박지수가 남았고, 리그 최고의 가드라 할 수 있는 허예은이 버티고 있다. 가장 많은 FA 집토끼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윤예빈이라는 쏠쏠한 외부 FA 영입에도 성공했다. 여전히 KB의 전력은 상위권이다. BNK가 폭발적인 전력 보강에 성공했음에도 지도자들과 단장들은 그래도 KB가 정상에 더 근접한 것 같다는 조심스런 예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확실하게 검증된 허예은과 박지수의 존재감이었다.
박지수와 허예은은 KB가 배출한 단 둘 뿐인 신인왕이다. 박지수가 KB 출신 최초의 신인상을 수상했고, 3년 뒤 허예은도 같은 자리에 올랐다. 리그를 대표하는 빅맨과 1번으로 자리를 잡았고, 가드와 센터로 가장 호흡을 오래 맞춘 사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지수가 유독 허예은의 패스에서 쉬운 찬스를 놓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허예은은 "언니가 일부러 안 넣은 것도 아니고,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는 박지수도 의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당연히...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 (허)예은이가 준 걸 자꾸 놓치다 보니까 그게 계속 머리에 맴돌아요. 누가 주든 플레이의 일환이고, 그냥 농구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상황, 4쿼터 40분 동안 펼쳐지는 많은 장면 중 하나일 뿐인데,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자꾸 예은이 거를 놓치니까, 예은이 패스를 받을 때 머리에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고 몸에 힘이 더 들어가는 거 같아요. 예은이 어시스트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는게 머리에 박혀서 이게 쉽게 떨궈지지가 않더라고요. 아... 이러면 다음 시즌도 좀 힘들 거 같기도 하고...(웃음)"
입단 당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허예은도 부침이 있었다. 루키 시절부터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며 성장을 이어왔고, 이미 그때도 팀의 중심이었던 박지수는 이미 코트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런 허예은의 과정을 지켜봤다.
"가드와 센터로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선수죠. 예은이도 어렸지만 저도 어렸던 시절부터 같이 게임을 많이 뛰었고, 지금까지도 같이 손발을 맞춘 시간이 제일 긴 거 같아요. 그만큼 소통도 많이했고, 국가대표에서도 같이 뛰었으니까 손발이 가장 잘 맞아야 하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정말 많이 성장했죠. 이제는 제가 '많이 성장했다'는 말을 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이 성장한 거 같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네요. 예은이 팬들도 많으신데...(웃음) 너무 좋죠. 제 선수 커리어를 통틀어 봐도 저를 가장 잘 활용하는 포인트 가드는 예은이가 맞죠. 지금 예은이는 리그에서 최고 가드잖아요. 이거는 뭐 누가 딴지를 걸까요? 다들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허예은은 "같이 있어도 서로 잘한다는 말을 잘 못한다고 낯간지러운 표현도 잘 못한다"며 "나 스스로 (박)지수 언니나 (강)이슬 언니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또 언니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도 처음 들어서, 그냥 그것만으로도 많이 고마운 거 같다"고 했다.
박지수 없이 치른 2025-2026시즌 챔프전에서 KB 우승의 중심에 섰던 허예은은 MVP를 받았다. 박지수 없이 삼성생명을 상대할 때는 항상 배혜윤을 극복하지 못했던 KB. 그러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허예은이 과감한 매치업 헌팅으로 배혜윤을 괴롭혔고, 삼성생명이 가장 신뢰하는 중심을 흔들어 박지수 없이 3연승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사실, 매치업 헌팅은 박지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좋은 멤버를 갖추고 있던 시절의 우리은행은 김소니아, 이후에는 김단비 등을 이용해서 박지수를 상대로 매치업 헌팅을 자주 시도했다. 박지수로서는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그 무기로 우리편이 자신 없이 상대를 공략하는 장면을 지켜본 것이다.
"1차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발목 다친게 1차전은 뛸 수 없는 상황이라, 2차전부터는 뛰려고 마음 먹었거든요. 사실 저의 출전 여부랑 상관없이, 단기전에서는 1차전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1차전이 고비라고 생각했고... 흐름이 어떨거라는 생각보다 제 부상이 너무 속상하고, 어떻게든 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는데... 그런데... 그러면서 1차전을 보는데.. 너무 잘하는 거에요. 내가 없는 게 낫나.. 싶은 생각이 들만큼 잘해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 같아요."
"(배)혜윤 언니 마음이 어떨지 정말 정말 정말 너무 잘 알 것 같다고 해야할까? 의외로 언니는 아무 생각 없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헌팅당할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아.. 또야..' 이랬던 기억이 있거든요. 혜윤 언니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다고 또 그걸로 결과를 내는 예은이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만약 허예은의 매치업 헌팅 상대가 본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사실 경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키 큰 선수 입장에서는 작은 선수가 앞에서 그렇게 재간을 부리면 힘든게 사실이거든요. 어쨌든 블록해야죠. 높이에서는 제가 유리하니까 강하게 블록슛을 해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을 거 같아요. 그런데, 헌팅 당하는 자체가 일단 너무 힘들어요. 뭐 나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긴 한데 그건 들키면 안되는 거니까 비밀로 할게요."
허예은은 챔프전과 같은 상황에서 상대 빅맨이 박지수였어도 매치업 헌팅을 선택했을 거라고 했다. 선수 구성이 그렇다면 그거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것. 다만 "지수 언니는 키도 더 크고 팔도 길어서 더 어려웠을 것 같다. 가끔 언니 스크린 받아서 슛을 쏘려고 할 때, 언니한테 가려서 림이 안보일 때가 있다"며 "그래도 매치업 헌팅으로 공격할 때는 언니가 손을 들고 나와도 골대가 보이긴 하겠죠?"라고 반문했다.

또 한 번의 증명
회복과 재활이 먼저인 박지수에게 다음 시즌은 또 한 번의 증명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공격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강이슬의 부재로 팀 컬러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아시아쿼터가 자유계약제도로 바뀌며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졌다. 다시 7라운드 제체가 되며 경기 수가 늘어나는 등 변수의 요소들이 생겼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KB가 확실한 우위를 보였던 지난 시즌과 달리 군웅할거의 시대가 될 수도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박지수로서는 공황장애에 이어 지난 시즌 안 아픈 곳 없이 다 아팠던 시즌을 치르며 '인저리 프론' 혹은 '에이징 커브'라는 지적이 나왔던 부분에 대해, 스스로가 답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조금 일찍 늙은 느낌? 그 비슷한 건 있어요. 프로 커리어의 시작은 2016년부터지만, 그 전부터 성인 대표팀을 뛰다 보니 청소년 대표, 성인 대표.. 이런 시간들이 남들보다 빨랐잖아요. 그렇게 보면 벌써 15년? 뭐 그런 느낌이 있으니까요. 실제 나이랑 성인 커리어가 안 맞는 거잖아요. 반대로 대표팀을 시작했던 나이가 어리다보니까 그때 생각했던 지금의 나이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는 느낌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봤던 언니나 오빠들이 부상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아무래도 운동 선수다 보니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저한테 닥친거잖아요. 나이를 먹은 건 맞고, 또 에이징 커브나 인저리 프론 둘 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죠. 제가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나중에 커리어를 돌아볼 때 이 시점의 저는 에이징 커브에 접어들었거나 인저리 프론이 됐다는 걸 인정해야 하겠죠. 하지만 아직은 재활 잘해서 좋은 상태로 준비할 수 있다고 믿어요. 지금도 발목 수술하고 재활을 하고 있지만, 이 부상은 운동 선수 커리어에서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관절이나 큰 부상이 아니라 재활만 잘 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증명하고 싶어요. 아니라는 것을."
정규리그 5회, 챔피언전 2회. 도합 7번이나 MVP를 차지했고, 단일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 트로피를 차지하는 기록만 2번을 세운 박지수에게 다시 한 번 증명의 숙제가 주어졌다. 실제 나이보다 빠르게 살아온 박지수의 커리어. 하지만 아무리 그 리스크를 고위험도에 둔다 해도, 박지수의 현재 나이는 28세. 생일이 12월인 것을 고려하면 27세다. 나이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선수의 몸 상태지만, 누적된 쓰임을 극복하고 충분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에는 여전히 모자람 없는 것이 박지수이고, 이번 FA에서 펼쳐진 '5억원의 대결'은 이를 뒷받침한다.
여전히 리그에서 가장 확고부동한 비대칭 전력이자 압도적인 자원인 박지수. 부상으로 인한 비시즌의 공백은 자신이 생각하는 증명으로 가는 길에 장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프로에서 10번의 시즌(튀르키예 포함)을 보내며 WKBL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경험을 쌓았던 박지수의 커리어는 그런 방해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박지수는 이미 다음 시즌을 마친 후에도 농구 팬들 앞에 당당히 또 하나의 증거를 내어 놓을 마음의 각오를 마쳤다. 과정만큼이나 결과의 가치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박지수의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fAntasize | 글 > iNside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WKBL] FA Behind : 강이슬 (10) | 2026.06.10 |
|---|---|
| [WKBL] 기묘한(?) 트레이드에 대한 단상 (42) | 2026.05.30 |
| [축구] 월드컵이 불안한 이유 (0) | 2026.05.25 |
| [WNBA] 포틀랜드의 창단 첫 승 (0) | 2026.05.13 |
| [WNBA] 개막 파워 랭킹 및 시즌 예측 (4) | 2026.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