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헌터스를 보려다가 잘못 선택한 게 아니다. 예고편이 나왔을 때부터 관심 있었다. 오컬트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였고, 물리력으로 악마를 제압하는 설정도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론, 결론부터 말한다면 쉽게 추천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쉽다. 잘만 준비됐어도 시리즈로 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먹히고 있는 지금, 새로운 유니버스를 만들 수 있을까 했는데, 그냥 한 편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누리기는 힘들 것 같다.
서사의 길이와 배분
전체적인 스토리의 얼개를 따지기 전에 전체 러닝타임과 스토리의 시간 배분이 아쉽다. '악마와 싸운다'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지만 은서(정지소 분)가 악마에게 빙의되는 이유와 과정에 대한 서사는 물론 바우(마동석 분), 샤론(서현 분), 김 실장(이다윗 분)의 서사도 너무 빈약하다. 바우와 샤론은 악마의 힘을 받아 인간을 위해 쓰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악마로부터 어떤 인연을 통해 그리 됐는지 설명이 거의 없다. 물론 샤론은 마지막에 자신에 대해 '지옥의 사자 발루의 화신'이라고 하지만, 이런 대단한(?) 존재를 투입하려면 어떻게 그녀가 악마의 화신이 되었는지, 그리고 악마의 화신이 왜 구마(혹은 퇴마)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편이 성공하면 이후 속편에서 자연스럽게 다룰 생각이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전체 흐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요셉의 부분도 너무 겉핥기 식으로 지나간다. 은서에게 빙의가 된 사안에 대해 '상처받고 순결한 영혼'이라는 너무 뻔하고 울림 없는 설명을 붙인 것은 "이 모든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요"식의 경고라 이해한다쳐도 그다지 설득력있지는 않다.
범죄도시 외전
바우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핵심은 아니다. 샤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메인 스토리의 퀘스트 해결은 바우, 샤론, 김 실장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전체적인 역할을 볼 때, 샤론은 바우와 김 실장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인 반면, 다른 둘은 샤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우는 그냥 범죄도시의 마석도가 형사를 관두고 다른 일을 하는 느낌이다. 창고 지하에서 악마 의식을 진행하던 추종자들을 제압할 때는 준 악마의 힘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샤론이 구마에 나서는 순간에는 그냥 일반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로 진지함과 코미디의 적절한 조화가 꼽힌다. 진지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실소가 터져나오게 만드는 웃음 코드가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을 보면 진지함 속에 이런 부분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개그는 터지면 대박이지만, 안터지면 작품을 가볍게 만들고, 심하면 우습게 격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에서의 개그 코드는 조금도 웃음을 주지 않는다. 대부분 바우에 의해 발동하는 장치들인데, 마석도였다면 먹혔을지 모르지만 바우의 세계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두꺼운 옷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뚜껑을 가져오는 장면은 한심했다. 그나마 갑자기 튀어나오는 샤론이나, "눈 좀 하얗게 해봐"나 "한국인이냐" 등은 그러려니 넘길 수 있지만, 가장 진지하게 진행되는 장면에서 맥까지 끊어가며 어울리지 않는 개그 요소를 삽입하고자 한 것은 작품을 어린이용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었을까 싶은 의심을 들게 만든다. 영화 내내 '피식'하고 웃음이 났던 장면은 단 1컷도 없었다. 그러기에는 요즘 개그 콘텐츠들이 너무 많다. 개그콘서트도 부활했고, 유튜브 콘텐츠도 많고, 국민의힘도 있다.
서양 오컬트 서사에 대한 고증
우리나라도 오컬트 물이 늘어나고 있고, <곡성>, <파묘>, <악귀> 같은 작품은 물론 서양 영화에서나 보던 성경 속 악마들을 끌어오는 작품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저 '악마'를 차용할 뿐, 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은 없는 것 같다. <마이 데몬>처럼 악마라는 존재를 가볍게 물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통한 대립과 전개가 필요하다면 적어도 이들에 대한 관계와 서사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사탄-루시퍼(이 영화에서는 라틴어에 가깝게 '루키페르'라고 한다) 등에서 시작하는 서양의 악마는 결국 성경과 연결되고 유대의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들은 기존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지역에서 숭상을 받고 있던 신앙의 대상인 신들을 포함해 여러 존재를 악마로 규정했고, 이스라엘 왕국의 3번째 왕인 솔로몬이 이 중 72악마를 봉인했다고 한다. 우리가 서양의 악마로 개념화하고 있는 대부분은 여기에서 출발하는데, 최근 우리의 작품들을 보면 이를 다루는 데, 기존의 개연성을 너무 무시하는 느낌이다.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지옥에서 온 판사>가 대표적이다. 솔로몬의 72악마와 7대 죄악과 연결되는 악마, 그리고 루시퍼와 사탄의 연계성 등이 성경과 성경 외전, 단테의 신곡 등 다양한 문헌은 물론 서양에서 다룬 대중문화에 따라 조금씩 분류와 성격을 다르게 하고는 있다. 그래서 우리도 작위적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봤을지 모르지만, 너무 중구난방으로 다루다보니 한 작품에 등장하는 악마의 권위를 다른 작품으로 비하하게 된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에서 샤론은 '발루의 화신'이라 하는데, 여기서 '발루'는 '용의 총통'으로 불리는 솔로몬의 72악마 중 62위에 해당하는 '발라크'를 말한다. 62위라고 해서 급이 낮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솔로몬이 봉인한 72악마의 위(位)는 순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귀신을 세는 단위다. 따라서 1위가 높고, 72위가 낮은 것은 아니다. 악마에 대한 설명을 통해 서열이나 힘의 크기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작품에서 샤론이 지옥으로 되돌리는 악마 몰록(모락스)은 솔로몬의 72악마 중 21위에 소개되어 있으며 36개의 악마 군단을 이끄는 군단장이자, 백작의 작위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가나안 지방과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신으로 숭배받았다가 유대교에 의해 악마로 격하됐으며, 성경에도 그 이름이 등장한다. 이는 페니키아의 인신공양 풍습과도 연결된다. 모락스(몰록)가 숫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제물로 살아있는 어린 아이들을 원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볼때, 이 영화는 몰록의 고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발루의 영력이 몰록을 능가하느냐를 따지자면 분명 다르게 생각해 볼 문제다. 솔로몬의 72악마들은 왕, 대공, 공작, 후작, 백작, 의장, 기사와 같은 작위와 이끄는 군단의 수가 정해져 있는데, 몰록은 백작이며 36개의 군단을 이끈다. 반면 발루는 30개의 군단을 이끌며 작위는 없다. 영화에서는 몰록이 발루의 화신이라는 샤론에게 "그 힘이면 인간 세상을 모두 지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어떤 문헌을 봐도 발루의 권능보다는 몰록이 훨씬 강해 보인다.
또한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묘사된 발루는 악마치고는 상당히 비루하다. 주인공인 유스티티아(박신혜 분, 유스티티아는 원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처녀신이자 '정의의 여신'으로 디케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름 또한 라틴어로 '정의'를 의미한다. 칼과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린 모습으로 여러 법원 청사에 서 있는 동상이 유스티티아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유스티티아를 악마로 설정했다)와 그레모리(김아영 분, 솔로몬의 72위 악마 중 56위이며, 유일하게 여성이라고 성별이 명시되어 있고, 26개의 악마 군단을 지휘한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역할이 발루(발라크, 김인권 분)다. 그렇다보니 이 작품들을 연이어 본다면 '지옥의 사자'라며 자신을 드러내는 샤론의 모습이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지옥에서 온 판사>가 악마의 서사에 충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로마 신화의 여신을 악마로 설정해 주인공으로 차용한 것, 사탄이 루시퍼를 속여 인간 세상으로 도주했다는 설정(일부에서 사탄은 루시퍼와 동일한 존재로 본다. 하지만 '단테의 신곡'에서 7대 죄악에 대응하는 악마를 설정하며 교만의 루시퍼와 별개로 분노의 사탄이 등장하기도 했다)은 무척 어색하며, 천사 가브리엘의 권능에 바엘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굴복하는 장면은 '천사가 악마보다 강한 권능'이라는 일방적 해석이다. 바엘(바알)은 66~250개의 군단을 이끌며 '지옥의 왕'이라는 작위를 갖고 있다. 솔로몬의 72악마 중 1위이기도 하지만, 순위는 앞서 언급한 바대로 큰 의미는 없다. 다만 그 설명을 보면 72악마 중에서도 가장 권세와 권능이 강한 악마 중 하나로 해석된다. 또한 구약에도 등장하듯 바알은 유대교의 하나님과 신앙으로 맞서던 강력한 종교 주체였다. 아무튼 유대의 악마를 소환해 무언가 창작물을 만든다면 그 안의 개념과 서사도 존중되었으면 한다.
이름이 뭐에요? 전화번호 뭐에요?
결과적으로 몰록은 지옥으로 돌아간다. 그 뒤에 쿠키 영상이 나오며 뭔가 속편을 암시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지만, 속편까지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사건의 궁극적인 해결은 구마사제의 역할을 하는 구마사 샤론이 맡는다. 그는 천주교에서 서품을 받은 사제가 아니라 악마의 권능으로 구마를 한다. 그런데 방법은 똑같다. 처음부터 계속 이름을 묻는다. 보통 구마사제의 루틴은 악마의 이름을 확인한 후 하나님의 이름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데 악마의 권능으로 싸우는 샤론도 결국 상대 악마의 이름을 물어보고 돌아가라고 한다. 궁극의 힘이 다르게 작동할텐데 똑같은 방식이라니... 뭐랄까? 지옥 안내 방송에서 탈영병 복귀 방송을 하는데 이름을 알아야 부를 수 있다는 느낌 정도다. 에너지의 근본을 바꿨다면 방식과 해석도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2025, 대한민국)
감독 : 임대희
바우 : 마동석
샤론 : 서현
김 실장 : 이다윗
정원 : 경수진
은서 : 정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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