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지구종말론에 대해 세상의 관심은 그다지 뜨겁지 않다. 적응에 특화된 동물인 사람들은 이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관련된 1999년 지구종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학습에서 또다시 등장한 2012년의 종말에 대해 권태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12년의 종말론은 1999년의 종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하여 갑자기 튀어나온 의견이 아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의 4행시가 과연 '1999년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심과 지구 최후의 날에 대한 서술이 2002년 (혹은 2004년이었나)과 2012년에도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음을 1999년 이전에도 접했을 것이다.
확실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집트 피라미드 석실에 비치는 태양의 각도에 따라 석실의 마지막 입구에 닿는 날이 2002년인가 2004년의 5월로서 이 때가 지구 종말을 말한 피라미드의 예언이라고 한 바도 있었고, 태양계의 그랜드크로스, 행렬의 일직선 배열, 그리고 마야에 의한 2012년 12월 21일의 지구 종말 예언도 이미 이전부터 충분히 회자되었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시기이며 숫자적으로도 1999라는 밀레니엄에 맞춰진 상징적 의미로 관심의 초점은 1999년에 쏠렸을 뿐이다. 물론, 2025년에 이른 현재는 앞서 열거한 모든 종말론이 의미가 없다. 현재에는 오히려 과거 역사에서 200년 정도가 건너 뛰어졌고, 지금은 정확히 2000년대로 접어들지 않았다는 주장도 등장한다.
영화 '2012'가 종말 영화의 압도적 CG를 보여줬다면 이 책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깨어있는 이들에 의해 접어드는 새 시대로의 시작을 2012년 12월 21일로 서술하고 있다. 2012년 12월 21일은 인류 최후의 날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날이며, 희망이 움트는 또 하나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성과 선전에 비해 그 비약은 그저 소설적 한계라 할 수 있다.
글에 등장하는 마야의 후손은 '마야의 어떤 예언도 2012년 12월 21일에 인류의 멸망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방송됐던 네셔널지오그래픽의 [2012-인류 최후의 날]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마야의 후손은 "정확히 그날은 인류의 멸망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를 굳이 따지자면 2025년인 현재는 소설이 맞았다고 해야겠지만, 어쨌든 이 작품은 끝내 희망을 말하고 말겠다는 의지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시작부터 등장하여 임사를 경험하는 주인공 맥스를 보며 소설의 10%도 채 읽지 않은 시점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맥스가 최후의 날의 비밀을 풀기 위해 활약하는 이라면 흥미롭겠지만, 그게 아닌 맥스 스스로가 최후의 날의 주인공이라면 이건 정말 아닐 것 같다'는 생각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후자의 길을 택했다. 어려서부터 비범하고 총명했던 주인공 맥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형에게 이유없는 고난을 당하고, 긴 세월을 임사 체험에서 접한 이들의 이름과 함께하며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맥스는 메시아 그 자체였다. 그가 결국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촉매였고, 그것을 소설에서는 'A는 A이면서 A가 아니다'라는 명제로 정리하여, '맥스는 맥스이면서 맥스가 아니'라는 선문답같은 추상화로 뭉뚱그리고 있다. 조금도 우호적일 수 없는 결론이다.
게다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현대에 존재한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고자 하는 무리수를 감행한다. 사랑과 자비는 결국 하나의 근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지만, 서양 문화권에서 성장한 기독교적 사상의 작자가 마야의 예언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해석하고자 한 무리수가 결국 소설을 더욱 진지하지 못한 가십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인종과 민족을 대표한다면서 단 12명의 등장인물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그 어떤 인류학적-과학적-역사적 사료에서도 세계 인종을 12가지로 대표하는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크게 백인-황인-흑인의 피부색 구별부터 인류학적인 5개 구분, 그리고 형태적 / 계측적 / 안면계수 / 편두지수 등을 기준으로 할때 민족적 틍성까지 결부하면 전세계 인종은 80여 종까지 나뉘어진다. 이를 12개 대표로 나누는 구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굳이 12라는 숫자를 말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예수의 열 두 제자를 상징화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2012년을 새로운 기원으로 칠때, 맥스는 메시아이며 예수의 재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맥스가 진실로 사랑한 이도 그 12명 중의 하나였던 여자이며, 그래서 이름이 굳이 '마리아' 였을 수도 있다. - 물론 막달라 마리아는 12사도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야의 문명이 갖고 있는 의식은 고대 종교의 특성답게 토템적이고 자연친화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와 부합되지는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뒀던 영화 [아바타]를 두고 '자연친화적이기는 하지만 신을 배격하고 자연숭배를 조장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교황청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무리하게도 마야의 예언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범종교적 통합으로 정리하고 있다. 대체 '맥스의 각성을 위해 12명의 회합과 모임이 왜 필요했는가' 하는 것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모든 인류를 대표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 하기엔 너무 억지이지 않는가.
책 제목에 감히 [열 두 명의 현자] 라고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그 12명이 어찌하여 현자인건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저 날 때 부터 그런 운명이었던 이들일 뿐이다. 맥스가 날 때 부터 새로운 메시아였던 것 처럼 말이다. 결국 이미 운명적으로 타고난 12명의 사람들이 결국 새로운 지도자가 될 한 명의 각성을 위해 제 인생 살다가 어느 날의 조우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같이 선택되지 못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2012년이고 종말이고, 그런 것에 쓸데없이 정력낭비하지 말고 얌전히 살고 있으면 알아서 다 해결된다는 것이다. 닥치고 제 일이나 하면서 높으신 분들의 삶과 고민에는 신경쓰지 말기를 바라는 망가진 나라의 그릇된 정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변하는 지도 모르겠다.
실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맥스가 스스로를 각성한 2012년 12월 21일 이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고, 지구는 멀쩡했다. 세상은 어제와 같았고, 달라진 것은 그저 맥스의 각성 뿐이었다. 모든 종교가 그들의 설립과 진리의 깨달음 이후 그들의 내용을 열심히 전도하고 포교한 것과 달리, 맥스와 나머지 12명은 그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했다. 그랬음에도 세상은 놀랍게도 녹색에너지 개발에 완벽히 성공하고 자연친화적인 지구 공존의 해법을 찾았는지, 온난화가 멈추고 평화가 찾아오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맥스는 그저 그날 각성했을 뿐이고, 그 후 무엇을 어찌 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리고 역사적인 신적 존재들에 비해 그 각성이 매우 늦어 거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반열에 이른 맥스로서는 세상의 변화를 위해 당장 적극적으로 투신할 방법과 조건이 갖춰져있지 않았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저 맥스가 각성한 대가로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었다는 것이 결론이다. 책을 덮는 순간 내게 찾아온 무력감은 애써 희망을 설파하는 작가의 복된 낙서 뒤로 차라리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에 등장하던 행복전도사의 메세지가 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단,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열 두 명의 이름을 찾기 위한 흐름이나, 세계 각지의 고대 문명에 대한 답사는 흥미진진했다. 역시 마야는 여행을 자극하는 이름임에 틀림없다.
The Twelve (2009)
윌리엄 글래드스톤 Gladstone, Will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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