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청주 KB스타즈 (12승 18패 / 4위)
철저하게 최하위 후보로 평가받았다. 박지수의 부재가 절대적인 약점으로 평가받았다. 개인적으로는 KB가 최하위로 내려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주변의 시선은 무척이나 냉정했다. 부인하기 힘든 전과가 있었다. KB는 박지수가 정상적으로 뛰지 못했던 2022-23시즌, 10승 20패로 5위를 차지했다. 디펜딩 챔피언에 어울리지 않는 결과였다. 박지수가 뛰지 않은 21경기에서는 4승 17패였다. 박지수가 없는 경기에서 KB가 거둔 성적은 6승 24패의 절망적 시즌을 보냈던 하나은행보다도 낮은 승률이었다. 때문에, 시즌 내내 박지수 없이 버텨야 하는 KB에게 높은 평가는 쉽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언젠가 박지수가 돌아올거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진행된 2022-23시즌과 달리, 지난 시즌은 박지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결정된 상황이었다. 완전히 다른 농구를 해야했다. 센터 없는 구단이 되었으므로, 당연히 빠른 농구-외곽 농구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형태의 농구가 자리를 잡지는 않았다. 중심 선수가 사라졌다는 절박함이 있더라도, 한 시즌만에 색깔을 완전히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우승 못하면 안되는 팀'에서 '꼴찌만 안해도 성공인 팀'이 된 KB는 1라운드에만 3승을 거뒀다. 비교적 약체였던 하나은행-신한은행을 연파했고, 전력 누수의 동병상련에 빠진 우리은행을 잡았다. 시즌 내내 단 12승에 그친 KB로서는 1라운드 3승이 플레이오프 진출에 큰 힘이 됐다. 아시아쿼터 나가타 모에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농구로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성공적인 변화를 가져갔다고 볼 수는 없다. 부진에 빠지면서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밀렸다. 확실한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신인 송윤하가 자리를 잡으면서 무력했던 리바운드 경쟁력이 조금씩 살아났다. KB는 경기당 36.63개로 리바운드 최하위 팀이다. 전반기에 평균 36.14개를 잡았고, 후반기에는 조금 늘어나 37.06개를 잡았지만, 전반기나 후반기 모두 리그에서 리바운드를 제일 못잡은 팀이다. 하지만 리바운드 마진은 변화가 있었다. 전반기 14경기에서는 경기당 3.79개의 리바운드를 더 뺏긴 반면, 후반기에는 1.69개로 열세 폭을 줄였다. 골밑 싸움에서 무기력했던 모습을 조금은 탈피했다. 그리고 시즌 막판의 플레이오프 싸움에서는 경쟁자였던 신한은행보다 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신한은행과의 마지막 맞대결에서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되자 무리하게 따라잡기보다는 오히려 지공을 통해 6점 이내 패배로 경기를 마쳤다. 이 선택은 KB가 신한은행과 모든 기록에서 동률을 기록한 후, 맞대결 득실차까지 따지는 상황에서 단 1점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어렵게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는 일방적 열세가 예상됐던 정규리그 1위 우리은행과의 경기를 5차전까지 끌고 가는 예상 밖의 투혼을 보였다. 한 시즌 만에 절대 강자의 이름표를 반납했지만, 플레이오프 턱걸이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KB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낸 후 우승만 놓쳤던 1년 전보다 훨씬 편안한 시즌 엔딩을 맞이했다.
포지션 | 선수 |
가드 | 김은선(22, 170cm) 사카이 사라(30, 165cm) 성수연(20, 165cm) 염윤아(38, 177cm) 이여명(24, 163cm) 이채은(25, 171cm) 허예은(24, 165cm) |
포워드 | 강이슬(31, 180cm) 고현지(20, 182cm) 김민정(31, 181cm) 나윤정(27, 172cm) 노혜경(22, 178cm) 양지수(23, 174cm) 이윤미(25, 172cm) |
센터 | 박지수(27, 196cm) 송윤하(19, 179cm) |
박지수
다시 절대 1강이다. 박지수의 합류는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WKBL 최초의 정규리그 6관왕, 7관왕 기록을 세웠던 박지수의 지배력은 비교 대상이 없다. 지난 시즌 리그를 완벽하게 압도했던 김단비(우리은행)의 정규리그 공헌도는 29경기, 964.45였다. 공헌도 순위는 총점이 기준이지만, 경기당 평균으로 환산하면 33.26이다. 그런데 이전 시즌 박지수가 기록한 공헌도는 29경기 1283.90, 평균으로는 44.27점이었다. 박지수는 외국 선수가 있었던 시즌에도 경기당 30점 이상의 공헌도를 기록했다. 공수에서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것 외에 팀 전체를 살리는 선수다. 임근배 삼성생명 단장이 "혼자서 50점을 가져가는 선수"라고 평가한 박지수는 KB는 물론 국가대표에서도 대체 불가의 절대 자원이다. 박지수가 있는 KB와 없는 KB는 완전히 다르다. 박지수 하나로 인해 KB는 우승 후보가 아니라 절대 1강이 된다. 사실, 박지수 합류 하나면, KB의 성적 기대값에 대한 그 외의 분석은 큰 의미가 없다.
▲ 박지수 입단 후, 박지수 유무에 따른 KB 성적 차이 | ||||
비고 | 경기수 | 승 | 패 | 승률 |
박지수 출전 경기 | 207 | 159 | 48 | 0.768 |
박지수 결장 경기 | 76 | 25 | 51 | 0.329 |
▲ 박지수가 정상적으로 뛴(21-22,23-24) 시즌과 그렇지 않았던 시즌(22-23, 24-25)의 KB 성적 비교 | ||||||||
시즌 | 득점 | 실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 2P | 3P |
2023-24 | 72.7 | 61.1 | 45.0 | 20.4 | 7.0 | 3.2 | 48.3% | 29.3% |
2021-22 | 78.7 | 71.1 | 41.4 | 20.3 | 5.8 | 2.7 | 49.4% | 37.7% |
2024-25 | 59.3 | 60.8 | 36.6 | 15.8 | 7.0 | 2.7 | 43.0% | 26.7% |
2022-23 | 65.7 | 70.8 | 38.8 | 16.0 | 6.6 | 1.6 | 43.9% | 25.1% |
박지수가 입단한 2016-17시즌 이후, KB는 박지수가 출전했던 207경기에서 77%에 이르는 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박지수가 없었던 경기에서의 승률은 33%에 못미쳤다. 박지수가 정상적으로 시즌을 치른 2021-22 시즌과 2023-24시즌의 KB는 가공할 득점력을 자랑했고 득실 마진에서 +7.6, +11.6의 압도적인 수치를 자랑했다. 그러나 박지수가 9경기 출전에 그친 2022-23시즌과 해외 진출로 없었던 2024-25시즌에는 모든 수치가 역전됐다. 득실 마진이 마이너스였던 것은 물론 리바운드와 블록, 2점슛 야투율에 어시스트와 3점슛 성공률도 떨어졌다.
박지수의 활약은 팀 전체를 살린다. 영민한 가드 허예은의 경기 운영을 더 손쉽게 하고, 리그 최고의 슈터 강이슬은 자신의 장점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강이슬은 지난 시즌, KB에서 가장 희생을 많이 한 선수다. 팀 내 리바운드 1위였고, 적극적으로 인사이드에서 몸싸움을 펼치며 궂은일도 담당했다. 3&D가 아닌 3점슛을 강점으로 하는 주득점원인 강이슬의 변화는 팀 사정을 위한 최선이었을지 모르지만, 강이슬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는 그림은 아니었다. '한국 여자농구 최고의 슈터'는 자신의 슛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3점슛 1위는 강이슬의 몫이었지만, 성공률은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강이슬의 프로 통산 3점슛 성공률은 무려 37.1%다. 하지만 지난 시즌은 달랐다. 프로 입단 후, 강이슬이 확실한 슈터로 자리매김했던 2014-15시즌 이후 최악의 성공률인 28.7%에 그쳤다. 강이슬은 박지수가 온전히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던 2022-23시즌에도 3점슛 성공률이 29.9%였다. 신장이 좋은 선수이기에 박지수가 없으면 골밑 싸움에 더 적극적으로 가담해야 하고, 외곽에서의 기회도 더 많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박지수가 정상적으로 활약하면 강이슬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또한 상대는 박지수-강이슬 라인에 최소 수비 3명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정상적인 2대 2 수비는 힘들다. 결국 박지수-강이슬을 제외한 자리에 오픈 찬스가 만들어진다.
KB는 그래서 외곽슛 제 2옵션의 역할을 하는 선수가 얼마나 제몫을 해주느냐에 따라 경기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KB의 팀 3점슛 성공률이 무려 37.7%를 기록했던 2021-22시즌에는 외곽 1옵션 강이슬(42.8%)을 비롯해, 심성영(36.7%), 최희진(36.7%), 허예은(32.9%) 등, 경기당 2개 이상의 3점슛을 시도한 선수들이 모두 높은 성공률을 자랑했다. 이들 모두 강점을 유지하면, 비교적 시도가 적은 선수들에게는 더 완벽한 기회가 열린다. 팀 3점슛 성공률이 상당했던 이유다. 팀당 경기수가 30경기 이상이 된 단일 리그 이후에 팀 평균 3점슛이 35%를 넘었던 것은 이때의 KB가 유일하다.
KB의 주전 가드 허예은도 2023-24시즌에 3점슛 성공률을 37.1%까지 끌어올렸다. 지난 시즌 29.2%로 떨어졌지만, 전체적으로 외곽슛 시도 비율이 높아지면서 자신감은 유지하고 있다. 박지수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 완벽한 찬스가 많아진다. 지난 해 FA로 영입한 나윤정도 장점이 3점슛인 전형적인 슈터다. 박지수와 동기인 나윤정은 우리은행에서 활약하며 프로 통산 30% 이상의 3점 성공률을 기록했고, KB로 이적한 지난 시즌에도 부상 전까지 20경기에서 평균 29분을 뛰며 35.0%의 3점슛 정확도를 보여줬다. 과거의 우리은행도 훌륭한 선수들이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는 팀이지만, KB는 여기에 수비 부담까지 덜어줄 수 있는 팀이다. 슈팅 능력만 따지면 나윤정은 강이슬과 자웅을 가릴만큼 확실한 장점을 갖춘 선수다. 강이슬에 나윤정까지 외곽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한 명을 버리는 선택은 상대에게 매우 곤혹스럽다. 지난 시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신인 센터 송윤하도 경기당 1개 이상의 3점슛을 시도해 26.9%로 나쁘지 않은 확률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시아 쿼터로 선발한 사카이 사라 역시 외곽슛이 나쁘지 않다. 프로 통산 212경기에서 393개의 3점슛을 시도한 만큼, 그렇게 많은 시도를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33.6%의 적중률을 보였다. 외곽 2옵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들이 KB에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박지수 혼자 무쌍을 찍으며 상대를 궤멸시킬 범위도 광역권인데다가, 박지수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24-25시즌이 역대급 저득점 시즌이었지만, 다음 시즌 KB는 모든 걸 무시하고 '공격 앞으로'를 외칠 수 있다. '공격은 인기를, 수비는 성적을'이라고 하지만 박지수가 중심을 잡은 KB에게 이는 해당하지 않는다. 어디가 됐든, KB가 중점을 두는 부분이 상대 전력에 균열을 내는 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KB는 이미 2021-22시즌에 평균 70점 이상을 실점하고도 8할이 넘는 승률로 정규리그를 압도하고, 챔프전 3경기를 평균 15점차로 제압하며 통합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고민이었던 4번
박지수가 들어오면서 모든 퍼즐의 완성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KB에게 고민이 되는 지점은 4번 포지션이었다. 4번이라고 했지만, 박지수와 함께 뛸 때의 4번 역할은 물론, 박지수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며 포스트를 지킬 수 있는 역할까지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박지수에 대한 상대 견제를 직접적으로 풀어줄 수 있는 자리이며, 박지수로 인한 낙수효과를 가장 가까이서 누릴 수 있는 자리다.
이 역할은 주로 김민정이 해왔다. 데뷔 이후 꾸준함의 상징으로 노력형 선수의 본보기가 된 김민정은 외부보다 내부에서의 평가가 특히 좋은 선수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어진 이후 박지수와 본격적으로 합을 맞췄고 3시즌 연속 평균 10+득점을 올렸다. 특히 박지수가 시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2022-23시즌에는 투혼을 발휘하며 무너진 KB의 인사이드에서 첨병 역할을 했고, 14.3점으로 자신의 득점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었다. 하지만 목 부상 이후 좀처럼 이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23-24시즌 이후 두 시즌에는 평균 출전 시간이 대폭 줄었고, 코트에서의 영향력도 부족했다. 지난 시즌에는 부진이 더욱 심했다. 2점 야투율이 50%가 넘는 선수였지만, 지난 시즌에는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민정이 전형적인 4번이었다면, 박지수가 벤치로 들어올 때 역할을 대신했던 선수는 김소담이다. 과거 KDB생명 시절부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김소담은 당초 신정자의 뒤를 이을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받았지만, 그만큼 만개하지는 못했다. KB에서도 박지수의 백업 역할을 했지만 그 이상의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꾸준함도 부족했다. 박지수가 없었던 지난 시즌에도 1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은퇴를 선택했다.
그런데 KB에게는 지난 시즌 후반, 이 자리에 대한 해법이 생겼다. 신인 송윤하의 등장이었다. 송윤하는 22경기에 평균 24분 8초를 뛰며 7.8점 5.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본격적으로 중용됐고, 시즌 막판 활약으로 KB가 신한은행과의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79cm로 센터 치고 큰 키라고 할 수는 없지만, 힘과 투지가 좋아 골밑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줬고, 미들슛도 안정적이었다. 슛 거리도 길어서 찬스가 나면 3점슛도 주저 없이 던졌다. 김민정이 비시즌 동안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지만, 지난 시즌을 기준으로 한다면, 집중 견제를 받을 박지수의 최근접 가디언은 송윤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송윤하는 김민정처럼 활용되면서 김소담의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KB에게 상당히 매력적이다.
박지수-송윤하가 프론트 코트를 확실하게 책임지면 KB의 전체적인 4번 포지션 활용도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김민정의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고, 2023-24시즌에 1순위로 선발한 고현지의 성장도 도모할 수 있다. KB는 고현지를 선발할 당시, 장기적으로 김민정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고교 시절의 잠재력으로는 김민정보다 더 높은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는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고현지의 부상 회복과 발전 속도도 문제였겠지만, KB의 인사이드가 실험적인 운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박지수가 있는 시즌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에 최고참 염윤아도 부상에서 복귀했다. 염윤아는 가드로 구분되어 있지만 사실상 3-4번 역할을 하는 선수이며, 공격에서는 외곽에서 득점을 노리기보다 특유의 커트인에 강점이 있다. 물론 3점슛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역할의 후보군에 오르는 선수들 모두가 외곽도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상대 수비 범위를 여러모로 괴롭힐 수 있다는 점도 KB의 강점이다.
굳이 아시아 쿼터까지...
6개 구단 중 KB에게 가장 의미 없는 행사가 아시아 쿼터 드래프트였다. 지난 시즌 KB는 나가타 모에를 선발해 최고의 효과를 거뒀다. 은근하고 꾸준하게 활약을 이어가던 모에는 결정적인 위닝샷과 버저비터를 성공하며 KB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플레이오프에서의 명승부에 큰 기여를 했다. 개인 기록 면에서 더 앞섰던 타니무라 리카(신한은행)와 우승을 차지한 이이지마 사키(하나은행/전 BNK) 등 먼저 선발된 선수들을 제치고, 초대 아시아쿼터 선수상을 수상했다. 지난 시즌 KB에게 아시아 쿼터는 상당한 의미가 됐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모든 팀들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자신들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선수 찾기에 골몰했지만, KB에게는 사실상 '괜찮은 식스맨 찾기'였다. 게다가 드래프트 순번도 3번으로 나쁘지 않았다. 다른 팀들은 선수들의 기량과 컨디션은 물론 포지션과 자신들의 상성까지 맞춰야 했지만, KB는 '게 중 제일 좋은 선수 데려다가 알아서 끼워맞추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카드는 사카이 사라. 일본 여자농구 명문 오오카고를 졸업한 후 대학을 거치지 않고 W리그 아이신에 입단해 11년을 뛴 베테랑이다. 특히 최근 7시즌은 팀의 주전 가드였다. 아이신에 히라스에 아스카가 영입되는 등 가드 경쟁력에서 밀린 부분도 있고, 전성기의 기량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KB로서는 매우 쏠쏠한 선택이다. 2라운드 선택을 포기하고 한 명만 선택했는데, KB이기에 이러한 결정이 무리로 보이지 않는다. KB의 현재 전력을 볼 때, 2라운드에 선발한 아시아 쿼터 선수가 뛰는 상황은 승패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팀의 유망주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 낫다.
사카이 사라를 영입하며 KB는 경험 많고 노련한 가드를 확보했다. 지난 시즌 아시아 쿼터 선수들의 활약에도 나타났지만, 젊은 선수들보다는 경험있는 선수들이 더 나은 실력을 보여줬다. 일본 가드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다해도 큰 문제는 없다. KB는 압도적인 포스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상대와 속도전을 펼칠 필요가 없다. 정확하면 무조건 이긴다. 그런 면에서 사라는 상당히 안전한 카드다.
KB의 주전 가드 허예은은 지난 시즌 평균 37분 44초를 뛰었다. 리그 전체에서 유일하게 총 1100분 이상을 소화했다. 출전 시간에서 압도적인 1위였다. 젊은 가드 자원들이 출전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경우가 드문 것은 아니기에 상황에 따라 배분만 잘하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KB는 허예은을 제외하면 확실히 믿고 맡길 수 있는 가드가 등장하지 않았다. 심성영의 역할을 해 줄 선수를 찾지 못했다. 따라서 허예은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체력 관리 모두가 고민이 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박지수가 포함된 베스트 라인업에서 굳이 찾아낸 고민이지, 다른 팀들이 안고 있는 약점에 비하면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사라의 합류는 이 고민조차 희석시킬 수 있는 요소다. 아시아 쿼터가 모든 팀들에게 '약점 보완'이 목표였던 반면, KB에는 '강점 강화'였다고 봐도 될 것이다.
결론
KB의 우승을 의심하기 보다, KB가 정규리그에서 몇 번 패할 것인가를 맞추고, KB가 정규리그에서 작성할 수 있는 기록을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이들이 어떤 성적을 낼지'보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할지'에 더 초점이 맞춰질 것 같다. 물론, 섣부른 예측일 수 있다. 아직 각 팀들의 본격적인 여름나기도 진행되지 않았기에 변수는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KB가 지금 구성한 선수단을 시즌까지 정상적으로 가져간다면, 적어도 KB와 관련한 변수는 등장하기가 어렵다.
2023-24시즌, KB는 챔프전에서 라이벌 우리은행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통합 우승에 실패했다. 하지만 정규리그에서 보여준 KB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우리은행이 23승 7패, 승률 0.767의 훌륭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KB의 대항마가 되지 못했다. KB는 27승 3패로 시즌을 마치며 승률 9할을 찍었다. 리그 최다 득점 팀이었고, 최소 실점 팀이었다. 리그 평균보다 6.3점을 더 올렸고, 5.3점을 덜 내줬다. 득실 마진은 무려 +11.6.
국내 선수 최고의 라인업에 외국인 선수마저 존쿠엘 존스와 모니크 커리를 보유했던 2016-17시즌의 우리은행을 제외하면 이 정도의 압도적 시즌을 치른 팀은 없었다. 이 당시 우리은행은 리그 유일의 평균 70점대 득점과 리그 유일의 50점대 실점으로 득실 마진 +14.1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팀들의 득실 마진이 마이너스였던 시즌이다. 그랬기에 33승 2패, 승률 0.943으로 한국 프로스포츠계에 역사를 쓸 수 있었다. 이 시즌의 우리은행을 제외하면, 2년 전의 KB가 가장 압도적인 정규리그를 보낸 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프로스포츠 최초의 통합 6연패를 달성했던 '레알 신한은행'도 득실 마친이 +10을 넘는 시즌을 보내지는 못했다. 2016-17시즌의 우리은행이 깨기 전까지 최고의 성과였던 2008-09시즌(37승 3패, 승률 0.925)에 기록한 +9.9의 득실 마진이 최고였다.
▲ KB 선수단 비교 | ||
포지션 | 2023-24시즌 | 2025-26시즌 |
가드 | 성수연, 신예영, 염윤아, 심성영, 이채은 이혜주, 허예은 |
김은선, 사카이 사라, 성수연, 염윤아, 이여명 이채은, 허예은 |
포워드 | 강이슬, 고현지, 김민정, 김예진, 노혜경 안정현, 양지수, 이윤미 |
강이슬, 고현지, 김민정, 나윤정, 노혜경, 양지수, 이윤미 |
센터 | 김소담, 박지수 | 빅지수, 송윤하 |
압도적인 정규리그를 보냈던 2023-24시즌, 선발 출전 기준으로 당시 KB의 베스트 라인업은 허예은-강이슬-김예진-염윤아-박지수였고, 주요 백업 자원은 김민정, 이윤미, 양지수, 김소담, 심성영(평균 출전시간 순)등 이었다. 챔프전에서는 김예진 대신 심성영이 선발로 등장했다. 그런데 당시 라인업보다 현재의 로스터가 더 안정적이다. 주요 가용 인원에서 심성영, 김예진의 이적과 김소담의 은퇴가 있지만, 새롭게 구성되는 시즌은 이 부분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KB 라인업의 핵심은 허예은-강이슬-박지수다. 강이슬과 박지수는 여전히 전성기에 있고, 허예은은 아직도 성장세에 있는 선수다. 2023-24시즌은 주요 백업 역할을 했던 김민정이 부상 후유증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시즌이다. 주장이었던 염윤아가 38살인만큼 당시보다 쓰임이 줄어들겠지만, 루키 시즌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송윤하와 외곽에서 무서운 슈팅을 보여주는 나윤정, 아시아 쿼터 사카이 사라가 가세한 새 시즌 라인업이 더 무게감이 있다. 또한 지난 시즌에 가능성을 보여줬던 이채은, 이윤미, 양지수도 활용 면에서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선수들이다. 큰 부상으로 이적 후 아직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지만, 김은선 역시 우리은행 시절, 박혜진의 공백을 채웠던 경험이 있고, 고현지 또한 1순위 신인인만큼 여전한 기대치가 있는 선수다. KB의 전력 자체가 32승 3패를 거뒀던 2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
반면 다른 팀들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졌다. 챔프전에서 KB를 무너뜨린 우리은행은 박지현-박혜진-김단비-최이샘이 중심을 잡고 있던 팀이다. 박지현-박혜진-김단비 트로이카는 우리은행을 슈퍼팀으로 만든 주력이다. KB가 박지수-강이슬의 원투펀치가 막강했다면,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이 꾸준히 구축했던 3개의 중심축이 여전히 살아있던 시즌이다. 물론 박혜진이 부상으로 17경기 밖에 나서지 못했지만, 박지현-김단비 조합에 최이샘과 외곽 나윤정의 활약, 그리고 삼성생명에서 이적한 후 한단계 더 올라선 모습을 보인 이명관의 역할 등이 이어지며 의미있는 경쟁력을 보여줬다. KB에게 정규리그에서 유일하게 두 번 이상(2승 4패) 이긴 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난 시즌, 무너진 전력으로도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했지만, 2년전과 비교해 힘이 상당히 빠진 것이 사실이다.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카드는 35세의 베테랑 김단비가 유일하다. 지난 시즌에 성장한 선수들과 새롭게 가세한 선수들, 그리고 바뀐 아시아 쿼터 등 전력 상승 요소가 존재하지만, 여전히 김단비를 제외한 선수들은 확신의 영역보다는 플러스 알파의 개념에 더 부합한다. 2024-25시즌보다는 나은 구성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2023-24시즌과는 차이가 상당하다. 포지션 밸런스가 워낙 좋은 삼성생명과 지난 시즌 정상에 오른 BNK도 2023-24시즌의 우리은행에 비할 수 있는 전력은 아니다. KB는 당시의 우리은행을 밀어냈던 전력보다 더 나아졌고, 다음 시즌에는 그 당시 우리은행과 비견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춘 팀들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KB의 전력이 더욱 강해보이는 이유다.
오히려 KB가 어떤 농구를 할 지가 더 관심이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형태가 있다. 가드 허예은에 골밑 박지수, 외곽에 강이슬이 도사리고 있고, 4번 자리에서 송윤하가 인 앤 아웃 플레이를 펼치는 그림이다. 남은 한 자리는 상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누구를 어떻게 쓰든 상관 없다. 나윤정으로 외곽을 강화할 수도 있고, 사카이 사라로 투 가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가드의 높이가 너무 낮아진다는 우려가 있지만, 상대의 가로 수비만 벗어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세팅이 된 후에는 박지수와 강이슬이 상대 수비 3명을 끌고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라인에서 2대 2가 된다면 KB에게는 땡큐다. 남아있는 한 자리의 주인을 찾아 베스트 라인업을 구성하겠지만, 다양한 형태로 많은 선수들을 기용할 수 있는 상황도 마련할 수 있다. 송윤하의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김민정의 회복과 고현지의 성장 여부에 따라 박지수의 출전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이전보다 용이해질 것이다.
KB는 상대에 맞춰 농구를 할 필요가 없다. 박지수를 상대로 자기 농구를 펼칠 수 있는 대항마는 없다. 모든 팀들이 KB에 맞춰 나오는 상황이기에, KB는 그냥 자기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농구를 하면 된다. 그러니 허예은-강이슬-송윤하-박지수에 상황에 맞는 1명을 조합하고, 박지수의 골밑 파괴를 앞세워 확률 높은 농구를 하면 된다. 가장 쉬운 농구다. 하지만 이제는 포스트에 박혀 있는 박지수가 재미 없다. 과거에는 치열한 순위 경쟁 속에서 가장 안정적인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기에 박지수에게 높이를 활용한 골밑 위주의 농구가 강조됐다. 당연히 앞으로도 박지수가 안에 있는 것이 가장 높은 확률일 것이다. 아시아 쿼터에서 두 명의 센터가 등장했지만, 박지수를 일대일로 견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박지수가 밖으로 나오는 상황이다. 상대는 꾸준히 박지수를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애쓰는데, 사실 밖으로 나와도 박지수는 위협적이다. 슛 거리가 길고, 피딩 능력이 좋다. 밖으로 나온 박지수에게는 더블팀이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다행일 수 있겠지만, 안팎을 오가는 형태가 되면 상대의 수비도 혼란스럽다. 박지수가 나온 공간을 송윤하가 지킬 수도 있고, 강이슬이나 염윤아는 빈 공간으로 들어가는 플레이에도 강점이 있다. 박지수의 쓰임이 더 유연할 수 있다. 박지수 스스로도 골밑에 묶여 있는 것보다는 내외곽을 오가는 플레이를 선호한다. 어쩌면 그것이 최근 세계 농구의 추세에서 센터에게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박지수는 튀르키예 리그에서도 안에 머물기보다는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유연한 플레이를 펼쳤다. 오히려 송윤하가 골밑에 들어가고 박지수가 나오는 형태의 농구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당장의 확률은 박지수가 안에 머무는 것보다 떨어질 수 있지만, 훨씬 다양한 그림과 옵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조합의 문제다. 그런데 '어떤 조합이 먹힐 지'라기 보다 '더 효과적일지'의 고민이다. 과거 KB는 박지수를 놓고 하나의 확실한 형태를 가져갈 수 있는 팀이었다면, 현재의 구성과 상대팀들의 경쟁력을 고려할 때, 이제는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팀이라는 생각이 든다. KB에게는 다음 시즌 1라운드가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KB가 절대 1강으로 가장 강력한 전력을 구성했다는 것을 모르는 팀들은 없다. KB가 1라운드에 다른 팀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위력을 행사하면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면, 나머지 팀들의 시즌 운영은 현실적으로 변경될 수 밖에 없다. 'KB가 당연히 1위를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시작도 하기전에 높은 순위와 이변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팀들은 없다. KB는 1라운드에 그런 여지를 없애버리는 게 중요하다. 압도당한 팀들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시즌 운영, 챔프전까지 도모하기 위해 가급적 3위 이상을 노리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다른 팀들에게 '선택과 집중'이 대세가 되면, KB의 시즌 운영은 더욱 쉬워질 수밖에 없다. 주요 자원들이 모두 국가대표에 차출된 상황이 변수라면 변수겠지만, 비시즌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KB 팬들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 이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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