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BL은 지난 시즌부터 아시아 쿼터 제도를 운영 중이다. 아시아 쿼터 제도는 일종의 외국인 선수 제도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있는 가운데, 아시아 쿼터를 활용하는 리그에서는 당연히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 쿼터 선수를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자국 선수로만 이루어진 리그에서 아시아 쿼터 제도를 활용하면 그것은 그냥 외국인 선수 제도다. WKBL이 과거 중국 선수들로 외국인 선수 제도를 운영했던 것 처럼, 지금은 일본 선수들을 대상으로 외국인 선수 제도를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
새롭게 제도가 시행되면 당연히 그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찬반 논란이 생긴다. 아시아 쿼터 제도 역시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쪽의 의견을 무지몽매한 것이라고 폄훼하고, '생각 없는 이들이 여자농구를 망가뜨린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추진하는 정책 방향의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의 아쉬움은 있지만, 그만큼 숙고하고 내부적으로도 많은 고민이 있었던 사항이다. 더 나은 방법을 위해 도출한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다고 매도할 필요는 없다. 아무튼, 아시아 쿼터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국인 선수 제도부터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 선수 제도의 중단
2019-20 시즌이 끝난 후, 본격적인 비시즌 일정이 시작되기 전. WKBL 고위 관계자와 만날 일이 있었다. 당시 루키 편집장이었던 내게 연맹 측에서 요청한 자리였다. 새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제도를 중단할 예정이라며, 의견을 물어왔다. WKBL은 루키 뿐 아니라, 다른 농구 전문지와 주요 매체 기자들에게도 이런 내용을 전달함과 동시에 의견을 청취했다. 당시 내 입장은 제도 변경에 반대였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로 리그는 리그가 구성할 수 있는 한, 최상의 전력을 갖춘 선수들로 최고의 경기력을 지원해야 한다. 기존에 적용되던 제도를 고쳐서 기량이 좋은 선수들의 출전을 막는 리그가 궁극적으로 '프로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 그런 조치로 인해 취할 수 있는 확실한 목적과 이익이 있다면 수긍할 필요가 있다. '최상의 경기력 제공'과 '프로 리그로서의 자격'을 양보하더라도,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이 납득할 것들이라면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외국인 선수 제도를 잠정 중단하면서 젊은 국내 선수들에게 뛸 수 있는 기회를 더 주려고 한다. 이를 통해 젊은 선수들이 더 성장할 수 있고,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어린 유망주들의 저변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것이 WKBL이 밝힌 이유였다. 당일, 자리에서도 말했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모두 도모하기에는 서로 다른 방향에 존재하는 결론이다. 외국인 선수에게 밀려 뛰지 못하는 젊은 선수들이 기회를 얻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당장 대한민국 국가대표 경쟁력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 성과 구조는 KB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지수(KB)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크다. 아시아 상위권과 세계 레벨의 팀들과의 경기에서 경쟁력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우선 박지수가 상대의 높이와 대등하거나 우위에 서는 경기력을 가져가야 하고, 이후에 다른 조건들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센터 농구를 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런 빅맨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과 있다가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박지수가 대표팀에서 낙마하자마자 FIBA 월드컵에 도전하던 대표팀의 목표 자체가 바뀌었고, 결과에 대한 부담을 누구도 지우지 않았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내가 대표팀 감독을 하던 마지막 시점에 이미 '어린 박지수'가 대표팀의 중심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지금은 박지수의 비중과 역할이 더 압도적이다. 박지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박지수 없는 농구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박지수가 없었다면 모를까, 팀의 확실한 중심인 박지수가 빠지게 되면, 다른 플랜B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대표팀의 역량 강화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박지수의 경쟁력 강화와 유지다.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영원한 약점인 피지컬과 제공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WKBL에는 박지수의 대항마가 전무하다. 국내 선수로 박지수에 대해 정상적인 수비를 할 수 있는 팀은 없다. 그나마 외국인 선수가 있을 때는 박지수와의 일대일 센터 수비가 존재했지만, 국내 선수로만 맞서게 되면 도움 수비 등 변칙 수비 밖에 방법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진지하게 싸움을 펼쳐야 하는 나라들 중, 박지수에게 센터 싸움을 이렇게 가져가는 나라는 없다. 비슷한 신체 조건과 정상적인 센터 싸움으로 박지수를 상대한다. 그런데 WKBL의 박지수는 시즌 내내, 정상적인 센터 싸움은 해보지도 못하고, 변칙적인 수비만 상대하다가 국제 대회에서 낯선 정상적인 수비(?)를 만나게 된다. 경쟁력 유지가 어렵다. 국제 대회에서 박지수가 경쟁력을 가져가지 못하면, 다른 조건들이 잘 맞물려도 좋은 결과를 내기가 힘들다. 따라서 '박지수의 대항마가 없는 리그'는 우리 대표팀의 국제 대회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 선수가 없으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국내 빅맨들이 기회를 얻고,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외국인 선수 제도 중단에 찬성했던 지도자들이 같은 의견을 말했다. 한 감독은 자신이 지도하는 팀의 특정 선수를 언급하면서, "용병이 있으면 기량이 나은 그 선수를 쓸 수 밖에 없다. 없으면 쟤를 기용 안할 수 없다. 어떻게든 써야 한다. 쟤가 우리팀에서 박지수와 빅맨 싸움을 할 수 있는 선수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 국내 선수를 통한 박지수 대응 센터 발굴은 우리 몫이다. 그거 하라고 여기 있는 거 아닌가"라고 호언장담했다. '외국인 선수가 없으면, 어떻게든 지금의 국내 빅맨을 성장시켜서 써먹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있을 때 총 11경기에 출전했던 이 선수는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어진 뒤로는 단 1경기도 뛰지 못했고, 은퇴했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어진 뒤, 그 자리를 차지해 박지수와 경쟁을 펼쳤던 뉴페이스 빅맨은 없다. 그 자리를 채우고 성장한 선수들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국가대표 경쟁력에 도움이 될 유의미한 전개는 없었다.
하지만 각 팀 마다 6개의 자리가 비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자리를 채우는 선수는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저변 확대의 가능성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WKBL의 목적과 방향성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성과와 발전을 거두기 위한 노력이므로,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변화의 이유
KBL은 WKBL보다 먼저 아시아쿼터 제도를 시행했다. 2022년부터 필리핀과 일본 선수들이 기회를 받았다. 특히 필리핀 선수들이 대거 KBL에 등장했고, 론 제이 아바리엔토스, 이선 알바노, 샘 조세프 벨란겔, 렌즈 아반도, 저스틴 구탕, 케빈 캠바오, 칼 타마요 등 많은 선수들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KBL은 당시 "필리핀 선수들이 KBL에 진출하면서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들과의 경쟁을 통해 국내 선수들도 성장해서 국가대표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그런데,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추일승 감독은 다른 의견을 내놨다. 'KBL의 흥행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표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필리핀 선수들은 타고난 운동 능력과 개인기를 앞세운 농구를 한다. 국내 선수들이 보여주지 못하던 덩크슛이나 신체 조건을 활용한 볼 거리를 많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플레이를 보며, 우리 선수들이 당장 배울 점은 거의 없다. 그들의 장점이 대부분 피지컬과 개인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수들이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반면 필리핀 선수들은 그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가드 자원들의 세기나 완급 조절, 경기 운영 능력에서 우리나라 선수들보다 부족하다. 이는 경험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부분이다.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에, KBL에서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필리핀 대표팀의 경쟁력이 더 좋아질 수 있다. 냉정히 봤을 때, 우리 대표팀의 경쟁력 면에서는 손해일 수 있다"
하지만 추일승 감독은 KBL의 아시아 쿼터 제도 도입에 반대하지 않았다. KBL에서도 지도자 생활을 오래 했던 그는 "KBL의 흥행과 국가대표의 발전이 늘 같은 선상에 있을 수는 없다. 반드시 취해야 할 목표가 있는데, 이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진지하게 어느 쪽을 선택할 지를 고민하고, 손실이 발생하는 부분은 감수해야 한다. 국가대표 경쟁력 강화도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KBL의 인기를 높이고 흥행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KBL이 분명한 목표를 갖고 추진하는 만큼, 의도한 효과를 거두면 된다"고 말했다. 필리핀 아시아 쿼터 선수들의 등장으로 KBL에서 볼 거리가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KBL 각 구단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선수도 있고, 확실한 볼 거리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선수도 있다. 이번 시즌에도 캠바오의 폭발력은 큰 이슈였고, 타마요는 LG의 창단 첫 우승에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였다. 또한 이들로 인해 KBL에 대한 동남아권의 관심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KBL 경기에 단체 관람오는 필리핀 관중도 늘었고, KBL 유튜브 채널과 SNS 계정의 동남아권 구독과 팔로우도 대거 상승했다. 추일승 감독은 필리핀 선수들의 KBL 진출과 반대로, "우리나라 선수들도 더 수준 높은 리그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었다.
'리그 흥행'과 '국내 농구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데, 그것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연맹의 직무유기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다른 방향에 있다면 취사 선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WKBL은 외국인 선수 제도를 중단하는 것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외국인 선수가 없는 가운데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고, 국내 선수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리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국가대표로 올라서는 선수들이 배출되는 선순환 구조를 원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채 2년도 되지 않아, 경기력에 대한 비판이 등장했다. 이전보다 '박지수라는 크랙'에 대한 논란이 더 커졌다. 박지수와 매치업 가능한 국내 선수의 등장은 요원했고, 박지수와 관련한 판정에 대해 이익이다-손해다의 논란만 가중됐다. 공정하다는 평가는 거의 없었다. 사실 '외국인 선수가 있었을 때의 경기력이 더 나았다'라고 확언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탯이나 관중 지표가 의미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고, 여전히 WKBL은 마니아성이 강하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근거가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 외부에서 평가하는 이들은 자신이 이를 어느 입장에서 조망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다만, 내부에서의 평가는 단호했다. 외국인 선수 제도 중단에 동의했던 지도자들 중에서도 이후의 시즌을 치르며 전반적인 경기력에 대해 "이건 정말 아니"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본인들이 당초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에 많이 못미쳤던 것이다. 각 팀의 에이스급 베테랑들도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가 하는 게 농구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선수도 있었다. "용병 있던 시절에는 득점을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래도 농구처럼 왔다 갔다는 했다"라는 자조도 나왔다. 물론 팀 당 1명이던 외국인 선수의 유무에 따라 정상적인 플레이의 퀄리티가 달라진다는 것 자체도 문제고, 이러한 것들이 'WKBL은 프로 수준이 아니다'라는 비판의 요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최소한의 수준 유지를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 제도 중단 이후의 퀄리티 하락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전부터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교류를 이어가고자 했던 WKBL이 아시아 쿼터 제도를 꺼내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5년도 버티지 못하고 정책의 방향을 바꿨다는 지적이 있다. 이 부분은 맞는 말이다. 동일 집행부에서 결정한 것이므로, 사실상 자신들의 과거 제도 변경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국가대표로 올라설 미래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장기적으로 여자농구 저변 확대의 가능성을 더 희박하게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동의하기 힘들다. '한국여자프로농구연맹'인 WKBL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리그인 WKBL 그 자체다. 미래를 위한 투자와 희생도 분명 중요하지만, 프로 수준이 아니라는 비난 속에 있는 리그의 경기력이 제고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냥 인내하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리그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야하고, WKBL에게는 그것이 무조건 제 1의 과제다.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와 대표팀 경쟁력은 냉정히 말해 WKBL이 도모해야 할 직접적인 목적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농구협회의 몫이다. 협회가 미진하여 연맹이 이를 거들 수는 있지만, 당면한 가장 큰 과제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아시아 쿼터 선수들의 등장으로 선수들의 기회가 줄어들어 성장 동력이 박탈되고 국가대표 경쟁력도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외국인 선수들과 더불어 국가대표를 은퇴한 선수들도 출전을 제한해야 한다. 국가대표를 사실상 은퇴한 김단비(우리은행)는 지난 시즌 WKBL 개인 8관왕이었고, 배혜윤(삼성생명)은 베스트5에 선정된 센터였다. 부상으로 정상은 아니었지만 박혜진(BNK)이 없었다면 BNK의 우승도 불가능했다. 리그에서 핵심적인 선수로 활약하지만 국가대표로는 뛸 수 없는 김소니아(BNK)도 이 논리 하에서는 한국에 도움되지 않는 선수다. 국가대표에 직접적으로 힘을 보태지 않으며 리그에서 고액 연봉과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이 선수들이야 말로 장기적으로 젊은 선수들의 기회를 뺏는 이들 아닌가? 안다. 논리의 비약이고 무리수다. 냉혹한 현실에 그대로 부딪히다가 풀뿌리가 상하는 것에 대한 우려과 대안도 필요하겠지만, 온갖 제한과 보호를 통해 온실을 만드는 것 또한 올바른 방법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내 생각만 합리적이고, 반대하는 의견은 WKBL과 한국 농구를 망치는 것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전체적인 발전을 더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확증 편향에 빠진 오류들이 많다.
아시아 쿼터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을 국내 선수들이 있었을 것이고 이는 분명 아쉬움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는 아시아 쿼터 지원자들에게 경쟁력에서 밀리는 선수들이라면 1군 무대에서의 경험이 지금 당장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KB의 송윤하와 우리은행의 이민지는 지난 시즌 신인왕이었던 홍유순(신한은행)과 함께 주목받은 신인들이다. 만약 박지수와 박지현이 해외리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그만큼의 기회가 주어졌을까? 모든 면은 장단점을 함께 보고, 가장 나은 방향으로 가야하며, 이는 때에 따라 선회의 유연성도 필요할 수 있다.
WKBL에 국내 선수가 뛸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성장 중인 젊은 선수들에게는 당연히 부담이며 고민이다. 제도의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가장 크다. 현재 국가대표에서 활약 중인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러한 변수와 관계 없이 대표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량 미달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물론 저변 확대와 학원 농구부의 확대는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WKBL의 주전 쿼터 변화와 보장이 여기에 큰 역할을 할 수는 없다. 19개 팀의 고교 여자 농구부가 WKBL의 제도적 변화에 희망적인 변화를 가졌던 적은 없다. 고등학교와 서울에 소재한 대학의 여자 농구부 신설을 위해 이미 10년 전부터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학원 스포츠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체육계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와 입시 제도, 교과 과정과 공교육의 틀, 그리고 정치권과도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항이기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포기해서도 안되겠지만, 단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장기적으로 여러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문제 해결의 1옵션으로 두게 되면, 직면한 사항에 대한 빠른 대응과 대처가 힘들어지고, 성과를 기대하기 전에 고사할 수도 있다.
외국인 선수제도의 부활?
그렇다면 다시 외국인 선수 제도가 부활할 수 있을까? 전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WNBA에서 활약 중인 미국 선수들의 겨울 리그 활동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를 전면 금지하는 조항 또한 없다. 오히려 중국은 외국인 선수의 수를 늘렸고, 일본도 외국인 선수 제도를 활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WKBL도 이러한 흐름처럼 다시 미국 선수들을 외국인 선수로 선발할 수 있을 지는 확실치 않다. 현실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
우선 비용 문제다. WKBL에 WNBA 출신 슈퍼스타들이 등장했던 때는 자유계약 시기였다. 각 구단의 경쟁 속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WKBL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과 몸값에 대한 현실적인 부담으로 2012-13시즌 외국인 선수 제도가 부활했을 때에는 연봉 상한선이 존재하는 드래프트 시스템을 기본으로 했다. 외국인 선수들의 급여는 월 25,000$가 최대치였다.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3,500만원 수준이며,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구단에 머무는 기간이 보통 7개월 전후임을 감안하면 급여 자체는 2억 5천만원 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단들은 국내에 들어오는 선수들에 대해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매년 WKBL에서 활약하는 선수들 중 절반 정도는 몸값에 못 미치는 기량이라는 지적이 항상 일었다. WNBA에서 이들이 받는 대우를 감안할 때, 월 20,000$ 이하로 줄여도 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 이하로 줄일 경우, 그렇지 않아도 시장이 작아진 WKBL에 에이전트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은 없었다. 이미 팀 당 2명에서 1명 보유로 인원이 줄어들며, 시장 규모가 축소된 WKBL을 대하는 에이전트들의 자세가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제도 부활 초기에는 드래프트에 지원한 인원 중 눈길을 끌었던 선수들이 드래프트 시점에 지원을 포기하는 것이 고민이었다면, 이후에는 아예 지원자 자체에 구단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기준점이 달라졌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마지막으로 활용된 2019-20시즌을 기준으로 할 때, 카일라 쏜튼(KB), 다미리스 단타스(BNK), 마이샤 하인스-알렌(하나은행) 정도의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당시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WNBA에서의 금액적 보장이 여러 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무리해서 해외로 나오지 않는다.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중국과 일부 유럽 리그에서도 훨씬 많은 금액을 지출하고 있다. 이전보다 낮은 수준의 선수들이 훨씬 높은 조건으로 해외 리그를 뛰고 있다. WKBL이 현실적으로 고려했던 범위와 차이가 상당하다.
드래프트 제도도 문제다. 구단이 직접 선수에게 오퍼를 제시하는 것과 드래프트를 거치면 선발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WKBL은 자유 계약을 통한 구단들의 출혈 경쟁을 방지하고, 전력 평준화를 위해 드래프트 제도를 진행하고 있지만, WKBL이 기대하는 목표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출혈 경쟁 방지와 전력 평준화를 도모하면서 경기력과 팬들의 관심을 끌어 올리려면 리그 자체의 수준과 저변이 어느 정도 확보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 드래프트 제도로 장치의 제한을 마련하면, 선발하는 선수들의 하향 평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WKBL과 같은 리그에서는 도태를 막는 것보다 견인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일본 경제 발전 모델에서 호송 선단 방식이 무한 경쟁 과정에서 실패한 것과 같은 예다. WKBL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 제도를 부활한다 하더라도, 이전보다 지출이 훨씬 많아지는 상황을 바라지는 않는다. 구단들이 원하는 수준의 미국 선수들을 데려올 수 없다. 연봉 상한선을 올려야 하고, 점진적으로는 자유계약제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미국이 아닌 유럽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보의 한계가 존재한다. WNBA에서 활약하지 않는 유럽 선수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유럽 리그를 분석하고, 선수들의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국가대표가 국제 대회에서 처음 만나는 유럽 팀들의 정보를 얻을 때도 어려움을 겪는 것이 대한민국 농구계의 현실이다. 각 구단이 아시아 쿼터 제도를 놓고도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시즌이 똑같이 겨울에 진행되는 만큼,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현지 구단들과의 몸값 경쟁도 해야한다. 여러 모로 쉽지 않다.
아시아 쿼터 제도의 시행
그런 면에서 아시아 쿼터 제도는 어느 정도의 절충점이 될 수 있다. 각 구단의 지출과 선수 파악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국내 선수들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선수를 수급할 수 있는 제도다. 또한, 일본 선수의 합류는 남자농구와 달리 국내 여자농구에 환기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 팀들은 보편적으로 훈련이 많다는 인식이 강하다. 분명 사실이다. 그런데 많은 훈련이 비능률적이며 비정상적인 우리만의 잘못된 습관이고, 농구 발전의 저해 요소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선수들 중에도 이렇게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 WKBL의 한 팀이 일본 팀과 합동 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선수들은 우리나라 선수들보다 더 많이, 더 오래 훈련했다. 체육관으로 나오는 시간도 더 빨랐고, 정규 훈련이 끝난 후에는 개인 훈련도 더 적극적으로 했다. 일본의 훈련량이 더 많았다. 힘들지 않냐는 국내 선수의 질문에 "회사 일을 신경쓰지 않고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후 국내 구단 선수들의 훈련 태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현장에서 과정과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적어도 스스로 범할 수 있는 오류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던 분명한 사례다. 이질감이 적은 국가와의 교류는 분명 장점이 더 크다.
그러나 지난 해 시행된 아시아 쿼터 제도의 과정을 보면, 제도 도입을 위해 너무 서두른 감이 있다. 실제로 복수의 구단이 너무 서두르지말고 여러 사항들을 면밀하게 준비해 2025-26시즌 부터 도입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WKBL은 지난 시즌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
결과적으로 첫 해의 아시아 쿼터 드래프트는 대실패였다. '폭망'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1년 뒤 시행을 언급했던 구단들은 "당장 트라이 아웃에 나올 선수들도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WKBL은 '선발 인원의 최소 2배수'가 드래프트에 참여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팀당 2명, 총 12명까지 선발할 수 있는 드래프트에 총 12명이 지원했다. 구단들은 최대한 선수를 선발하고자 했지만, 도저히 뽑을 수 없는 선수도 있어서 1명만 선택하는 경우도 나왔다. 9명이 선발됐다. WKBL이 공언했던 24명(선발 인원의 2배수)은 공수표였다. 이 정도면 분양 사기다. 마치다 루이나 도카시키 라무가 참가했다 해도, 12명 선발에 12명이 지원한 드래프트라면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12명이라도 채워져서 경쟁률 미달이 벌어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첫 단추는 잘 못 끼웠지만, 그 뒤는 나쁘지 않았다. 우선 아시아 쿼터로 선발된 선수들의 기량이 WKBL 주전급이면서도 국내 선수들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어서, 기존 선수들과의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타니무라 리카는 센터가 취약했던 신한은행에서 든든한 주전 역할을 했고, 이이지마 사키는 BNK가 정상에 서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선수였다. KB에서 활약한 나가타 모에는 결과는 물론, 지난 시즌 가장 짜릿했던 승부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했다.
여자 농구는 외국인 선수의 등장으로 확실한 볼거리를 만드는 것이 남자 농구보다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KBL에서 필리핀 출신의 아시아 쿼터 선수들이 눈길을 끌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 탄력으로 호쾌한 덩크와 블록슛을 보여줬던 렌즈 아반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자 농구는 짧은 장면으로 시선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다. 비교 대상조차 존재하지 않는 독보적 수준의 WNBA가 오랫동안 비인기의 그늘에 있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박지수 취재를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방문했을 당시, 농구 때문에 왔다고 하자 미국 택시 기사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농구도 하냐"며 놀랐다. 만달레이 베이 이벤트 센터에서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굿즈를 사는 걸 보고, 현지 주민이 "이건 어느 팀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만달레이 베이 이벤트 센터는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홈 코트인 미켈롭 울트라 아레나가 위치한 곳이다. 그만큼 미국에서도 향유하는 이들에게만 메이저였던 것이 여자 농구다. WNBA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한 데에는 구조적인 변화와 정책적인 지원 외에 만화처럼 3점슛을 꽂아대는 케이틀린 클락(인디애나 피버)의 등장이 엄청난 기여를 했다. 그 정도의 압도적인 볼거리를 한 번에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 손흥민, 김연아, 김연경 같은 월드 클래스의 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주는 게 아니면, 급진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WKBL의 첫 시즌 아시아쿼터는 무게 중심이 크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전체적인 기대효과를 마련할 수 있는 장치는 됐다.
제도의 발전 방향
아시아 쿼터 제도는 올해도 시행된다. WKBL은 지난 27일, 18명의 선수가 드래프트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1년 전보다 숫자는 물론 참가 선수의 면면도 나아졌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아시아 쿼터 드래프트가 일본 W리그의 선수 등록이 마감된 이후에 열리는 구조다 보니, 일본 선수들이 마음놓고 WKBL에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 애초 W리그에서 도태되거나, WKBL을 우선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리스크가 너무 큰 도전이 된다. 그래서 WKBL은 아시아 쿼터의 범위를 일본 W리그가 아닌 일본 국적 선수로 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이 WKBL 아시아 쿼터 드래프트 시기를 W리그 선수 등록 이전으로 협조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근소하게 WKBL의 평균 연봉이 높은 상황인데, 각 팀의 주력 식스맨 급으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자국 리그보다 WKBL을 우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두고 볼 리는 없다. 일본 입장에서는 현명한 결정이다.
전체적으로 아시아 쿼터 제도는 일본 한정인 범위를 넓혀야 한다. '일본통'인 안덕수 WKBL 사무총장도 아시아 쿼터 제도가 일본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어차피 아시아 농구 협력에 협조적이지 않다.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중국이 비협조적이라면, 타이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까지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이들의 여자 농구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혼혈이나 선수 개인의 역량을 볼 때는 충분히 지켜볼 가치가 있는 선수들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FIBA 아시아컵에 나서는 호주와 뉴질랜드도 아시아쿼터의 범위로 넓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외국인 선수 제도에 준하는 상황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약은 당연히 자유계약으로 가야 한다. 어차피 연봉 상한선을 마련해 놓고 있는 상황이므로, 드래프트보다는 자유계약이 맞다. 금액 대비 최선의 선수 선발을 위해서도 자유계약이 유리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구단의 인력 부족'이 항상 족쇄가 되는 데, 몇 년 째 같은 이유가 반복되는 것은 구단 자체의 발전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또한 아시아 쿼터 대상 국가가 많아지게 되면, 지금처럼 한 곳에서 트라이아웃을 실시하기도 힘들다. 현실적으로 자유계약이 더 용이하다.
사실, 자유계약으로 풀어야 할 부분은 아시아 쿼터 뿐이 아니다. 동포 선수 영입도 자유계약으로 진행해야 한다. 첼시 리 사태의 홍역을 치렀지만, 첼시 리와 당시 검증에 소홀했던 WKBL의 잘못이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KBL은 과거 혼혈 선수 드래프트를 진행한 바 있다. WKBL도 당시의 KBL처럼 여러 혼혈 혹은 동포 선수를 모아 한 번에 리그에 소개할 수 있는 구조와 역량이 된다면 드래프트를 시행해도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구단들이 자발적으로 동포 선수를 발굴하고 영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드래프트 시스템 아래에서는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이런 선수들을 찾아나서기 힘들다. WKBL 역시 현재로서는 자격을 갖춘 선수들이 알아서 지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있는 격이다.
몇몇 지도자들은 "키아나 스마스(삼성생명)만큼의 커리어는 아니지만, WKBL에서 활약할 수 있는 수준의 교포, 동포, 혼혈 선수들이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이 특정 선수와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음을 밝힌 감독도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서지는 않았다. WKBL로 데려와봐야 다른 팀에서 뛰게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드레프트를 거쳐야 함으로 자신의 찾아낸 선수임에도 자신의 팀으로 선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선수 입장에서도 해당 팀이 직접 오퍼를 하는 것과 드래프트에 지원하라고 추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따라서 아시아 쿼터 제도와 마찬가지로 동포 선수 영입도 자유계약으로 바꿔야 한다. WKBL도 한 때, 경쟁적으로 동포 선수를 영입했던 적이 있었다. 마리아 브라운-김한별 시대를 지나 첼시 리가 등장했을 무렵에는 김한빛, 크리스틴 조, 수잔나 올슨 등이 WKBL에 도전했다.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프로라면 이런 시도가 적극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일본 농구의 성장에는 튼실한 저변과 풍부한 자본의 지원도 있었지만, 이미 중고교 단계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혼혈 및 귀화 선수의 영입이 큰 역할을 했다.
다시 아시아 쿼터 제도로 돌아가자면, 선수의 재계약이 안되는 부분도 바꿔야 한다. 외국인 선수 제도 때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재계약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정말 어이가 없는 점이고 심각한 문제다. 재계약을 막아 놓은 이유는 특정 선수 선발로 인해 한 팀이 절대적인 전력을 구축하면 이를 견제할 수가 없고, 평준화가 무너진다는 이유다. 어불성설이다. WKBL 역사 전체를 통틀어 리그가 평준화였던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 실패했을 때의 후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면피성 장치 밖에 되지 않는다. 외국인 선수 선발을 잘 한 팀은 당연히 그에 대한 이득을 누려야 한다. 리그에서 검증되고 잘 한 선수를 제일 못한 팀이 다음 시즌에 데려갈 수 있도록 하는 발상은 공산당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프로 스포츠에 있을 수 없는 구조다.
이는 외국인 선수를 동등한 팀원이 아닌 소모품으로 여기게 만든다. 아무리 잘 해봐야 내년에 우리 팀에서 뛰지 않을 선수가 되고, 선수 역시 내가 최선을 다해봤자 내년에 뛰지 않을 팀이 된다. 팬들 입장에서는 속 쓰린 부분이다. 2024-25시즌 아시아쿼터로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 중 타니무라 리카는 은퇴했고, 나가타 모에는 일본 W리그 도요타 안텔롭스와 계약했다. 이이지마 사키는 다시 WKBL에 도전한다. 만약 재계약이 가능했다면 리카가 은퇴를 선택했을까? 모에 역시 W리그가 아닌 KB에서 한 시즌을 더 뛰었을 수도 있다. BNK 팬들은 팀 첫 우승의 주역이었던 사키가 다른 팀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 마냥 반갑기만 할 수 있을까?
이전의 외국인 선수들은 다른 리그를 병행하는 선수들이었기에, 백 번 양보해서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 쿼터로 WKBL에서 뛰는 선수들은 다른 소속팀이 없다. 온전히 그 팀 하나를 위해 뛰는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런 선수들에게 '어차피 다음 시즌에 이 팀에서 뛸 수 있을지는 복불복이야'라는 조건을 주면서, 그래도 프로답게 마지막까지 몸 부서져라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 정상적인 구조일 수는 없다.
제도의 그림자
개인적으로 아시아 쿼터 제도의 활용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WKBL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리그에 흥행과 인지도 제고이며, 국가대표 및 저변 확대는 엄밀히 협회의 역할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농구협회는 너무나 열악하고 무력하다. 여자 농구 분야는 더 심하다. 이미 농구를 하고 있는 유망주도 뺏기는 실정이다.
WKBL에는 최저 임금 제도를 통해 프로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저변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구단 관계자도 있지만, 이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엘리트 스포츠를 선택하는 시점에 선수 본인이나 가족이 "어떻게든 프로까지 가면 적정 연봉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당사자 본인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정도의 미래 청사진이라면 차라리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할 것이다. 야구는 류현진, 이정후고, 축구는 박지성, 손흥민이다. KBO나 K리그의 최저 연봉 선수를 보며 "난 성공한 선수가 될거야"라고 동기 부여를 하는 이는 없다.
지난 시즌 여자 배구 최고 연봉이 옵션 포함 8억 원이었다. 여자 농구는 4억 5천만원의 김단비(우리은행)였다. 세계적인 슈퍼 스타였던 김연경을 차치하더라도 김단비 이상의 연봉을 수령하는 선수가 여자 배구에는 8명이다. 샐러리캡의 규모는 물론 선수 한 명이 수령할 수 있는 최고 연봉이 농구와 배구 사이에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박지수처럼 한국 여자 농구의 독보적 존재가 되어도 배구 최고 연봉의 50% 수준 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농구와 배구는 유망주 후보군이 겹칠 수밖에 없다. 동등한 상황에서 두 종목에서 제안이 온다면 배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사자가 농구 아니면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종목의 인기와 흥행성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망주군이 겹치는 상황에서의 이런 차이는 당연히 장기적으로도 경쟁력 약화를 지속시킬 수밖에 없다. 여자 배구도 여자 농구 이상으로 선수들의 몸값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비난에 시달린다. 심지어 김연경의 국가대표 은퇴 이후, 여자 배구는 아시아권에서의 메달 경쟁력도 상실했다. 국제 경쟁력을 보면 여자 농구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 배구가 선수들의 몸값을 줄여가지는 않을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이 규모를 유지해야 유망주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협회가 책임지고 있는 유망주 풀에서 농구는 배구에게 머니 게임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에 있으며, 프로 이후를 바라볼 때에도 배구가 훨씬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리그의 위상과 인지도 상승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프로에 들어와 있는 유망주 자원에 대한 관리도 절실하다.
일부에서는 박신자컵의 국제화가 이들의 뛸 자리를 뺏고 있다는 지적도 한다. 그런데, 젊은 선수들이 박신자컵을 뛰면서 얻는 효과는 무엇일까? 관중들 앞에서 농구를 하고, 인터넷으로 중계가 된다. 이게 전부다. 그나마도 3~5경기 정도다. 이것이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 그저, 프로 입단 후 어떻게 농구하는 지를 확인할 수 없었던 코어 팬들의 궁금증 해결 이상의 의미는 없다. 오히려 일본이나 타이완 등,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전체적인 경험을 더 늘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박신자컵이 열리는 시기는 한 여름이다. 팬들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못할 뿐, 그 시기에는 연습 경기를 통해 어린 선수들도 충분히 실전 경험을 하고 있다.
정작 문제는 이들이 시즌 중에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비시즌 내내 훈련하고, 연습 경기에도 참여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면 선수로서의 역할에 제한이 생긴다. 코칭스태프도 시즌이 시작되면 주력 자원들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비시즌과 달리 시즌 중에는 이들에게 기회가 없다. 도태되는 선수들은 더욱 뒤쳐질 수밖에 없다.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2군 리그고, 퓨처스리그다.
하지만 WKBL의 퓨처스 리그는 매년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2013-14시즌 팀당 15경기였던 것이, 이듬해 팀당 10경기로 줄었고, 2022-23시즌에는 5경기가 됐다. 그나마도 2023-24시즌 이후로는 컵대회 형태로 열린다. 사실상 요식행위가 됐다. 저변이 넓지도 않은 종목에서 2군 리그도 파행으로 운영되면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구단의 입장은 퓨처스리그를 뛸 선수도 부족하고, 담당할 지도자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퓨처스리그가 진행되면 1군 경기를 뛰어야 할 선수가 투입되어야 하고, 오히려 정상적인 리그 운영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두 리그를 모두 소화하는 선수들의 몸 관리 문제와 부상 위험도 문제가 된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구단 엔트리의 확대다.
WKBL은 팀당 15명 안팎의 선수들로 시즌을 치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시아 쿼터 2명이 추가되자 기존의 국내 엔트리 2명을 줄여버린 구단도 있었다. 아시아쿼터 포함 팀당 20명을 기준으로 해, '1군 12명 - 2군 8명' 형태의 운영을 하면 퓨처스리그를 정상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팀 마다 2군을 담당할 수 있는 전담 코치를 한 명씩 두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퓨처스리그도 팀당 15경기 이상의 운영이 가능하다. 젊은 선수들이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꾸준한 경기 경험을 쌓는 것은 물론, 슬럼프에 빠지거나 부상 후 복귀를 타진하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지금도 프로라고 하기 힘든 수준의 선수들이 즐비한데, 선수를 더 늘리는 것이 타당한가? 뽑을 선수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WKBL 각 구단들은 매년 의무적으로 최소 2명 이상의 신인을 선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선수들 중 2명 정도는 항상 팀을 떠난다. 종종 구단에서는 "내보내기 아쉬운데, 신인 2명을 뽑아야만 하기에 내보낸다"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기존 선수 방출 없이 두 시즌 정도만 치르면 20명 선의 수급과 유지는 가능하다. 팀 당 20명 정도의 선수 보유가 그렇게 갖추기 힘든 요소는 아닌 것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현재보다 2-3명 정도 인원이 늘어나고 지도자까지 뽑게 되면, 각 구단의 운영비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선수들의 연봉을 최저로 잡더라도, 숙소 생활이 기반인 WKBL의 조건을 따지면 구단 마다 최소 3억원 이상의 지출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굴지의 금융 그룹들에게 '이 정도 금액은 전혀 부담이 아니'라는 계산이 가능하지만, 돈이 많다고 마음대로 지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그룹일수록 지출에 대한 명분과 가치, 효과를 명확하게 따질 것이며, 이 부분에서 합당한 이유가 제공되지 않으면 오히려 '적자인 스포츠단을 왜 운영해야 하는가'라는 반론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결국 명분을 만들고 도출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참 어렵다. 그래서 '당연히 필요한 걸 왜 못하고 있냐'고 WKBL과 구단들을 다그칠 수도 없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방향임은 분명하다.
이와 함께 연고지역 학교 우선 지명도 저변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야구와 축구는 물론, KBL도 이제는 연고 우선 지명을 인정하고 있다. WKBL은 당초 연고 우선 지명 제도가 생기면 아마 농구에도 선수 이동과 관련해 프로 구단이 개입하는 파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계를 했다. 하지만 리그 성장과 저변 확대에 연고 제도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다른 종목의 예에서도 이미 확인이 된 부분이다.
인원이 많지도 않은 상황에서 학원 스포츠팀은 체전을 비롯한 대회 성적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급 유망주에게 경미한 부상이 있어도 큰 대회가 있으면 일단 뛰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어도 당장 이기는 농구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연고 지명으로 프로 구단이 뒷받침하게 되면 이를 상쇄할 수 있다. 지도자도 경기력 외의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안정적으로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다.
K리그가 한국형 클럽시스템을 도입하여 지역의 특정 학교를 산하 유스팀으로 두는 제도가 시행된 초기에는 기존 축구 명문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엄청났다. 이들이 참가하는 대회를 보이콧했고, 이를 통해 축구 저변과 일반 지도자들의 자리가 사라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제도의 정착 후, 축구 저변은 이전보다 안정적이 됐고, 일반 지도자들의 기회도 늘어났다. 변화가 두려웠고, 기존의 기득권을 잃기 싫었던 것 뿐이다.
KB는 이미 청주시를 여자농구특별시로 만들었고, BNK는 프로 스포츠 우승에 목말랐던 부산시에게 KCC에 이어 남녀 농구가 모두 정상에 오르는 꿈을 실현시켜줬다. 지역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연고지 팀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다면, 전체적인 저변확대의 움직임을 중앙이 아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풀 수도 있다. 탑 다운 방식이 결과를 만드는 데는 유리하겠지만, 농구계는 그 상황을 만드는 데 이미 오랫동안 실패하고 있다. 바텀 업이 실효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전체적인 톱니바퀴를 돌리는 데에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 WKBL, KBL
'fAntasize | 글 > iNside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WKBL] 2025-26 선수 구성 (2) 신한은행 (1) | 2025.06.10 |
---|---|
[WKBL] 2025-26 선수 구성 (1) 하나은행 (4) | 2025.06.09 |
[WNBA] 케이틀린 클락의 그늘 - 앤젤 리스를 위한 변명 (12) | 2025.05.30 |
[WKBL] 역대급 저득점은 판정의 영향? (3) | 2025.05.28 |
[WKBL] 세상에서 가장 늦은 2024-25시즌 리뷰 (4) | 2025.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