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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fOcus

[Tennis] 스테판 에드베리 - 네트 위를 점령했던 코트위의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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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에드베리(Stefan Bengt Edberg)라는 이름을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모를 것이고, 테니스 선수라고 하면 "테니스도 보냐"고 할거다. 그리고 "테니스 하면 역시 이형택이지"라고 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 외에도 테니스라는 종목을 대신할 수 있는 빅네임은 많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물론 마리아 샤라포바(Maria Sharapova)도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테니스 자체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 존재다. 스테판 에드베리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아주 옛날은 아니다. 내가 어릴 적 테니스를 보던 시절, 그러니까 안드레 애거시(Andre Agassi), 마이클 창(Michael Chang), 짐 쿠리어(Jim Courier),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 고란 이바니세비치(Goran Ivanisevic)가 활약하던 시대의 선수다.

스웨덴 베스테르비크에서 출생한 에드베리는 스웨덴이 자랑하는 훌륭한 테니스 선수였으며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세계 테니스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탑랭커였다. 에드베리의 전매특허 기술은 발리(Volley)였다. 아디다스의 공식 후원을 받던 에드베리는 188cm의 큰 키를 이용한 네트 플레이의 1인자였으며, 랠리 중 갑자기 네트 앞으로 달려나와 일거에 포인트를 올리곤 했다. 1990년 8월 13일 ATP 세계 랭킹 1위에 처음 올랐으며, 총 72주간 1위로서 세계 테니스계를 호령했다. 4대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프랑스 오픈만 우승을 하지 못해 클레이코트에서 비교적 약한 모습이 있다는 평가와 더불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실패했지만, 그랜드슬램에서 단식과 복식 모두 정상에 올랐던 선수다.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단식은 우승 6회, 준우승 5회이며, 복식은 우승 3회, 준우승 2회이다. 같은 스웨덴 출신 선수인 안데르스 제리드(Anders Per Järryd)와 함께 남자 복식에서도 세계 1위에 올랐는데, 단식과 복식 모두 1위를 차지했던 선수는 에드베리와 존 매켄로(John Patrick McEnroe) 밖에 없다.

 



17세때 참여한 Grans Slam Junior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어려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에드베리는 1983년 4대 메이저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런, US 오픈) 남자 단식 주니어를 모두 우승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세계 테니스 역사에서 주니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은 에드베리가 유일하다. 한 해에 메이저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은 남자 단식에서는 시니어에서는 1938년 돈 버지, 1962년과 1969년의 로드 레이버 이후 아무도 달성하지 못했기에, 시니어와 주니어를 통틀어 남자 단식의 마지막 그랜드 슬래머는 아직까지도 에드베리다. 

시니어 이후 마스터스에서도 8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1989년에는 ATP 월드 투어 파이널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프란스시코 마시엘(Francisco Maciel)을 이기고 단식 금메달을 획득했고, 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단식과 복식 모두 동메달을 획득했다. 스폰서십을 제외하고 대회 상금으로만 획득한 금액이 당시 2000만 달러 이상이다. 1983년 프로무대에 등장해서 은퇴할 때까지 네트 플레이의 최강자로 명성을 떨쳤으며, 숱한 명승부를 남겼다.

 



어린시절 처음 본 에드베리의 경기는 당시 막 방송을 시작했던 SBS가 토요일에 보여주던 테니스 프로그램에서 중계된 1992년 US 오픈 결승이었다. 지금은 세계 테니스계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주인공 중 하나지만, 당시만 해도 떠오르는 신인이었던 피트 샘프라스를 상대로 에드베리는 3-1로 승리를 거두고 US오픈 2연패를 달성했다. 그때 에드베리의 기억은 참으로 신선했다. 초등학교 때 테니스를 쳐본적이 있긴 했지만 반복되는 랠리가 지겨웠던 나에게 에드베리의 플레이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랠리 중 어느 순간 달려 나가, 발리를 주무기로 뛰어난 네트플레이를 보여줬는데,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은 대단한 충격이었고 놀라웠다. 

에드베리의 네트 플레이는 파워가 넘쳤고, 실수가 없었으며, 정확했다. 에드베리가 네트로 달려나오면 세계적인 탑랭커들도 그의 플레이를 피하기 위한 스트로크나 로브를 시도하다가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았다. 난 키가 작았음에도 그런 그의 플레이에 반해 아이들과 가끔 테니스를 칠 때 무조건 네트앞으로 달려나가곤 했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SBS는 작은 체구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고군분투하던 마이클창에 초점을 맞춰서 에드베리의 경기를 보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SBS가 한창 테니스 중계에 열을 올렸던 90년대 초반이 에드베리의 전성기였기에 결승에 오른 그의 경기를 자주 시청할 수 있었다.

 

 



에드베리는 1996년 호주 오픈에서 체코 출신의 페트르 코르다(Petr Korda)와 복식에 나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 해에 은퇴했다. 2004년에는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는 세계 랭킹 5위권을 9년간 유지할만큼 기복없는 플레이를 보였고 그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54회의 그랜드슬램대회에 연속 출전한 기록도 갖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악동들이 많았던 테니스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포츠맨십을 발휘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5년 동안 스포츠맨십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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