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젊은 지도자'에 대한 필요성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자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객관적인 조건과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에, 당연히 어느 정도 나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험은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힘든 지혜를 제공하기 마련이며, 유교 사상이 기본에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지도자의 연륜은 특히나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40대 기수론이 등장한 것이 무려 50년도 더 이전임을 고려하면, 젊은 지도자에 대한 갈망은 사회 전반에서 일찍부터 존재했던 것 같다.
스포츠에서는 특히 지도자들의 구태와 낡은 지도 방식에 대한 자조와 비판이 등장하며, 젊고 참신한 지도자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젊은 감독'이 화두였다. 변화는 쉽지 않았지만 더디게라도 진행됐고, 각 종목에서 40대 감독들이 등장했다. 프로야구에서 두산베어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태형 감독(롯데)이 팀을 처음 맡았던 때는 48세였다. 지난 해 기아를 정상으로 이끈 이범호 감독은 1981년생으로 이제 43세.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던 삼성의 박진만 감독은 1976년생이다. 이승엽 두산 감독도 1976년생으로 현재 48세. 현재 51세인 키움의 홍원기 감독도 지휘봉을 잡았을 때의 나이는 47세였다. NC 이호준 감독까지, 현재 프로야구에는 4명의 감독이 40대다.
K리그에서 지도자의 능력으로 팬들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감독은 김기동 감독(FC 서울)과 이정효 감독(광주 FC)이다. 김기동 감독은 47세에 포항 스틸러스의 지휘봉을 잡은 후 기대 이상의 성적과 FA컵 우승으로 능력을 증명했고, 광주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이정효 감독은 45세였던 2021년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수원 FC의 김은중 감독은 46세, 강원 FC의 정경호 감독은 45세니까 확실히 예전 보다는 젊은 감독들이 많아졌다.
KBL에서는 문경은 전 SK감독이 40살에 지휘봉을 잡았고, 뒤이어 SK를 이끌고 있는 전희철 감독도 47세에 팀을 맡았다. KCC 이상민 코치도 42세에 삼성 썬더스 감독에 취임한 바 있다. WKBL의 역사를 쓰고 있는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도 41살에 감독이 되어 지금의 역사를 만들었고, 이후 이환우(하나은행), 신기성(신한은행), 안덕수(KB), 박정은(BNK), 김완수(KB) 등 40대 중반 이전에 팀을 맡는 감독들이 등장했다. 특히 구나단 신한은행 전 감독은 39살이던 2021년에 감독을 맡기도 했다.
30대 감독도 이제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EPL은 20개 구단 중 절반 이상의 구단이 50세 미만의 감독을 선택했고, 60대 이상의 노장 지도자 없이 시즌을 시작했다. 이중 EPL 최연소 감독이 된 파비안 휘르첼러(브라이튼)는 1993년생이고, 키어런 맥케나(입스위치), 루벤 아모림(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30대 감독이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인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감독도 뱅상 콤파니와 누리 샤힌으로 30대이며, 스페인 라리가도 이니고 페레스(라요 바예카노), 클라우디오 히랄레스(셀타 비고), 보르하 시메네스(CD 레가네스) 등 30대 감독들이 즐비하다. 감독의 나이가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젊은 감독의 등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KBL의 고양 소노는 지난 10일, 김태술 감독을 해임했다. 시즌 도중에 팀을 맡았던 40세의 김 감독은 채 한 시즌도 팀을 이끌어 보지 못했다. 선수들의 줄부상과 성적 부진, 그리고 팬들의 퇴진 시위 등이 있기도 했지만, 특별한 지도자 경험이 없었던 그를 감독으로 파격 발탁했던 소노 구단의 책임 역시 작지는 않을 것이다.
위성우 감독처럼, 젊은 나이에 팀을 맡아 꾸준히 승승장구를 한다면 나쁠 게 없다. 다만, 파격적인 부임이 지도자의 역량을 만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선수도 현재의 능력과 발전 가능성을 함께 보유하고 있듯, 지도자 역시 현재의 능력과 더불어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너무 일찍 감독에 부임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지도자로서의 발전 기회도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잊혀질 수 있다.
현재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이 처음 국가대표를 맡은 것은 2013년이었다. 당시 44세였던 홍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1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 감독으로 선임됐다. 본인이 여러차례 고사했지만, 월드컵은 코 앞으로 다가왔고, 감독을 선임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한축구협회는 홍 감독을 끝내 임명했다. 감독은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다. 본선을 앞두고 선수 소집을 채 두 주도 하지 못했던 홍명보 감독은 선수 구성과 자신이 원하는 전술의 조합을 맞춰 볼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U-23 대표팀에서 자신이 이끌었던 선수들과 익숙했던 선수들 위주로 선수단을 조합했다. '인맥 축구' 논란이 일었고,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당연히 책임을 져야했다. 선수 은퇴 후 지도자보다는 행정가를 꿈꿨던 그는 2005년에도 본인이 끝까지 고사했지만 대한축구협회와 당시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의 요청에 의해 코치가 됐다. 그렇게 지도자를 시작했고, 연령별 대표를 맡은 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며 지도자로서도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부터 행보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지도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고, 나 역시 목표로 하고 있지만, 지금은 너무 이르다. 나에게는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의 경질 이후 팀을 맡은 최강희 감독은 "아시아 지역 예선까지만 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약속을 끝끝내 지켜냈다. 결국 협회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홍명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너무 일찍 소비했다고 봐야한다.
파격적인 선임에 비해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만 주어졌던 김태술 감독을 보면서도, 너무 일찍 소비됐다는 생각이 든다. 시즌 운영의 잘잘못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문경은 감독이 비교적 짧은 코치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전희철 감독, 위성우 감독 등 성공한 40대 지도자들은 충분한 코치 경험을 거친 후 팀을 맡았다. 결국 감독을 수락한 것이 본인이기에, 성적은 물론 거취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본인 몫이겠지만, 일찍 소비됐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게다가 프로팀의 감독을 맡았다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감독에게 지도자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다.
많은 종목에서 젊은 감독들이 중용되는 것은 경험과 연륜의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젊은 지도자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채워줄 수 있는 시스템이 더 체계화 됐기 때문이다.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진이 더 세분화됐고, 상황을 분석하는 데이터들은 더 다양해졌다. 기술과 체력 파트가 나눠졌고, 메디컬 파트에서는 선수들의 멘탈도 관리하는 시대다. 그리고 시스템 적으로 경험 많은 지도자들이 젊은 감독을 보좌하고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더 있다. 한국 프로스포츠의 케파가 해외 다른 리그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에 같은 값으로 저울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선후배의 수직적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 감독이 선배 지도자를 코치로 둔다는 것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젊은 지도자가 꾸준히 등장하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발전적인 순효과가 이어지겠지만, 선수 못지않게 지도자의 뎁스도 충분치 않으며 외국 지도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담을 느끼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젊은 지도자의 선택이 단순히 빠른 소비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항상 고민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감독을 선임하는 팀은 즉각적인 성과보다는 긴 호흡으로 충분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상당한 돌발변수를 감독과 함께 부담하겠다는 충분한 각오를 먼저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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