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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iNside sports

[WNBA] 작정하고 준비한 개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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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어느 곳에서나 시작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스포츠 역시 개막이 주는 의미는 크다. 한 시즌을 치르기 위한 경기 일정이 발표되면, 여러가지 상황들을 놓고 유불리를 따지는 경우가 등장하지만, 어쨌든 가장 먼저 주목하는 것은 개막전이다. 일단 첫 경기를 잘 치러야 그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비시즌을 열심히 준비한 팀들에게 초반부터 삐끗하는 그림이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개막전 대진도 상당한 관심을 끈다. 공정해야하고, 공평해야 한다. 그런데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가 확실하게 결합된 미국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어쨌든 한 시즌에 붙는 경기는 정해져 있으니, 개막전부터 분명한 볼거리를 제공하자는 스탠스인 것 같다. 교활할만큼 똑똑하다. 

 

 

ⓒ WKBL

 

WKBL의 공식 개막전

대한민국 스포츠에서의 개막전, 특히 공식 개막전은 디펜딩 챔피언에 대한 예우가 강하다. 지난 시즌의 최강자가 갖는 프리미엄이라 볼 수 있다. 다만 WKBL은 조금 다르다. 6개 구단이 돌아가며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는 WKBL의 개막전은 디펜딩 챔피언이 아니라, 이번 시즌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는 팀이 주인공이다. WKBL은 시즌 경기 일정을 프로그램을 통해 랜덤으로 정하는데, 유일하게 사전에 확정되는 매치업이 타이틀 스폰서 팀의 개막전이다. 타이틀 스폰서는 리그 첫 경기를 치르며, 상대를 고를 수 있다. 곧, 시즌 경기 번호 1번에 대한 매치업만 리그 일정을 정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인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홈 개막전의 의미가 WKBL 구단들에게 매우 크기 때문이다.

 

6개 구단 모두, 팀의 홈 개막전에는 모기업 총수가 참석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업집단인 금융권 모기업들로 구성되어 있는 WKBL에서, 이들의 공식 개막전은 은행장 혹은, 금융그룹 회장이 직접 경기장을 방문할 뿐 아니라, 이들을 보좌하는 최고위급 임원진이 대거 참석하는 매우 큰 행사다. '시즌 첫 경기' 이상의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경기장을 찾는 일은 1년에 개막전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WKBL 구단 관계자들 중에는 홈 개막전을 이기면 "시즌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농담을 하는 이들도 있다. 말 그대로 '시작이 반'이다. 과거에는 각 팀의 개막전 이벤트 역시 매우 화려했고, 서로간의 비교 대상이기도 했다. 각 팀의 홈 개막전이 이정도니, 모기업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게 되는 시즌의 공식 개막전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욱 신경이 쓰이는 이벤트이며, 그런 자리에서 지게 되면, "잔치 벌려놓고, 남 좋은 일만 했다"는 핀잔이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WKBL에서 공식 개막전에 타이틀 스폰서 팀의 상대로 나서는 팀은 전년도 최하위, 혹은 최하 전력인 팀이 단골이었다. 

 

그런데 WKBL도 조금씩의 변화가 생긴다. 2016-17시즌의 타이틀 스폰서였던 삼성생명은 개막전 상대로 통합 4연패를 달성하고 있던 우리은행을 선택했다. 당시 삼성생명을 이 끌던 임근배 감독은 "먼저 맞으나 뒤에 맞으나 어차피 똑같은데, 기왕 붙을 거 잘하는 팀이랑 먼저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결과는 패배. 그런데 이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듬해 타이틀 스폰서였던 신한은행도 삼성생명과 같은 선택을 했다. 통합 5연패 중이던 우리은행을 개막전 상대로 선택했고, 심지어 이기기까지 했다. 그 다음 시즌의 타이틀 스폰서는 우리은행. 여전히 1위였던 우리은행은 최하위도, 2위팀도 아닌 3위팀 신한은행을 상대로 선택했다. 이전 시즌 개막전 상대로 자신들을 선택한 신한은행에 대한 복수였고, 25점차의 대승으로 결과를 얻어냈다. 점진적으로 공식 개막전 상대팀 선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2019-20시즌의 하나은행이 개막전 상대로 BNK를 고르며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다음 시즌 타이틀 스폰서였던 KB는 디펜딩 챔피언 우리은행을 개막전 상대로 선택하며 진검승부를 펼쳤다. 개막전 상대 선택에 변화가 생기며,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던 우리은행이 공식 개막전의 원정팀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내부적으로 "그만큼 우리가 예전에 비해 전력이 약해졌고, 상대에게 '해 볼만 한 팀'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선수들의 전투력을 고취시켰다.

 

2021-22시즌, 다시 타이틀 스폰서가 된 삼성생명은 임근배 감독의 기조 그대로, 또 강팀을 상대로 결정했다. 2020-21시즌에 기적적인 언더독의 반란에 성공했던 삼성생명은 파이널 파트너였던 KB를 선택했지만, 22점 16리바운드를 기록한 박지수의 벽을 넘지 못하며 패했다. 이듬해 타이틀 스폰서였던 신한은행은 이번에도 삼성생명과 같은 선택을 하며 KB를 골랐다. 그런데 박지수가 시즌을 뛸 수 없는 상황이 되며 KB의 전력이 급감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신한은행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삼성생명이 이루지 못한 공식 개막전 승리를 챙겼다. 2023-24시즌, 타이틀 스폰서였던 우리은행은 전년도 챔프전 파트너였던 BNK를 상대로 결정하고 연장 승부 끝에 이겼다. 공식 개막전이 두 시즌 연속 연장 승부로 펼쳐졌다. 반면 지난 시즌 타이틀 스폰서였던 하나은행은 이번에도 실리적인 선택을 했다. 박지수의 부재로 객관적 전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KB를 골랐다. 하지만, 허예은과 강이슬에게 외곽을 내주면서 무너지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아무튼 WKBL의 공식 개막전은 타이틀 스폰서를 맡은 팀이 하게 되고, 이 팀이 개막전 상대를 고를 수 있다. 다음 시즌에는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한 '디펜딩 챔피언' BNK가 창단 후 처음으로 스폰서를 맡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번 공식 개막전의 매치업은 BNK의 선택에 달려있다.

 

 

페이지 베커스(댈러스 윙스)의 돌파

 

 

WNBA의 개막 주말

WNBA는 지난 주말 개막했다. 그런데 개막전 매치업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작위적으로 작정하고 이렇게 잡았구나 싶은 매치업이다.

 

이번 시즌 1순위 신인인 페이지 배커스(댈러스 윙스)의 상대는 GM들이 뽑은 이번 시즌 '우승 후보 0순위' 미네소타 링스였다. 베커스는 개막전에서 10점 7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MVP까지 넘보는 나피사 콜리어가 코트니 윌리엄스와 함께 위력을 발휘한 미네소타를 넘지 못했다. 미네소타는 벌써 개막 2연승을 달렸다. 지난 시즌, 상대적 열세라고 생각했던 뉴욕과의 파이널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며 5차전까지 승부를 이어갔었는데, 마야 무어-실비아 파울스 시대 이후, 다시 한 번 영광 재현의 시즌이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신생팀 골든스테이트의 홈 개막전 상대는 그래도 WNBA에서 꾸준한 인기와 저변을 자랑하는 팀이자, 캘리포니아에서 샌프란시스코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LA의 주인' LA 스팍스였다. 여기서 이기기까지 했으면 참 좋았겠지만, 이적 후 새 팀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켈시 플럼의 미친 활약을 막지 못했다. 플럼이 37점 6어시스트 5스틸을 기록한 LA스팍스에게 대패를 당했다. 카일라 쏜튼, 모니크 빌링스(이상 골든스테이트), 데리카 햄비, 오디세이 심스(이상 LA) 등 WKBL 경력자들이 대거 출전한 경기였지만, LA의 얼굴 마담처럼 자리잡은 2년차 카메론 블링크는 십자인대 파열로 결장 중이다. 시즌 중후반이 되서야 복귀 여부를 타진할 수 있을 것 같다.

 

 

골든스테이트의 창단 경기를 접수한 켈시 플럼(LA 스팍스)

 

 

 

최근, 동-서부의 맹주로 자리매김했던 뉴욕 리버티와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도 개막전에서 만났다. 경기는 나름 팽팽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힘의 차이가 나타났고, 4쿼터에 라스베이거스가 완전히 무너졌다. 라스베이거스는 이번 시즌,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하나인 켈시 플럼을 내보냈지만, 포지션 경쟁력에서 그보다 더 위라고 평가받는 주얼 로이드를 영입했다. 하지만 로이드는 5점에 그쳤고, 여전한 MVP 후보인 에이자 윌슨이 31점 16리바운드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리그 2연패를 하던 시절의 위력은 분명 아닌 듯 했고, 브리애나 스튜어트와 존쿠엘 존스가 버틴 뉴욕이 한 수 위였다. 사브리나 이오네스쿠가 부진했지만, 접전의 상황을 나타샤 클라우드가 박살내면서 승부가 기울어졌다. 

 

가장 관심을 받는 팀 중 하나인 인디애나 피버는 안방에서 화려한 출발을 했다. 케이틀린 클락의 팀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1년 선배인 알리아 보스턴이라는 정통 빅맨도 WNBA 신인상을 수상한 선수다. 인디애나의 터줏대감(?)같은 켈시 미첼이 버티고 있고, 드와나 보너라는 베테랑도 합류했다. WKBL 팬들에게도 익숙한 나타샤 하워드, 다미리스 단타스도 뛰고 있는 인디애나는 이번 시즌 확실히 스텝 업 할 수 있는 팀이다. 상대는 하필 시카고 스카이... 케이틀린 클락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앤젤 리스는 물론, 리스와 함께 대학시절 호흡을 맞췄고 고교 시절에는 클락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헤일리 반 리스가 올해 입단한 팀이다. 하지만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클락은 분명, 지난 시즌보다 안정감을 높였다. 트리플 더블(20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을 기록했는데, 특유의 먼 거리 3점슛이 지난해에 비해 효율성이 높다는 느낌을 준 경기였다. 리스도 12점 17리바운드로 분전했지만, 팀 공격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팀이 35점 차의 대패를 당했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타미카 캐칭 외에는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인디애나의 정상 견인을 클락이 해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분명 큰 재미다. 그 외에 워싱턴 미스틱스가 애틀랜타 드림을 잡았고, 엘리사 토마스를 영입한 피닉스 머큐리가 시애틀 스톰을 대파했다.

 

 

개막전에서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케이틀린 클락(인디애나 피버)

 

 

 

전체적인 개막 매치업 자체가 시작부터 "이런 데도 안 볼거야?" 라는 식의 메시지를 던지는 느낌이다. 아직까지는 대중적으로 크게 정착했다고 말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16개 구단 체제로의 복귀에 첫 발을 디딘 시즌이기에 기대할 부분이 많고, 그 시작도 상당한 볼거리를 줬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도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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