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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iNside sports

베이루트 참사 조광래 호 "모두 네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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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지역에 잘 나가는 입시학원이 있다. 이 학원에 새로 강사가 부임한 이후 학생들의 성적이 지지부진하다. 심지어 성적이 떨어지기도 했다. 학부형들과 원장이 이에 대해 강사에게 질의하자 강사는 앞으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학생들이 내가 지도하는 수업 내용을 따라오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과연 이 강사를 학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강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강사 역시 자신의 수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학생들이 있는 학원으로 가면 된다. 그러나 그가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수준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원과 학부형들의 눈에 그 스스로가 눈에 차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이 "수업 내용을 못따라오는 학생 수준"에 있다면 그것은 결국 지도하는 강사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축구 대표팀 이야기로 넘어가자. 우리 대표팀이 지난 15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예선에서 레바논에게 1-2로 패하고 말았다. FIFA랭킹 147위인 레바논에게 당한 사상 첫 패배이다. 이 레바논은 불과 70일전 우리에게 6-0으로 완패를 당했던 팀이었다. 당시 득의양양했던 조광래 감독의 모습을 안타깝게도 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패배의 원인에 대해 조광래 감독은 "낙후된 잔디 및 경기장 시설", "중동팀과의 경기에 배정된 중동 심판", "주전과 비주전의 차이가 커서 자신의 전술이 제대로 구사되지 않은 점" 을 들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다. 누가 등떠밀어서 억지로 끌고 간 선수들이 아니다. 조광래 감독 스스로가 선발한 선수들이다. 그런데 그런 선수들을 두고 주전, 비주전을 가려 말하며 전술적 이해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신이 뽑은 선수들이 자신의 전술에 특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내는 것은 철저히 감독의 몫이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은 마치 답안지를 보고도 문제를 풀지 못하는 학생을 탓하듯 비주전 선수들의 역량 부족을 말하고 있다.

경기장 시설과 주심 문제는 쉽게 말해 홈팀 편파 논란으로 묶을 수 있다. 선수들에 대한 홈 관중의 레이저 공격도 이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굳이 A매치가 아니라 하더라도 축구에서 어느 정도의 홈 어드벤티지가 작용되는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7~80년대 아시아 축구에서 어느정도 한 몫을 했던 태국은 "방콕 브라질"로 불렸였고,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와 경기에서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소방차를 동원해 잔디에 물을 뿌려 수중전을 만들었었다. 우리나라 역시 외신으로 부터 "서울 브라질" 혹은 "안방 호랑이"로 불린 바 있었으며, 2002 월드컵 당시에는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잔디를 더 짧게 깎고, 물을 더 많이 뿌려 습도를 높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를 탓하는 이들은 언제나 경기에서 패한 팀들 뿐이었다.

비록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 역시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중동팀과의 원정때 비슷한 악조건에서 싸워야 했다. 심지어 수원 삼성은 1차전에서의 폭력 사태와 연관되어 분위기 마저 흉흉했고, 주심 역시 중동 심판이었다. 하지만 전북과 수원은 중동 원정에서 모두 승리했다. K-리그 클럽과 중동 클럽의 수준 차이가 대한민국과 레바논, 양국 국가대표 레벨의 간극만큼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들 역시 홈 어드벤티지에 의한 불이익이 있었지만 모두 극복해낸 것이다.

그런데 레바논에게 패한 후에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의 패인으로 이러한 것들을 언급한다. 그렇다면 중동 원정을 떠나기 전에는 이러한 것들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일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백번 양보해 선수들의 전술 숙지 부족과 낙후된 그라운드 상태, 그리고 중동 심판의 배정들의 문제를 감안한다해도 우리 대표팀에게 레바논이 극복하기 힘든 벽이었단 말인가?

이번에 조광래 감독이 언급한 전술 이해도가 떨어진 주전-비주전의 차이와 낙후된 잔디와 그라운드 시설, 그리고 심판진 배정에 대한 문제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감독의 준비 부족' 이다. 원정길에 올라 중요한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도 선수들에게 자신의 전술을 제대로 주입시키지도 못했고, 한 두번 가는 중동 원정이 아닌데도 시설과 심판 배정등의 불이익을 전혀 감안하지 못했다. 이것은 선수들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의 문제다. 차라리 '한 달간의 라마단 기간을 마친 직후라 준비가 안됐다'던 6-0 패배 당시 레바논 감독의 이유가 훨씬 더 타당하게 들린다.

이 자리에서 경기의 책임과 관련해 감독의 거취를 문제로 삼을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러한 결과에 대해 팀을 이끌었던 수장의 분석과 발표,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이 너무나 어이없다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중동 원정을 떠나며 조광래 감독은 최종예선행을 결정 짓겠다고 했고, 지난 8월 일본에게 0-3으로 패배한 후에는 수비수의 조기 부상이라는 명목 뒤에 숨어서 다시는 이런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표팀은 중동 원정에서 최종예선행 직행은 커녕 최종전에서 무승부 이상을 기록해야 하는 부담만 가중되었고, 일본전 참패 이후 벌어진 경기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것은 라마단 기간으로 한달 간 금식을 한 레바논을 안방에서 6-0으로 이긴 경기 뿐이었다. 물론 조광래 감독이 말한 "이런 경기"가 일본전에서 보여진 졸전을 말하는게 아니라 0-3의 스코어를 말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조광래 감독은 안양 LG 감독 시절이던 지난 1998, 1999년에도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팀 성적에 대해 "선수들이 내 전술을 이해 못한다"고 성토했던 바 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변명은 변함이 없다. 조광래 감독을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올려놓은 가장 큰 배경은 경남 FC를 이끌고 거뒀던 K-리그에서의 활약과 지도력이었다. 경남 FC가 국가대표팀보다 주전-비주전간의 차이가 적고 선수들의 면면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꾸준히 오랫동안 조련을 할 수 있는 클럽팀과 소집과 해산을 반복하는 대표팀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고 최고의 능력과 결과를 내는 것이 전세계 국가대표팀 감독들의 유일한 사명이다.

조광래 감독은 실패한 장수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이 비겁한 장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 : 뉴시스

문화저널21 / 2011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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