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팬에게 이동국은 애증의 이름이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숙적 일본과의 라이벌전으로 축구 열기가 부쩍 달아올랐던 1998년. 우리 대표팀은 프랑스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네덜란드 전에서는 0-5의 참패를 당하며 차범근 감독을 대회 중 경질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후반 막판 서정원과 교체투입되어 겁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강력한 슈팅을 기록한 18세의 어린 신예 이동국은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월드컵 참패에도 불구하고 1998년은 대한민국 축구의 르네상스라는 말을 들을 만큼 축구 열기가 엄청났다. 특히 K-리그로 향한 팬들의 관심도 지대했다. 이동국, 고종수, 안정환, 정광민, 김은중 등의 젊고 잘생긴 스타플레이어들의 등장은 이전까지 축구장을 외면했던 여학생 팬들까지 열광시켰다. 하지만 이 열풍의 대표주자였던 이동국은 이후 2002년 대표탈락과 유럽 무대 진출 실패등이 겹치며 "게으른 선수"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쓴 채,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선수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2006년 리그에서 골폭풍을 몰아쳤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까지 당하며 이번엔 불운한 선수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까지 붙었다. 2010년 명예회복의 기회를 잡았던 월드컵 16강 우르과이전에서는 회심의 슛이 실패하며 또다시 팬들의 원성을 받았다. 1998년 놀라운 축구 신동의 탄생으로 기대를 모았던 축구 팬들에게 이동국은 애증의 선수일 수 밖에 없다.
반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역시 이동국에게는 애증의 이름이다.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어린 신인 이동국을 눈여겨 본 차범근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은 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득점왕이었던 김현석을 제외하고 이동국을 대표팀에 선발했다. 이동국은 많은 활약은 펼치지 못했지만 인상적인 한 방으로 팬들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리그에 돌아와서도 맹활약을 펼치던 이동국은 20세 이하 아시아청소년 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일본을 상대로 놀라운 터닝슛을 터뜨리며 우승의 수훈갑이 되었다. 대표팀은 이동국에게 명예와 인기를 한번에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해 겨울 펼쳐진 아시안게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동국은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무득점으로 대회를 마쳤다. 아시안컵에서는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에서 출전불가라는 팀닥터의 의견에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출장해 팀을 3위에 이끌고 득점왕에 올랐지만, 그 부상 여파로 첫 유럽 진출이었던 독일 브레멘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완전치 못했던 몸상태때문에 이동국은 독일행에 주저했으나,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유망주의 유럽무대 경험이 필요하다던 축구협회의 강권에 이동국은 독일로 떠났다. 하지만 부상 재활이 시급했던 이동국에게 분데스리가 무대는 요원했고, 당시 대표팀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실전 경험 없는 선수를 뽑을 수 없다며 월드컵 전초전인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 이동국을 부르지 않았다.
결국 대표팀에서 입은 부상이 발목을 잡은 이동국은 이후 내내 대표팀에 불리지 못했고, 그의 경기 스타일과 맞물려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 선수의 오명이 씌워졌다. 명예회복을 노린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서는 또다시 큰 부상에 쓰러졌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출장한 2010년에도 결국 비난만 더 받아야 했다. 현재 K-리그에서 가장 빛나는 별인 이동국에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애증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20세 이하, 23세 이하, A 대표를 한 해에 다 뛰어야 했던 선수였다. 수없이 바뀌는 환경과 혹사 논란속에 부상을 입었지만 2002년 월드컵이라는 대의명분 하에 치료와 재활보다는 경기장에서의 경기력을 더 요구 받았고, '부상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김현철 주치의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게으르고 기량이 떨어져서 히딩크에게 외면당했다고 주지되었다.
그런 이동국이 32살 나이에 다시 한 번 뜨겁게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논란의 첨단을 걷고 있는 조광래호와 연관되서 그의 활약이 회자된 것이다. K-리그 최초로 개인상 전부분 석권 (MVP-신인상-득점왕-도움왕)에 다가서고 있는 이동국의 맹활약이 눈에 차지 않는 경기력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는 조광래 감독의 대표팀과 연관되어 많은 말들을 낳은 것이다.
사실 조광래 감독이 꾸준히 추구했던 전술에는 이동국이라는 선수 자체가 잘 맞지 않는 게 사실일 수 있다. 지난 2-3년간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친 이동국을 외면했던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의 전술과 맞지 않는다." 는 이유를 들며 그를 선발하지 않았다. 사실 최고의 경기력을 만들고자 하는 감독 입장에서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자기 전술과 어울리지 않으면 뽑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그렇게 주장했던 조광래 감독의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이 꾸준하지 못했고, 심지어 숙적 일본에게 0-3으로 패하는 30년만의 치욕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팀과 전술을 주장하던 조광래 감독은 더 이상 자기 주장만 하기 힘들어졌다. 게다가 선수들의 경기력을 평가한다며 방문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동국이 4골을 뽑아내며 포효하자 여론은 그에게 이동국의 대표팀 선발을 꾸준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폴란드 전과 UAE 전을 앞두고 이동국을 추가 선수로 발탁했다. 움직임과 결정력이 좋아졌다는 게 이유였다.
이렇게 선발된 이동국은 폴란드와 UAE전에 총 60분을 뛰며 공격포인트 하나 기록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동국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겁다. 아무것도 못한 이동국보다 그를 기용한 조광래 감독에 대한 지탄이 더 큰 모습이다.
폴란드 전에서 선발 출장한 이동국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됐다. 박주영-지동원과 짝을 이룬 이동국은 전반 내내 전방에서 고립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후반에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동국의 몸상태와 움직임은 좋았지만, 중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조합으로 대표팀의 방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나빴다." 고 평가했다. 실제로 전반 내내 이동국은 물론, 박주영과 지동원 역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박주영과 지동원에게는 후반이 있었고 이동국에게는 없었다.
이동국과 같은 스타일의 선수에게는 90분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소속팀인 전북의 최강희 감독이 수없이 말했지만 평가전에서조차 이동국은 45분만에 교체되어야만 했다. 폴란드를 상대로 원활하지 못한 경기력을 보인 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은 UAE 전에서 이동국을 후반 교체 맴버로 쓰겠다며 "뛰어난 신체조건과 결정력으로 훌륭한 조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동국의 선수 경력과 많은 전문가들이 이동국은 교체 요원보다는 선발 요원으로 적합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리고 UAE 전에서 이동국은 후반 34분 교체 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밟았다. 박주영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보다도 더 짧게 뛰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마지막 10분을 가장 치열하게 뛴 이동국을 두고 경기 후 조광래 감독은 "조커는 좀 더 빠른 선수가 필요하다."는 말만 남겼다.
사실상 이번 폴란드 전과 UAE 전을 보면 조광래 감독이 이동국을 뽑은 이유가 의문스럽기만 하다. 조광래 감독이 이동국을 그라운드에 있게했던 시간동안 대표팀의 플레이와 전술은 사실상 실패한 실험과 같았다. 문제는 이동국이 아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두 경기 모두 이동국의 움직임은 좋았지만 주변 선수들과의 연계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지적한다. 굳이 원인을 잡아내자면 그 시간대의 전술과 전략적 흐름 자체가 완전히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선수들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 없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감독의 오판이라는 것이다.
비약해서 표현하자면 이번 두 경기에서 보여진 조광래 감독의 이동국 활용 모습은 선발로도 조커로도 쓸 수 없는 이동국을 증명하기 위한 함정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K-리그에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대표팀과 K-리그의 수준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엄밀히 말해서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지금의 대표팀은 K-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동국의 소속팀인 전북보다 나은 경기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대표팀이 전북과 경기를 치른다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단언컨데 조광래 감독은 이동국이라는 선수에 대해 이미 쓰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물론 부인한다면 누구도 뭐라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적어도 두 경기를 통해 보여진 대표팀의 모습은 그러했다. 차라리 조광래 감독은 이동국을 뽑지 말았어야 한다. 조커로서 능력을 믿는다고 해놓고 2-0으로 앞서던 경기에서 선수가 부상당하자 마지막 10분을 뛰게 하는 교체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모든 상황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겠지만 조광래 감독이 현재 우리 국가대표팀의 수장이고, 이동국이 K-리그 최고의 선수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그 둘이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두어도 항상 최고의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축구에서 수없이 증명된 결과이다. 이제는 그 둘의 허울뿐인 의미 없는 조합이 차라리 없어야 할 것이다. 조광래 감독이 여론에 밀려 선수 한 명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도마위에 오른 자신의 '만화축구'의 틀 자체를 과감하게 손 볼 생각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조광래 감독은 폴란드 전과 UAE 전을 통해 대표팀 운영을 위한 무언가를 얻었을 지 모르지만, 자신의 한 선수 활용때문에 우리나라 자국 리그 최고의 선수가 처절하게 상처입고, 자국 리그 자체가 평가절하되는 모욕을 가져왔다는 점은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문화저널21 / 2011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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