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프로그램이다. 파일럿 방송 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Wave에서 꾸준히 보고 있는 프로그램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와 '골 때리는 그녀들' 뿐인다.
사실, '스포츠 예능' 이라는 카테고리가 참 애매하다. 분류와 그에 부합하는 목적이 보는 이의 마음에 와닿는 데에 묘한 괴리가 발생한다. 스포츠와 예능은 현상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유사한 흥행 코드를 갖고 있지만, 핵심의 요소는 완전히 상이하기에 묘한 이질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스포츠 예능'은 '예능'으로 시작해 '스포츠'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진지함이 예능감을 넘어선다. 문제는 진지함에 다가갈수록 '예능의 재미'보다 '스포츠의 재미'에 근접하고, 이럴 경우 '진짜 스포츠'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발생한다. 이 부분의 한계를 넘어서며 확실한 목적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불꽃야구'다. 지금의 '불꽃야구'가 처음 '최강야구'로 론칭한 시점보다 재밌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즐겨보지도 않지만, '스포츠 예능'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면서 '불꽃야구'는 이전의 동종 프로그램이 갇혀있던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정말 입지전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지금도 상당한 의미를 가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스포츠'에서 용인되는 승부욕은 본질이 예능인 프로그램의 승부욕과는 큰 차이를 갖는다. 결국 '예능 스포츠'가 아닌 '스포츠 예능'이기에 스포츠에 근접할수록 기존의 팬층에게는 불편한 지점이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스포츠가 아닌 예능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이 고도의 인지도를 갖추게 되면 '스포츠 예능'이 아닌 '예능 스포츠'로 진화한다. '불꽃야구'가 그렇고, '뭉쳐야 찬다'고 그런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형태에 이르지 못하면 결국 시즌의 제약을 넘을 수 없다. 유사한 프로그램들 대부분이 거기에 멈춘다.
'골 때리는 그녀들' 역시 '스포츠 예능'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축구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이들보다도 볼 차는 데에 정성을 투자하지 않으면 출연자가 도태되는 프로그램이 됐다. 예능보다 스포츠에 가까워지고 있다. 어느 정도 볼을 찰 줄 아는 이들이 필요하고, 이 프로그램을 위해 축구나 풋살 연습을 하는 여자 연예인들도 있다고 한다. 공을 잡다가 넘어지는 연예인들이 처음에는 웃음코드였지만, 지금은 출연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불꽃야구'나 '뭉쳐야 찬다'보다 예능성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출연진 대부분의 출발점이 제로베이스였기에 예능에서만 인정될 법한 실수가 시청자들의 이해선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골키퍼가 백패스를 손으로 잡으면 안된다는 기초 중의 기초를 놓쳤을 때, '뭉쳐야 찬다'에서는 비난이 되지만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는 안타까움이 된다. 이 또한 이 프로그램이 갖는 특징이다.
공 차는 여성들, 그리고 여자 연예인과 셀럽들의 성장기가 재미있었고, 또 수준급으로 볼을 차는 그녀들이 대단하게 느껴진 것도 흥미 요소였지만, 내가 이 프로그램을 오래 보게 된 것은 출연진들이 보여주는 간절함이 이유였다.
만년 하위 팀이며 이기는 것은 커녕 한 골을 넣기도 버거워 보였던 팀인 아나콘다의 주축으로 활약하던 윤태진 아나운서가 첫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주말마다 축구를 하던 시절, 축구 팬으로 살아온 시간, 현장에서 기자로 축구를 보고 기록하고 전달했던 모든 시간을 통틀어, 수많은 골 세리머니를 봤다. 멋있는 세리머니는 많지만 그 자체로 간절함의 깊이를 보여주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윤태진 아나운서의 세리머니에서는 그 간절함이 소름끼치도록 녹아 있었다. 조금도 세련되지 않았고, 감정을 주체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에서 첫 골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컸는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 순수한 열정과 상처와 노력의 절실함이 정말 아름다웠다.
성장과 발전이 이어지면서 예능은 스포츠에 더 근접했다. 수준은 높아지고 더욱 '진짜 스포츠'와 선을 긋기 어렵게 됐다. 원래부터 몸싸움이 존재하던 종목이기에 충돌이 없을 수 없다. 따라서 운영과 판정은 더욱 신중하고 공정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이질감이 생기면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다.
지난 주, 이 프로그램의 G 리그라 불린 시리즈의 결승이 열렸다. 전체적으로 예능성을 완전히 버려버린 프로그램으로 정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판정의 공정성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후반에 나온 판정과 심판의 설명은 신뢰의 기준을 확실하게 넘어섰다.
수비수가 자신을 빠져나간 공격수를 뒤에서 완벽하게 안았다.
공격수가 완벽하게 수비수를 제치고 나간 상황에서 뒤에 따라오던 수비수가 왼팔로 안았고,
거기서도 제지가 되지 않자, 오른손으로 팔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볼 처리 미스로 상대 공격수에게 볼을 뺏기고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는 위기가 닥치자 뒤에서 안고, 팔을 잡아끌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고의적인 파울이다.
그런데 심판은 일반 파울로 선언했다. 경고조차 주지 않았다.
'유망한 공격 기회가 아니기에 경고를 줄 수 없다'는 것이 심판의 설명이다. 이게 과연 자격증을 갖고 있는 심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유망한 공격 기회가 아니면, 백태클을 해도 카드는 나오지 않는걸까? 완벽하게 포지션을 뺏긴 수비수가 앞서가는 상대 공격수를 뒤에서 고의적으로 안고, 잡고, 걸었다. 이것은 위험지역이 아니어도 당연히 카드가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파울이 아니었다면 일대일 슛 찬스였다.
유망한 공격기회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공격수 둘에 수비수 하나인 상황이다. 완벽한 득점 기회다. 이를 종합했을 때, 해당 파울은 다이렉트 퇴장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완벽한 득점 기회를 고의적인 파울로 저지한 행위다. 경합 상황에서 플레이를 펼치다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로 완벽한 위기가 발생하자 수비수가 고의적인 반칙으로 상대를 저지시킨 비신사적인 행위다. 이것이 '유망한 공격 기회가 아니'라는 설명은 이 프로그램에서 뛰고 있는 출연진들에 대한 지나친 비하가 아닐까? 심지어 저 화면은 상대 수비수의 고의적인 반칙으로 제대로 전진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캡쳐된 장면이다. 실수를 범한 수비수가 볼을 잡은 공격수를 안고 잡은 행위로 인해 공격수가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진행하지 못한 위치라는 것이다. 캡쳐 자체로도 확실한 찬스지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반대쪽에 있던 수비수가 저 정도의 각조차 좁히지 못했다. 캡쳐된 화면보다 더 명백한 득점 찬스였다는 것이다.
심판도 사람이기에 당연히 실수를 한다. 반자동 오프사이드, VAR, 골라인 자동 판독 등으로 정확성을 강화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서도 심판의 판정 실수는 종종 있어왔다. 그런데 이 판정은 '실수'라고 보기 힘들다.
저 파울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상황이 아니다. 수비수가 볼 컨트롤에서 실수를 했고, 이것을 공격수가 뺏어서 앞섰다. 그러자 뒤에서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나가자 잡아당기고 다리를 집어 넣었다. 순간적인 상황이 아니라 몇 초 동안 이어진 플레이다. 실수로 볼을 빼앗긴 후, 상대가 일대일을 맞이하자 잡는 순간에 이미 휘슬과 카드가 나오는 게 맞다. 그런데도 그걸 인플레이 상황처럼 묵인하다가 공격수가 넘어지니까 그제야 파울을 불었다. 눈으로 보고 한 판정이라기보다, 머리로 생각하고 내린 판정이라는 의심이 짙다. 심판이 판정을 눈이 아닌 머리로 하는 순간부터 스포츠는 공정성이 사라진다. 반칙도 열정이라 할 수 있지만 기준이 필요하다. 선을 넘어서면 그것은 폭력이다.
경기를 뛰는 선수는 순간적인 우를 범할 수 있다. 그것도 경기의 일부다. 그런데 이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는 심판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걸 방조하면 스포츠는 싸움이 되고, 선수들은 싸움꾼이 된다. 제지하고 카드를 꺼내서, 경기가 위험 수준으로 가열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기본적인 덕목이고 자격조건이다. 이 상황에서는 그러한 기본조차 지키지 못했고, 작위적인 판정을 내렸으며, 그에 대해 저열한 변명을 했다. 그리고 그 판정이 경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하게 하면서 경기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유망한 공격기회가 아니'라는 주장은 심판이 할 수 있는 자기 변명이 아니라, 스스로 '나는 심판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백과 같다. 그런데 이 심판은 심지어 공인 자격증을 갖추고 있는 국제 심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실수보다는 의도성이 의심된다. 이 발언은 경기 진행의 공정성에 문제가 없었다는 심판의 변명이자, 프로그램의 변명이기도 하다. 구차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능에서 스포츠로 진화하는 프로그램은 경기의 공정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저 판정은 경기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상황 중 하나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중대한 실격행위였다.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변호하는 심판과 프로그램이 스스로의 자격을 더욱 처참하게 만든다.
어느 시점부터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며, '제작진의 의도'가 프로그램에 투영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방송 프로그램에 제작진의 의도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불리던 예능 프로그램도 대본이 있는데, 당연히 의도와 각본의 기본 틀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가치가 예능보다 스포츠에 근접하게 되면 제작진의 의도가 내용과 결과에 영향을 줄 때, 존재의 가치는 사라진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은 감독들을 통해, 축구(혹은 풋살)에서 손을 쓰는 플레이가 정상적인 플레이인양 호도하고 있다. 당연히 파울이다. 페널티박스에서 밀지도 않았는데 손이 상대 공격수의 몸에 닿아있다는 것 만으로 PK를 내주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축구는 몸싸움을 용인하기 때문에 적정선에서 팔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쌍방이 동시에 손을 사용하는 경우를 융통성있게 인정하는 것일 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잡거나 안으면 당연히 제지하고 파울을 분다. 평생 이 종목에 종사한 사람들도 몸싸움 과정에서 어깨를 집어넣는 것, 볼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되는 상황과 경합 상황에서의 차이에 대해 첨예하게 해석이 갈릴 때도 있다. 따라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일수록 손을 사용하는 플레이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오히려 원론적인 원칙에 가깝게 판단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며, '프로들도 하는 것'이라고, 손을 사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룰인 것처럼 표현한다. '어쩔 수가 없다'는 변명은 '정정당당'과 배치되는 표현이다.
시청자의 관심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이 프로그램은 스포츠 적인 요소에 '제작진의 간섭'이 너무 당연하게 이어진다. 이미 과거에 득점 순서를 조작해서 사과까지 한 적 있다. 그때는 예능 요소가 훨씬 짙던 시점이었다. 그때도 엄청난 논란이 일었는데, 하물며 지금은...
편집은 조작이지만 오심은 경기 중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명백하면서도 어이 없는 오심은 보는 이에게 조작과 다르지 않은 감정을 선사한다.
제작진은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이적 시스템이 생겼다며 새로운 변화라고 홍보했다. 그런데 이적의 주체가 팀이 아니라 방송사다. 그냥 A 팀에 뛰던 선수를 B 팀으로 옮기는 거다. 그냥 상황에 맞게 제작진이 팀 구성을 마음대로 바꾸는 제도가 된 것이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신생팀이라며, 출연하다가 하차했던 이들을 모아서 팀 하나를 새로 구성한단다. 제작진 마음대로 선수 빼서 한 팀 만든 거다. 공산당이다. 사실, 강제로 감독을 바꾸던 것도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나마 예능적 요소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선 것 같다.
오랫동안 관심있게 본 프로그램인데, 이제는 시야에서 지워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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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처럼 한 가지를 더 언급하자면...
선수 시절에 상당한 실력과 인지도를 자랑했는데 은퇴 후 지도자를 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본인이 지도자에 뜻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본인은 직·간접적으로 지도자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데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부턴가 이런 이들에 대해 유니콘같은 신화가 덧칠되고 있다. 선수 시절부터 너무 정의롭고, 혹은 바른말을 했던 인물이라 구단과 연맹, 협회가 부담스러워 한다며, 그를 지도자로 쓰지 않는 우리 구단들과 리그의 행태와 풍토를 비판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주 잘 알려진 몇몇 인물들이 지도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들의 생각과 다르다. 그들이 정말 필요했다면 협회와 구단은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 수 있다. 본인들이 자격 정지를 시킨 인물도 필요하면 바로 금의환향시킨다. 저들이 현장 지도자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구단과 협회, 연맹의 풍토가 아니라, 현장에 있는 선후배와 그 공동체로부터 '지도자의 자질'을 인정받지 못한 점이 가장 크다. 선수로서의 능력인 인정하지만, 팀을 이끌고 선수들을 지도할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어떤 종목의 A라는 인물은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생활 면에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했다. 공개석상에서는 화려했던 그의 선수 시절을 찬양하지만, 그를 선수로 존경할 뿐, 인간으로 존중하지는 않는다. 다른 종목의 B라는 인물은 그를 선수로 데리고 있던 외국인 감독조차 "코치로 쓸 생각이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그런 인물들은 현장에서 책임을 덮어쓰는 자리에 가는 것보다 이름값을 앞세워 3인칭으로 누릴 것만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본인의 보신을 위해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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