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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gIbberish

R.I.P. Hulk Ho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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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철이 없기에, 스스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진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많지 않다. 거울을 즐겨보지 않기에 스스로의 변화에도 둔감하다. 다만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의 나이 먹어감이 눈에 보이면서 나 또한 다르지 않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그리고 지인들의 부고, 혹은 어린 시절 나의 영웅이었던 존재들이 시간의 야속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별을 전할 때, 사라지는 추억과 더불어 나의 시간도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헐크 호건(Hulk Hogan). 본명은 테리 볼리어(Terry Gene Bolea)이고, 프로레슬러이자 배우였고 기업가였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영원한 WWF(World Wrestling Frderation) 챔피언'이다. 어린 시절, 토요일마다 나를 TV 앞으로 이끌었던 주인공이다. 초등학생이 아닌 국민학생 시절, 토요일도 4교시 수업을 받던 그 시절에 난 하교 후 TV 앞에 앉아 화질이 불안정하던 채널 2번 AFKN을 틀었다. 지금 세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채널이 7번, 9번, 11번 3개 뿐이던 시절에 가장 나쁜 화질로 방송이 나오던 미국 방송, 정확히는 미군 방송이다. 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의 줄임말로 AFKN이라고 불렸고, 지금은 AFN Korea라고 하는데 라디오만 나오나보다. AFKN은 종종 미국 스포츠도 중계해줬는데 매주 토요일 낮에는 WWF(지금의 WWE가 당시에는 WWF였다. WWF는 세계자연기금 - World Wide Fund for Nature 과의 소송에서 패해 명칭을 WWE로 바꿨다)를 방송했다. 시간은 불규칙했다. 대부분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시작했다. 신문에 TV 편성표가 매일 실리던 시절이기에 토요일 아침 등교 전, AFKN의 편성표를 보고 WWF 방송이 몇 시인지 확인하고, 그때까지 집에 도착하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있다.

 

헐크 호건은 그 시절 나의 가장 큰 영웅이었다. '프로레슬링은 가짜다'라는 말을 믿지 않았고, 각본이 아닌 진짜 스포츠라고 믿기도 했던 순수(라고 쓰고 멍청하다고 이해하자)했던 시절이다. 레슬매니아에서 그가 230kg이 넘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를 바디슬램했을 때는 정말 짜릿했고, 긴 승부 끝에 얼티밋 워리어에게 벨트를 내줬을 때는 억울함과 아쉬움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워리어를 좋아했지만 나의 1번은 항상 헐크 호건이었다. 여전히 헐크 호건이 WWF 세계 챔피언, 워리어가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던 시절이 가장 찬란했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화려하거나 다이내믹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파괴적이거나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쇼의 형식이 강한 헐크 업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피니쉬 무브인 빅 붓에 이은 레그 드롭으로 경기를 끝냈다. 빅 붓과 레그 드롭을 지금 피니쉬 무브로 쓰면 다들 야유할 것이다. 일반 기술로도 그렇게 임팩트가 있는 기술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작 하나 하나와 마이크 워크로, 보는 이들을 열광시키는 말 그대로 슈퍼스타였다. 그랬기에 'I am a real American, Fight for the rights of every man'이라며 말 같지도 않은 가사를 주절대는 그의 엔터런스 테마 곡 Real American(Rick Derringer)의 전주에도 열광할 수 있었다. WWE가 지금과 같은 세계 최정상의 스포츠 엔터테인먼츠로 올라서는 데에 가장 기여를 한 인물 중 한 명이며, 전면에서 인기를 견인한 것으로는 단연 최고의 1인이었다.

Whatcha gonna do when Hulkamania runs wild on you?

 

 

멜버른 콜로니얼 스타디움에서 열린 WWE 투어를 어렵게 가서 봤던 적이 있다. 헐크 호건을 실제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때였다. 그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헐크마니아 중 한 명이었던 내게 남아있는 영웅과의 유일한 기억이다. 어린 시절, 지구 반대편의 국민학생에게 매주 주말마다 가슴 뛰는 설렘과 감동을 선사해줬던 헐크 호건에게 감사와 경이, 존경을 보내며, 그의 영면에 편안한 안식을 기원한다. 

 

HULK STILL RULLS

 

 

 

 

 

 

 

 

 

 

 

 

잘가요.. 나의 영웅...

HULKAMANIA WILL LIVE FOREVER...

WE'RE STILL RUNNING WILD, BR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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