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피드 역시 당시 문화저널에 기고했던 글을 먼저 올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으로 해발 2750m의 높이를 자랑한다. 휴전선 남쪽에 위치한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1950m인 한라산으로 이 두 산은 모두 화산이다. 파나마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도쿄(東京)와 LA, 산살바도르(San Salvador)를 경유해 파나마에 도착지했다. 파나마시티(Panama City)를 출발해 보케떼(Boquete)로 이동하는 데에도 6시간 이상을 달렸다. 그리고나서 가장 먼저 진행했던 일정이 과쟈발(Guayabal)에 위치한 과이미(Guaimi / Guaymí) 인디언 마을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몸살이 난 탓에 다음 방문은 조금 쉬운 코스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정상고도 해발 3474m의 볼칸바루(Volcán Barú) 등정이었다. 볼칸바루 역시 화산이다.
걷지 않는다고 쉬운 것은 아니다
볼칸바루로 오르기 위해 도착한 보케떼는 이미 해발 고도가 높은 도시였다. 이 곳에서 8시간 정도를 꼬박 오르면 산 정상에 도착한다고 한다. 8시간을 등반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해발 3474m를 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치면 상당히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채 2000m가 되지 않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데도 그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적은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성취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 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차로 가면 정상까지 3시간 만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300m 정도는 걸어야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3000m가 넘는 고지에 내 발로 딛어 볼 수 있는 경험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고작 300m만 걸으면 되는 코스다.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보케떼에서 볼칸바루로 출발했다. 일행을 태운 차량은 산 정상까지 왕복해주기로 한 4륜구동 픽업트럭이었다. 산 정상까지 차로 오르는 사람이 많은지 짐 칸에 의자를 달아 앉을 수 있게 해 놓았다. 트럭 짐칸에 놓인 의자에 몸을 의탁했지만 처음에는 그래도 갈 만 했다. 문제는 출발한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닥치기 시작했다.
차가 올라가는 길은 도로가 아니었다. 단순히 포장 도로,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등산로라고 하기에도 험준해보였다. 운전에 적당한 길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름 여러 악조건에서 운전을 해봤지만, 여기에서 운전을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이다. 곳곳에 바위와 자갈이 널려 있었고, 어떤 구간은 물 빠진 계곡 같기도 했다. 종종, 차체가 크게 기우뚱하기도 했다. 어떤 언덕은 도저히 차가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트럭은 이런 길을 거칠 것 없이 헤집고 올라가고 있었다. 최초에 이 구간을 차로 등반한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할 정도로 달리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테마파크 놀이기구보다 스릴이 넘쳤고, 안전벨트조차 없는 좌석의 쉼 없는 요동과 때로는 바위로 된 계단같은 산길을 거꾸로 올라가는 모습에 직접 경험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현실을 체험했다. 무성하게 자란 산림 속 나무의 잔가지가 과감하게 건네는 인사를 얼굴을 포함한 온 몸으로 받아야 하는 것도 짜릿한 경험이다.
그렇게 3시간을 달려 볼칸바루의 정상에 섰다.
감동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트럭에서 내려 짧은 구간을 내 발로 이동해야 했다. 거리는 짧았지만 등에 짊어진 카메라 가방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고, 정상을 향하는 마지막 코스는 무지막지한 길을 달려온 트럭조차도 오를 수 없는 길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준하는 길을 조금만 지나면 해발 3474m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한 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전에 없이 숨이 차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며 현기증이 일었다. 얼마 발을 떼지도 않았는데 호흡이 가빠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평소에 등산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체력이 이 정도로 엉망이지는 않았는데, 이것이 고지의 악마, 고산증의 정체인가보다. 사실 고산증인지, 아니면 올라오는 차 안에서 경험한 멀미인지는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
결국 오르던 도중에 필요한 렌즈 몇 개 만을 챙기고 가방을 내팽개친 채 미적거리며 전진하여 고지의 정상에 섰다. 아마 내 평생 가장 느리게 이동한 짧은 구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볼칸바루의 정상에서
장엄한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을 바라봤다. 사실 태양이 정확하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주지는 않았다. 바다처럼 넘실대는 구름의 흐름 속에 태양은 빛과 흔적으로 자신이 다시금 어둠으로부터 세상을 인계받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누구의 흔적인지는 몰라도 볼칸바루의 정상에는 카톨릭의 나라답게 십자가 하나가 굳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산 정상에 꽂아두는 십자가는 산이 더 높아지지 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십자가 너머로 카리브 해가 보였고, 반대쪽으로는 태평양이 멀찍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야 운하의 나라다운 느낌이었다.
숱한 여행을 통해 수많은 일출과 운해를 목격했다. 고지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그것과 확실히 달랐다고 말하는 것은 경험한 자로서의 만용일 것이다. 하지만 산 정상에서 일출과 함께 두 개의 각기 다른 대양(大洋) 바라보는 것은 분명 쉽지도, 흔치도 않은 경험일 것이다.
산이라는 게 그렇듯이 오를 때 보다 내려올 때가 더 힘든 법이다. 자동차로 오른 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한 흔들림에 허리와 다리가 저리다 못해 쥐가 날 지경이었고, 현기증과 함께 찾아든 두통은 가실 줄을 몰랐다. 가끔씩 트럭에 부딪혀 날아드는 나뭇가지의 공습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지만, 때로는 학창시절의 회초리만큼 따끔한 것도 있었다.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3474m의 절경에서 다시 한 번 배울 수 있었던 기회라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는 후유증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워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살면서 오른 가장 높은 봉우리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3474미터의 해발 고도를 자랑하는 산 정상에 내가 선다는 걸 나 스스로 상상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볼칸바루는 보케테에서 걸어서 8시간, 차로는 3시간을 가야 오를 수 있는 정상이다. 솔깃한 얘기다. 무려 3474미터의 고지를 가는데 걸어서 8시간이라니.. 우리나라의 고봉을 오를 때도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는 보케테가 이미 고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동차로 정상 언저리까지 간다니 엄청난 찬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타고 말타고 가는 거니 별로 힘들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인디오 마을의 여정이 그랬던 것 처럼, '차로 3시간'이라는 볼칸바루 등정도 결국 쉬운 길이 아니었다. 자동차는 일반 차량이 아니라 닷지에서 나온 4륜구동 픽업트럭이었고, 우리의 자리는 트럭의 짐 실는 칸에 마련된 간이 의자였다. 게다가 차가 가는 길은 일반 도로는 커녕, 비포장도로도 아닌 100% 순수한 산 길이었다. 그냥 등산로라고 해도 좋을 길이다. 걸어 올라가는 이들이 가는 길과 차가 가는 길이 동일하다. 일반 산 길 일 뿐 아니라, 모래와 자갈이 뒤엉킨 곳도 있었고, 물 웅덩이는 물론, 바위와 돌들이 빼곡히 박힌 길도 있었으며, 차라리 물 빠진 계곡이라고 할 만한 길과, 산 길이 계단처럼 굳어진 곳도 있었다. 이런 길을 트럭은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갔다. 몸 안에 두개의 이상 디스크를 앓고 있는 내게 심하게 요동치는 차체는 고통이었다. 게다가 거세게 흔들리는 차는 멀미를 동반했고,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고지에 오른 탓에 고산증 증세까지 덮쳐왔다. 볼칸바루의 일출은 이런 고통을 감내하고 얻어낸 인고의 대가였다.
비루한 몸을 이끌고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 건가 싶었는데, 내가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빼곡히 남겨진 암벽 위가 3474미터의 정상이었다. 그리고 해가 뜬다...
고지의 일출에 쓰나미같은 운해가 덮쳐오고 있었다.
정상임을 인증하는 무슨 표지 같은데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다.
여기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 공항에서 내 짐을 뒤지는 세관에 "Do you speak English?"라고 문자 "에스빠뇰 온니!!!"라는 답이 돌아왔었다.
해가 드는 곳 반대편으로 멀리 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태평양이 펼쳐져 있다.
가톨릭의 나라답게 정상에 우뚝 세워진 십자가.
십자가 뒤로 펼쳐진 구름. 뭔가 휴거라도 일어날 것 같다.
그리고 그 아래 에메랄드 빛으로 보이는 것은 카리브해다.
구름이여 거병하라...
마침 이때 정상에 오른 캐나다 커플을 만났다. 순수하게 걸어서 올라왔다고 한다. 하루 전에 등반을 시작해 텐트에서 1박을 하고 다시 오른 정상이란다. 14년이 지났는데...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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