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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iNside sports

[WKBL] 꽤 늦은 챔피언 결정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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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글쓰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이전 프리뷰를 쓰면서, KB의 우승을 예상했고, KB를 상대로 삼성생명이 하나은행보다 타이트한 경기를 가져가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1경기 정도는 가져갈 수 있는 저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삼성생명이 너무 무기력했다. 합당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핑계밖에 될 수 없는 조건이기에, 이 일방적인 시리즈에 굳이 뭘 써야하나 싶은 생각도 있었다. 시리즈 전적 3-0. 2차전에 삼성생명이 반격의 가능성을 보이는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 챔프전에서 기대하는 치열한 승부는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박지수의 부상 결장'이라는 치명적이고도 압도적인 변수에도 불구하고, KB는 역대 가장 일방적인 포스트시즌의 퍼펙트 우승을 완성했다.

 

최고의 화두가 된 미스매치

Is this a dagger which I see before me, The handle toward my hand?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1623>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키가 큰 선수가 아니라, 심장이 큰 선수가 이긴다고 한다. 동의한다. 하지만 결국 키가 큰 선수가 심장도 더 클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농구라는 종목은 림을 하늘 위 3.05m에 매달아 놓았을 때부터 장신자들에게 유리한 스포츠다. 3점슛이 아무리 정확해져도 2점슛보다 평균 성공률에서 앞서지 못하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이치다.

 

KB와 삼성생명의 경기에서는 특히 '센터의 존재'가 확실한 차이를 만들었다. 삼성생명의 센터는 주장이자 19년차 베테랑인 배혜윤이다. WKBL을 대표하는 빅맨이고, 골밑에서의 능력은 물론 야투와 피딩 능력을 갖춘 전천후 빅맨이다. 문제는, 배혜윤이 뛰어난 센터이지만 '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점이다. 배혜윤은 KB의 주장이자, 핵심 전력인 박지수에게 철저하게 약했다. 선수 커리이어에서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배혜윤은 2018-19시즌 이후 7시즌 연속으로 평균 12점 이상을 꾸준히 득점했지만, 이번 시즌 7.3점으로 확연히 수치가 떨어졌다. 리바운드와 어시스트도 2018-19시즌 이후 최저다. 하지만 KB를 상대로는 더욱 약했다. 6경기에서 평균 5.4점 2.6리바운드 2.2어시스트였다. 반면, 이 6경기에서 배혜윤을 상대한 박지수는 14.8점 6.7리바운드로 분명한 우위를 보여줬다. 박지수 또한 시즌 내내 부상이 이어졌던 힘든 시즌이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확실한 우위를 보였다. 최근 5시즌, 박지수는 삼성생명 전에 19차례 등장해 평균 18.3점 11.3리바운드 4.5어시스트 1.5블록슛을 기록했다. 그리고 박지수가 뛴 맞대결에서 KB는 삼성생명에 17승 2패라는 압도적인 승률을 보였다. 

 

박지수가 꾸준했던 반면, 배혜윤은 박지수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편차가 크다. 배혜윤은 박지수가 공황장애 등으로 대거 결장했던 2022-23시즌, KB를 상대로 평균 16.4점 5.6리바운드 5.2어시스트 1.8스틸을 기록했다. 박지수가 튀르키예 진출로 뛰지 않았던 2024-25시즌에도 14.5점 8.0리바운드 4.0어시스트 1.3스틸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21-22시즌 이후, 박지수가 정상적으로 뛰었던 세 시즌에는 평균득점이 10점을 넘지 못했다. '팀의 중심'인 배혜윤의 경쟁력은 삼성생명의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삼성생명은 최근 5년간, 박지수가 있는 삼성생명에게 2승 17패였지만, 박지수가 없을 때는 10승 1패로 압도했다. 삼성생명은 박지수가 없는 KB를 상대로는 배혜윤을 통해, 자신들이 박지수에게 당했던 고통을 그대로 갚아줬다. 때문에, 박지수의 결장은 시리즈의 판도를 완전히 덮어버릴 수 있는 요소였다.

 

미스매치. 일반적으로 키가 큰 선수가 작은 선수에게 매치 되면서 신장의 우위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삼성생명은 박지수가 없는 KB를 상대로라면 당연히 이를 활용할 것으로 봤다. KB의 2년차 빅맨 송윤하가 이번 시즌, 대단한 성장을 보였지만, 179cm로 신장이 큰 센터는 아니다. 183cm의 배혜윤, 182cm의 이해란이 있는 삼성생명이 높이의 이점을 활용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이미 지난 시즌 5승 1패를 거둔 라인업이라 볼 수 있다. 작년에 뛰었던 키아나 스미스가 없지만, KB도 나가타 모에가 없다. 

 

1차전 양 팀 선발 라인업 베스트 5의 평균 신창 차이는 무려 6.4cm다. KB는 강이슬(180cm) 한 명만 180cm가 넘었고, 5명의 평균키가 171.8cm였다. 팀 내 최장신 멤버들의 신장 축소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는 걸그룹 아이브랑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신장의 우위가 전혀 경기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삼성생명은 KB의 인사이드를 공략하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WKBL의 요키치'라는 평가를 받았던 배혜윤이 밖으로도 나와봤지만 빅투빅의 연계는 성공 확률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KB가 매치업 헌팅을 통해 미스매치를 역으로 이용했다. 가드 허예은이 배혜윤을 밖으로 끌어내서 일대일 상황을 만들고 외곽슛과 돌파로 삼성생명을 흔들었다. 매치업 헌팅은 몇 년 전까지, 좋은 전력을 구축한 우리은행이 박지수를 무너뜨리기 위해 KB를 상대로 많이 활용했던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히려 KB의 검이 되었다.

 

"내 앞에 보이는 저 단검은 무엇인가? 손잡이가 내 손을 향해 있는가?"(Is this a dagger which I see before me, The handle toward my hand?)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유명한 '단검 독백'에서와 같이 '미스매치 활용'이라는 단검은 KB가 아닌 삼성생명을 향해 겨눠졌다. 

 

Do my eyes deceive me? 마치 내 눈이 나를 속이는 것처럼, 빅맨을 상대로 펼치는 매치업 헌팅에 여러 차례 흔들렸던 KB가 반대로 상대를 흔들었다.

 

 

 

 

Prey 배혜윤

미스매치를 역으로 이용한 KB의 공략 성공은 그 상대가 배혜윤이었기에 삼성생명에 주는 타격이 더 컸다. 정규리그 득점 2위이자, 하나은행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34점을 득점하며 승리를 이끈 이해란이 버티고 있지만, 삼성생명의 중심은 여전히 배혜윤이었다. 배혜윤은 하나은행이 공격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카드로 꺼내 들었던 진안을 막아 세웠고, 공격에서도 클러치상황에 주저 없이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37살의 노장은 '팀의 정신적 지주'일 뿐 아니라, 여전히 팀이 승부처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공수의 핵심이었다. 그런 배혜윤이 철저히 유린당했다. 노련한 배혜윤이 상대 공격의 먹잇감이 되어 이토록 철저하게 공략을 당했던 경기가 또 있었나? 적어도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낯설어서일까? KB의 집요한 공격에 삼성생명은 좀처럼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매치업 헌팅'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사실, 과거 우리은행이 박지수를 매치업 헌팅 했을 때는 '헌팅' 보다는 '박지수 베싱(Bashing)'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의 KB는 그야말로 헌팅이라는 단어에 철저하게 부합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배혜윤도 스위치 상황을 피해가며 맹렬하게 저항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삼성생명의 팀 디펜스 역시 배혜윤을 돕지 못했다. 배혜윤이 철저하게 농락 당하고 KB의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동안 동료들은 배혜윤을 돕는데 크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배혜윤이 무너지자 삼성생명의 저지선도 함께 붕괴됐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사라졌다. 강유림이 공격에서 분전하고, 이해란도 평균 두 자릿 수 득점을 올렸지만 승부처에서의 영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허예은으로부터 시작된 KB의 배혜윤 공략은 강이슬은 물론 이채은, 사카이 사라 등 다양한 선수들에게 이어졌고, 배혜윤이 무너졌다는 심리적 파고에 삼성생명은 깊게 잠식된 것 처럼 보였다. KB는 거대한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사자 무리 같았다. 오랫동안 지배자 중 하나로 존재했던 거대하고 노련한 코끼리를 쓰러뜨리듯, 허예은과 강이슬이 선봉에 서서 무너뜨렸고, 나중에는 어린 사자들까지 달려들어 숨통을 끊었다.

 

3경기 총 120분 중 삼성생명이 리드를 잡았던 시간은 단 10분 44초. 마지막 3차전은 와이어 투 와이어로 끝났다. 정규리그 MVP이자, 이 리그 최고의 먼치킨이 단 1초도 등장하지 않았던 경기에서 일방적으로 패한 것은 물론, '팀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배혜윤이 그렇게 무너지는 것을 시리즈 내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점에서 삼성생명의 이 패배는 치욕이었고, 2위팀 하나은행을 플레이오프에서 꺾은 성과는 아쉽게도 퇴색됐다.

 

박지수가 정상적으로 뛰었어도 점수차나 경기 분위기가 더 크게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삼성생명이 끌려가던 경기를 잠깐 뒤집고, 흐름을 바꾸는 듯 했던 모멘텀을 자체를 지워버렸을 것이다.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로 인해 "박지수가 뛰었으면 30점 차 이상으로 졌겠네"와 같은 비난에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초전박살의 기세와 활동량

시리즈의 출발은 삼성생명도 나쁘지 않았다. 이해란의 바스켓카운트로 1차전 첫 득점을 올렸고, 강유림이 1쿼터에만 3점슛 3개 포함 11점을 올리며 우세한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냥의 시간'이 시작된 1차전 2쿼터 이후, 흐름은 마지막 경기까지 일방적으로 흘렀다. 2차전 한 때, 역전을 하고 5분 정도의 리드를 가져갔지만 집요한 KB를 떨쳐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고, 바로 현실이 됐다.

 

활동량에서 삼성생명은 KB를 따라오지 못했다. 높이가 낮은 팀이 한 발 더 뛰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팀의 핵심인 배혜윤이 잡힌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은 KB의 활동량과 로테이션에 정신을 못차리는 분위기였다. 배혜윤을 흔든 건 KB의 매치업 헌팅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공격 때도 배혜윤 특유의 패스를 연결받아야 할 선수들이 한 발 더 빨리 움직이고 스위치를 해가며 코스를 막아버리는 KB 수비수들한테 밀려다니며 상황을 궁지로 몰았던 것도 이유였다.

 

이채은, 사카이 사라, 양지수, 성수연은 뛰는 내내 사냥개처럼 코트를 누비며 공수에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허예은도 놀라운 수비 적극성으로 삼성생명을 괴롭혔고, 삼성생명의 에너지 레벨은 KB에 미치지 못했다. 1차전부터 체력 이슈가 등장하는 당혹스런 상황을 맞이했다. 원래도 턴오버가 많은 팀이었던 삼성생명은 챔프전에서 정규리그(11.7개)보다 더 많은 턴오버(15.7개)를 기록했다. 파울은 여전히 많았고, 경기를 거듭할수록 파울 관리 능력도 떨어졌다. 자신들의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 속공 성공 수는 정규리그보다 근소하게 적었지만 속공 상황 자체는 눈에 띄게 줄었다. 스틸을 통해 상대의 공격 예봉을 꺾는 부분에서 가장 강한 면모를 보여왔지만, 챔프전 3경기에서는 총 11개의 스틸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반면, KB에게는 경기당 10개씩의 스틸을 당했다. 전체 스틸 수가 3배 가량 차이가 났다.

 

김일두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3차전 경기 4쿼터에 "삼성생명이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 만이 좋은 감독이 아니"라며, "연습량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생명 선수단은 극구 부인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여자농구계에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삼성생명은 운동 안 한다'는 소문에 대한 우회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은 WKBL에서 운동량이 가장 적은 팀으로 꼽힌다. 단순히 운동 시간이 길다고 능사가 아니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더 나은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지만, 같은 상황에서 체력적인 이슈가 발생하고, 부상 선수가 꾸준히 나온다는 것은 준비와 관리에 강점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챔프전에서 삼성생명이 얻은 수확은 챔프전을 뛴 것 그 자체 외에는 그다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본다.

 

 

 

 

허예은의 지배력

같은 무대를 뛰었더라도 어떻게 마쳤느냐에 따라 수확하는 경험치는 엄청나게 다르다. '박지수 우산 효과'로 최강 전력 평가를 받는다는 비판에 시달리던 KB는 박지수 없이 일방적인 우승을 달성했기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2년차 답지 않은 침착함을 보여준 송윤하는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언더사이즈 빅맨으로서의 가능성을 뽐냈고, 앞서 'KB의 사냥개'로 지칭했던 선수들의 활동량과 에너지는 공수에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박지수가 결장한 상황에서 KB는 가비지 타임이 아닌 상황에서도 허예은과 강이슬을 모두 벤치로 불러들이는 모습도 보였다. 수치로 정량화되는 것 이상의 믿음과 자신감이 백업 선수들에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수들이 코트에서 자신있게 자기 역할을 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은 KB의 핵심이라 하는 '허(예은)-강(이슬)-박(지수) 트리오'가 확실한 중심 역할을 해내기에 가능하다. 매시즌 꾸준히 발전해 온 허예은은 이번 챔프전을 계기로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임을 증명했다. 이번 시리즈의 베스트셀러가 된 매치업 헌팅의 주연으로 등장하며, 시리즈의 판을 만든 선수가 됐고, MVP를 수상했다. 역대 WKBL에서 25세 이전에 챔프전 MVP를 수상한 선수는 2006년 변연하(24세), 2015년 박혜진(25세), 2019년 박지수(21세)에 이어 허예은이 4번째다. 허예은은 이번 시즌을 통해 리딩, 패스, 돌파, 슛은 물론 피지컬의 약점을 극복하는 수비 능력도 보여줬다. 1번 포지션에서 견줄 수 있는 선수가 없다. 특히 젊은 선수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자신감은 허예은이 자신의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무기다.

 

WNBA에서 가장 많은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어내는 선수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농구를 착하게 하는 선수는 아니다. 약았고, 얄밉게 한다. 플라핑에 가까운 플레이도 꽤 있고, 파울을 당하거나 범하는 상황에서도 상대 팀을 긁는 선수다. 허예은의 적극적인 수비에 불만을 표하다가 오히려 공격자 파울을 범한 강유림의 3차전 상황을 보면 이러한 부분이 더욱 두드러진다. 눈을 부릅뜨고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웃으면서 심판의 등을 격려하듯 두드리기도 한다. 영악하다고 표현할만큼 영리하다. 기량과 멘탈, 에티튜드까지 어느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으로 성장한 것 같다.

 

 

 

 

강이슬의 가치

마지막으로 꼭 짚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강이슬의 역할이다. 강이슬이 이번 시즌 정규리그 베스트 5 포워드 부문의 수상자가 된 것으로 팬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나는 일단, 베스트 5를 가드 2명-포워드 2명-센터 1명으로 뽑은 틀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지션별 숫자 제한이 아니라, 그냥 최고의 베스트 라인업 5명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한다. 그러한 기준으로 이번 시즌의 베스트 5를 뽑는다면 강이슬은 여기에 포함이 될까?

 

나는 YES다. 내가 생각하는 이번 시즌의 베스트5는 허예은(KB)-강이슬(KB)-이이지마 사키(하나은행)-김단비(우리은행)-박지수(KB)다. 많은 이들이 이해란(삼성생명)을 언급한다. 이해란은 이번 시즌 삼성생명의 새로운 에이스로 부상하며 공수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장기적으로는 국가대표에서 김단비가 수행했던 롤을 이어갈 수 있는 대형 포워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5명의 선수들에 비한다면 이해란은 가볍다. 클러치타임에 이해란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기가 많았던가? 경기를 끌고가는 데에는 분명 지대한 역할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놓고 싸우는 고비에서 이해란은 아직 더 성장해야 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생명의 시스템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한다. 

 

강이슬은 여전히 리그 최고의 슈터다. KB에서 최근 몇년간 정통 슈터와는 다른 롤을 소화하면서 다소 그 이미지가 흐려진 느낌도 있지만, 오히려 예전에 없던 무기를 장착했다. 돌파와 포스트업, 적극적인 리바운드와 수비에서의 성장이 돋보인다. "30대의 나이지만 늘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코트에서 결과로 증명하는 중이다. 강이슬이 센터 백업과 같은 불필요한 롤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특기인 3점슛에 더 집중하길 바라는 팬들도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KB의 김완수 감독 뿐 아니라 현장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슈터 강이슬보다 지금의 강이슬이 더 무섭다"고 입을 모은다.

 

FA 자격을 획득해 KB로 이적했을 당시의 강이슬은 박지수와 더불어 내외곽의 최강 원투펀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역할의 변화를 가져갔다. '허-강-박 트리오'에서 허예은과 박지수가 굳건히 자기 역할을 유지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박지수에 이은 2옵션'이라는 부분도 확신할 수 없게 됐다. 허예은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허예은의 볼 소유 시간이 길어지고 자율성이 늘어날수록 강이슬이 가져가는 공격 비중이 줄어들었다. 이미 박지수와 강이슬이라는 리그 최고 레벨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던 KB로서는 허예은만 올라서면 더욱 확실한 축을 만들 수 있기에 허예은의 성장에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희생을 한 것이 강이슬이다. 이는 김완수 감독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대문자 E 성향에 다소의 '관종끼'도 갖고 있는 강이슬이라면 이런 부분에서 상당한 충돌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강이슬은 의외로(?) 이러한 변화를 묵묵히 수행했다. 변화했고, 성장했고, 발전했다. 여전히 '강이슬의 수비'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선입견이다. 물론 강이슬이 WKBL 포워드의 표본이자 정석으로 언급되는 박정은(BNK 감독) 급의 수비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3점슛 통산 1,000개 성공이라는 무지막지한 기록과 경기 운영 능력까지 뛰어나 '포인트 포워드'라 불렸음에도 '진정한 강점은 수비'라고 찬사를 받았던 박정은의 현역 시절 수비력에 견주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강이슬에게 '수비가 약점인 선수'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걸 말하고자 한다.

 

비록 MVP는 허예은에게 내줬지만 챔프전 3경기에서의 공격 공헌도를 보자면 강이슬(95.85)이 1위다. 그런데 강이슬은 수비 공헌도에서도 1위(27.00)다. 2차전에서 악착같은 수비를 보여줬던 팀 동료 사카이 사라(26.50), 정규리그 우수 수비상을 수상한 삼성생명의 이해란(19.00)보다 높았다. 단순히 단기전의 활약이 아니다. 강이슬의 이번 시즌 수비 공헌도는 리그 전체 8위다. 김단비(우리은행), 이해란(삼성생명), 진안(하나은행), 김소니아(BNK), 박지수(KB), 박혜진(BNK), 이이지마 사키(하나은행)에 이어 강이슬이 올라있고, 9위와 10위는 신이슬(신한은행)과 허예은(KB)이다. 기간을 더 넓혀도 마찬가지다. 강이슬이 KB로 이적한 2021-22시즌 이후 5년 동안의 기록을 봐도 강이슬은 종합 5위, 평균 8위에 올라있다.

 

공헌도만 갖고 능력을 줄 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 언급된 선수 중 '수비가 약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강이슬이 유일하다. 선입견이다.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유망주로 입단했다가 갑자기 슈터로 역할이 바뀌었고, 고교 시절 빅맨 수비를 하던 상황에서 세로 수비보다 가로 수비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졌던 과거의 강이슬은 분명 수비가 약했고, 때로는 상대의 타겟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슛이 들어가지 않는 경기에서의 강이슬은 쓸모 없는 선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강이슬은 그렇지 않다. 6개의 3점슛을 모두 실패한 챔프전 2차전에서도 강이슬은 12점 10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상대에게 9개의 파울을 얻어냈고, 송윤하가 5반칙으로 물러난 이후 골밑을 지키며 배혜윤과 이해란의 공격을 막아섰다. 승부처에서 상대의 맥을 끊는 득점 또한 강이슬의 몫이었다. 시리즈의 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허예은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MVP의 주인공은 허예은이 됐지만, 누구보다 화려한 플레이어였던 강이슬은 기록에 잡히지 않는 부분에서도 든든하게 팀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좋은 활약을 펼쳤던 송윤하가 1차전에는 파울 트러블, 2차전에는 5반칙 퇴장을 당했음에도 KB가 페인트존에서 일방적인 열세에 놓이지 않은 것은 강이슬이 팀 내 최장신으로서 높이의 부분을 최대한 상쇄했기 때문이다. 득점에 조금 더 집중했던 3차전에서는 내외곽을 모두 공략하는 강이슬의 위력이 잘 드러났다. 리그 최고의 슈터인 강이슬이 얼마나 포스트업을 잘 하는지, 얼마나 페인트 존 공략에 능한지 보여준 경기다.

 

박지수와 함께 뛸 때도 강이슬의 위력은 그저 외곽 슛 하나에서만 가치를 보이는 게 아니다. 상대는 어떻게든 박지수를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지만 과거와 달리 안쪽이 비면 강이슬이 달려들어 그 공간을 채운다. 하나은행 시절 259경기에서 평균 4.0개의 리바운드를 잡았던 강이슬은 KB 이적 후 6.3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어시스트도 평균 3개를 넘어섰다. 이제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린다. 그렇다고 슈터의 위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역할이 바뀌면서 5번이나 1위를 차지했던 3점슛 야투율 부문에서 6위에 그쳤다고 볼 수도 있지만, 체력 소모가 이전보다 훨씬 심한 롤을 소화하며 상당히 많은 터프샷을 던지고 있음에도 그 적중률은 35.8%다. 여전히 리그에서 가장 많은 3점슛을 던지고 있고, 8년 연속 최다 3점슛 부문의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이미 이 부문에서 WKBL의 역사이며, 1번만 더 차지하면 10회 수상이 된다. 역대 WKBL 시상에서 한 부문을 10회 이상 수상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이미 통산 894개의 3점슛을 수상한 강이슬은 여전히 최고 슈터의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큰 이변이 없는 한, 2027-28시즌에는 변연하와 박정은을 넘어 역대 WKBL 최다 3점슛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지금의 강이슬은 육각형에 가까운 선수다. 공격에서는 여전히 에이스 롤에 모자람이 없으며 수비 역시 약점이라 할 수 없다. 어느새 30대에 접어들었지만, 활동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내외곽에서 체력 소모가 많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팀을 위한 희생도 기꺼이 마다하지 않았다. KB 외곽의 한 켠에 강이슬이 꾸준하게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기에, 상대는 허예은과 이채은의 외곽이 위력적임을 알면서도 온전히 수비로 덮을 수가 없다. 박지수-강이슬 라인에 대한 수비 무게를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슛이 안들어가거나, 수비 하나를 놓치면 폄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강이슬은 그 정도로 평가 될 선수가 아니다. 박지수가 아무리 부진해도 코트에 있는 것 만으로 위력을 가져가는 것처럼, 강이슬 역시 기록과 관계없이 존재 자체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다. 단순히 '최강 전력'을 넘어, KB가 보여준 다이내믹하고 화려했던 농구는 역할을 달리해 가며 헌신하고 희생하면서도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시간까지 코트를 지켜줬던 강이슬이 없었으면 완성되지 못했을 마스터 피스였다. 

 

박지수

챔프전 리뷰이기에 박지수에 대한 부분은 적을 것이 없다. 다만 KB의 챔프전 완승으로 인해 '박지수가 없으니 더 잘하는 것'이라는... 아주 종종 등장하는 소수 의견에 대해서는... 웃자고 쓴 글일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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