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문학사는 세익스피어와 단테가 나누어가졌다. 그 이상은 없다.
T.S. 엘리엇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 단테의 신곡이다. 비극과 희극으로 전해지는 인류사 최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헌정된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안타깝게 실존 인물로서의 정체성 논란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단테 알리기에리는 13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유럽 문예부흥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으로 추앙받고 있다. 피렌체 출신으로 성분부터가 이탈리아의 정치적 귀족이었던 단테는 비록 정적들에 의해 추방당하고 고국으로 부터 박해를 받았으며, 작품도 <신곡> 외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지만, 이 한 편으로 단테는 중세 유럽을 가늠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았고, 베아트리체에 대한 운명적 사랑과 연모로 자신의 사랑의 대상을 성녀로 표현한 로맨티스트로 기억되고도 있다.
중세 유럽의 문예사조에 큰 틀을 형성케한 <신곡>은 그러나 어린 학생들이 접하기에 익숙한 글은 아니다. 단테 역시 소설가라기 보다 시인이었으며, 신곡 역시 소설이 아닌 서사시다. 현재 전해지는 중세 이전 유럽의 소설들과 마찬가지인 형태다. 지옥-연옥-천국 으로 나누어 지는 단테의 <신곡>은 단테 본인이 연모의 대상이었던 베아트리체로부터 구원을 받아, 그가 동경했던 로마시대의 서사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부활절 전후 지옥과 연옥, 천국을 일주일 간 여행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설정 자체가 단순히 판타지의 느낌보다는 중세의 무거운 종교적 가치관을 깊게 지니고 있어 쉽지도, 가볍지도 않다. 다만 이 책의 경우에는 삽화와 현대어로 쉽게 구성하여 어린 학생들도 접근하기 용이하게 되어있다.
신곡을 처음 읽었던 것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미친듯이 읽었던 <주역>을 보기 직전인 11살 때였다. <주역>을 초등학교때 옥편 찾아가며 읽은 것도 넌센스였고, 예언은 개뿔, 머리만 어지럽히고 알 수 없는 방언에 휘둘려졌지만, <신곡> 역시 그 어렸던 나이에 어떤 이해로 받아들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삼국지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줬던것과 달리 단테의 신곡은 47년을 살며 10회 가까이를 정독해도 항상 전해지는 주파수가 일정하다는 느낌이다.
문학평론가 헤롤드 블룸은 단테의 삶에 대해 '신곡에 표현된 천국이나 연옥보다 지옥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정치 가문에서 태어나 결국 상대 당파에 의해 박해를 받고 고향과 조국에서 추방당한 삶에 대해 아름답게 미화할 수 있는 수단은 마땅치 않으리라 본다. 게다가 역사속에서 흠모와 로멘스의 이상으로 설정된 베아트르체와의 사랑 역시 일방적이었고 그녀가 생전에 단테를 인지했는지 조차도 의문인 것이 사실이라고 볼 때, 어쩌면 단테는 아름다운 로멘티스트보다 정신병적인 스토커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곡>을 접하면서 굳이 그런 배경까지 인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곡>은 내세를 바라보며 사후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 보다 그저 현재 내 삶의 위치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만약 내가 <신곡> 속의 단테처럼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할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어디서 단테를 만날 수 있을까? 헤롤드 블룸처럼 단테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제대로 연구하지는 못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사후세계에서, 그리고 단테가 기록한 사후의 기준이 동일하다면, 왠지 그를 악마가 넘쳐나는 지옥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치에 대한 주체와 기준은 단테가 아닌 내가 초점이다.
<신곡>이 내게 주는 궁극의 질문은 결국 그것이다. 단테는 자유로웠을까?
La Divina Commedia di Dante Alighieri (1321)
단테 알리기에리 Durante Alighieri
'fAntasize | 글 > oTaku' 카테고리의 다른 글
[冊] 다이고로야, 고마워 (0) | 2025.05.05 |
---|---|
[冊] 도쿄기담집 (0) | 2025.05.05 |
[冊] 자살가게 (0) | 2025.05.05 |
[영화] 불멸의 주체를 바꾼다 - 드라큘라 (1) | 2025.04.28 |
[GAME] FM은 과학이다... (21) | 2024.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