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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gIbberish

조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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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사를 배울 때 17세기를 '천재의 시대'라고 했다. 수학과 과학에 잼병인 나도 아는 만유인력의 기본을 구축한 과학자로 물리, 천문, 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근대 이론을 정립한 아이작 뉴턴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망원경과 온도계, 기압계가 만들어졌고, 시계가 상용화 됐다.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르네 데카르트와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이 시대를 살았고, 데카르트와 더불어 합리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바뤼흐 스피노자, 근대 정치를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토머스 홉스도 이때 등장했다. 아무튼 역사를 배울 때 이들이 대거 등장한 17세기는 '천재의 시대'라고 배웠다.

 

2.

누군가가 그랬다. 과거 인류가 이룬 1000년의 발전보다 최근 50년의 발전이 훨씬 더 파격이었다고... 따라서 우리는 지금 17세기를 '천재의 시대'라고 배우지만,  2-300년 이후 우리의 후손들은 17세기와 현재 중 언제를 더 '천재의 시대'라고 할 지 알 수 없다고... 뭐 자연과 지구 파괴의 속도 또한 인류 역사의 획을 그은 시대인 만큼 '멸망의 기원'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3.

격변이라는 단어가 크게 체감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삐삐를 거쳐 시티폰과 PCS를 지나,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전화와 인터넷을 하며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는 시대가 됐다. 인생을 살며 휴대용 전화의 탄생과 진화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보지 않았다. 분명 상상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물건이었는데 말이다.

 

컴퓨터라는 신통방통한 기계가 엄청난 일을 한다는 말도 안되는 공상과학의 영역을 재미로 보고 자랐는데, 최근 몇년 사이에 AI라는 녀석이 등장해서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사실 인터넷으로 몇 기가가 넘는 영상을 후딱 받아서 보는 것도 놀라워야 정상이다. PC 통신을 사용하던 대학생 시절, 몇 메가짜리 JPG 파일 하나를 받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걸 잊고 있었다.

 

 

4. 

혁명적인 발전을 주체적인 나라는 기준에서 바라보니 나를 제외한 다른 것들의 발전 혹은 도태만 눈에 들어온다. 기준이 내가 아닌 다른 것이라면 나는 발전의 영역에 포함될까, 아니면 도태의 영역일까?

 

웨이브(Wavve)에서 '닥터 후'를 시청할 수 있다. 무려 1963년부터 영국 BBC에서 시작한 시리즈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본 '닥터 후'는 군대를 전역한 후 한참 지나 직장에 다니고 있던 시절이니 2000년대 중반 이후였을 것이다.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내 기억이 맞으면 KBS에서 일요일 심야에 방송했는데, 월요일 출근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다만 그 결말이 어땠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봤다. 뭔가 과거를 추억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내용 자체가 재미었었던만큼 여전히 흥미로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뭔가 생각과 다르다. 빌리 파이퍼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로즈 타일러라는 극중 배역은 생각보다 짜증스러운 캐릭터다. 당시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20년이 지나면서 내가 무척이나 꼰대가 되었나보다. 그런데 무엇보다 적응이 안되는 것은 '조악하다'는 표현으로 담을 수 없는 특수효과들이다. 마치 우뢰매를 보는 기분이다... 

 

뭘까... 그때는 이런 생각을 전혀 안했던 것 같은데... 20년 사이에 발전을 거듭한 영상 문화에 확실하게 길들어서 아무렇지 않고 몰입하던 효과를 '조악하다'고 폄훼하고 있는 걸까? 1970년 이전에 나온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아직도 아름답게 느끼고 있는 걸 보면 '과거라서 촌스럽다'고 여기는 건 분명 아닐텐데... 어쩌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무한의 우주 속의 유한한 존재답게, 점점 조악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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