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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rEstoration

말 한마디에 더욱 신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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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어람(太平御覽)에 이르기를 ‘질병은 입을 좇아 들어가고, 화근은 입을 좇아 나온다’고 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말’을 앞세워 자신을 포장하다가 오히려 그 ‘말’에 발목을 잡혀 자신을 망치는 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불필요한 중언부언과 자가당착으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문제는 국민의 존경을 받고 국가를 대표해야 할 소위 ‘높으신 분’들도 이러한 대열에 주저 없이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부터 신중했어야 할 ‘말’
지난 9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이 통과되며, 역대 11번째 특검팀의 출범이 확정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일가가 내곡동에 사저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배임 및 부동산실명제 위반 등 불법적인 행위를 벌였는지에 관한 수사가 핵심이다.

지난 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그동안의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 이어 대통령 본인조차 의혹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는 내곡동 문제가 특검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특별검사제는 고위 공직자나 대통령 친인척 등 소위 ‘현대판 로얄 페밀리’의 비리 조사를 중립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독립된 권한의 특별검사가 수사하는 제도다. 1875년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이 개인비서 탈세혐의 수사를 목적으로 실시한 것이 기원이며 국내에서는 1978년 10월 벌어졌던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더욱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특별검사를 임명하던 과정에서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악법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이 무슨 말인가?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국가수반이 국가의 법에 의거한 일을 승인하면서 ‘악법’이라고 하다니...

헌법 69조에의 대통령 선서에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 합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당시 이러한 선서를 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 역시 대한민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인정받은 국민 대표다. 그런 대통령이 법에 대해 ‘악법’이라고 말을 한다면, 대한민국의 국민 중 그 누가 이 나라의 법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 나라를 당당히 法治國家라고 자랑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특검 임명과 관련하여 다소 불편함이 있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해도 이 나라의 국가수반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은 단어와 말의 선택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정치권은 물론 기업과 사회, 개인도 신중해야 할 선택
비단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박근혜 후보는 최근 과거사 인식과 관련하여 연일 뭇매를 맞고 있다. “과거는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며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던 박 후보는 여론의 시선이 차갑게 돌아서자 최근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적극적인 해명으로 행보를 바꿨다.

그런데 박 후보의 이번 과거사 논란과 관련하여 이어진 모든 문제는 박 후보 스스로가 해명을 위해 자청한 기자회견과 인터뷰에서 비롯되었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항간의 루머나 좋지 못한 평가를 위해 스스로 마련한 해명의 자리에서 논란을 키우고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위치에 걸 맞는 처신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물론 박 후보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화를 수습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그렇다고 언로를 아예 차단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라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통제가 안 되는 혀를 놀리는 것에 더욱 신중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인 문재인 후보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 논란과 관련하여 진통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이 공세 수위를 높이고 민주통합당이 이에 대해 반론을 펴고 있지만 막상 지목 당사자인 문재인 후보는 적극적인 해명이 없다. 논쟁에 휘말려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표류하는 것 보다는 침묵이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에게 주어진 심각한 질문이라면 스스로가 당당히 의사를 밝혀야 한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은 상황을 판단하여 하고 안하고를 결정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자신의 진의가 왜곡되지 않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또한 거짓도 없어야 한다. 메스컴 앞에서 당당함을 외치다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고개 숙였던 정재계 고위층의 모습에 국민은 이미 충분히 신물이 나있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입을 열어 말을 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필요한 가를 가르쳐주는 성어다. 물론 충분한 고민 끝에 결정하여 꺼낸 말일 것이다. 국가 경영에 임하는 이들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그리 경솔하게 설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생각이 너무 길어 말을 하지 않는 것도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이는 정치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와 기업, 그리고 일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번지르르한 말만 앞세워 성과도 없이 미리 자신의 주장만 내뱉어 조직을 어지럽히고 균열과 분열을 조장하며 공멸을 길을 만드는 이들은 각 구성체의 요직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또한 적시에 자신의 의견과 판단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이들도 리더의 자격에 부합되지 못한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이었던 사아디(Sa'adi)는 자신의 대표작인 굴리스탄(Gulistān)에서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말이란 인간의 특권과 존엄함을 증거 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인간다움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사람은 말에 대해 권리와 의무를 함께 가져야 한다.

웅변의 매력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그러한 웅변을 위해 단어 하나, 말 한 마디를 진중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먼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저널21 / 2012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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