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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던 홍명보 감독이 결국 사임했다. 월드컵을 마치고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비롯한 대한축구협회의 유임 결정으로 원래 임기인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기로 했던 홍 감독은 최근 불거진 성남 분당의 땅 투기 의혹 등 개인적인 문제까지 제기되자 결국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선수시절 국가대표로 A매치 136경기에 출장하며 국내 최다 기록을 갖고 있는 홍 감독은 은퇴 후 지난 2005년, 독일 월드컵 대표팀 코치를 맡은 후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을 진두지휘하는 등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지난 해 6월, 월드컵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과 최종 대표 명단과 관련한 이른바 ‘의리 엔트리 논란’ 등이 불거졌고, 결국 각종 논란 속에 스스로 자리를 물러나게 됐다. 또한, 이 기간 동안 홍 감독과 관련하여 숱한 논란과 과거 이야기들까지 조명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를 위한다’는 대의명분하에 이루어진 홍 감독에 대한 여론의 마녀사냥이 과연 어떠한 가치가 있었을까?
홍명보의 지도자 입성
2004년 미국 MLS의 LA
갤럭시에서 선수 은퇴를 결정한 홍명보 감독은 향후 진로에 대해 ‘축구 행정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재단법인 홍명보장학재단’을 운영하며,
유학 생활을 병행했고 지도자와는 별개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돌연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2005년,
대표팀에 합류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축협과 홍 감독의 야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축협의 이사로 있던 홍 감독은 코치직 선임을 마다하기 위해 수없이 고사하고 자리를 피했다. 당시 홍 감독을 코치로 원했던 것은 딕 아드보카트 신임 감독과 함께 대표팀을
맡게 됐던 핌 베어벡 수석코치와 압신 고트비 코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주장이었던 홍 감독의 역할을 인상 깊게 보았던 베어벡 코치와
고트비 코치는 2002년 4강 신화를 이룬 맴버 중 한 명이 아닌
‘특정인 홍명보’를 지명하여 코치로 대표팀에 합류시켜 줄 것을 협회에 강력히 요청했다.
홍 감독은 당시 여러 이유를 들며 고사했지만, 협회는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이 수원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진행됐던 홍명보어린이축구교실 창단식에 직접 참석하여 설득하는 등 홍 감독의 합류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홍명보장학재단의 지인들은 모두 홍 감독의 코치 합류를
만류했다. 홍 감독이 지도자로 나설 경우 선수 시절 이룬 성과와 명예를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협회와 대표팀의 요청이 꾸준히 이어지자,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아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욕을 먹어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먹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홍 감독은 당시 대표팀에 합류했다.
지도자 홍명보의 발자취
이후 홍 감독은 아시안컵과 올림픽 대표팀 코치,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런던 올림픽 감독 등을 거쳤다. 일련의 대회들을 통해 홍 감독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회도 있었다.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하고,
조 2위로 16강에 올라,
파라과이를 3-0으로 제압했다. 비록 8강에서 가나에게 덜미를 잡혔지만, 가나는 당시 대회의 우승팀이었다. 또한 대표팀은 가나와의 경기에서 2-3으로 접전을 펼치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 대표팀은 물론 홍 감독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목표로 했던 금메달에
실패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4강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종료 1분을 남기고 골키퍼를 교체하자마자 결승골을 허용하며 패해, 감독의 경험 부족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1-3으로 지던 경기를 따라잡고, 종료 직전 지동원의 연속골로 4-3 역전승으로 이끌며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사상 첫 메달 획득의 쾌거를
이룩했다.
조별리그를 1승 2무로 통과한 대표팀은 8강전에서 개최국 영국 대표팀을 승부차기 끝에 꺾고 4강에 올랐다.
비록 브라질에게 0-3으로 패하며 결승행에는
실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만난 일본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축구 종목 사상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여론의 홍명보 사냥, 무엇이 문제일까?
2012년 8월 10일,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과 환호하던 홍 감독을 다시 한 번 부각 시키고, ‘홍명보 리더십’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던 여론들은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같은 내용을 ‘의리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바닥으로 내쳤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① ‘의리 엔트리’
논란
홍 감독의 대표 선발 명단에서 K리그 선수들의 수가 적다는
부분과 과거 청소년 대표와 런던 올림픽 대표 출신이 과반을 차지한다는 부분으로 인해 ‘의리’
논란이 일었다. 이는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홍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을 맡은 시기가 언제였는지를
확인할 필요도 있다.
홍 감독은 지난 해 6월 24일,
감독에 취임했다. 월드컵 개막까지 1년도 안남은 시점에 감독에 취임했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준비하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홍 감독이 이번 대표팀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부분은 4-2-3-1
포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전술 외의 플랜B가 없었다는
점이고, 자신의 전술에 원톱으로 가장 특화되었던 박주영 외의 활용
선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컸다. 그러나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도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완벽한 팀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독일을 이끌고 있는 요하힘 뢰브 감독은 2006년 7월부터 8년째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A대표팀에 합류한 것은 2004년 8월이다.
거의 10년째 대표팀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 역시 스위스 대표팀을 2008년부터
6년째 이끌었다. 우리와 같은 조의 벨기에 마르크 빌모츠 감독은 2012년에 감독에 부임했지만 2009년부터 A팀 코치였다.
반면 세계적인 명장인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러시아 대표팀을 맡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에 대표팀의 변화를 이끄는 데는 실패했다.
어떤 감독에게나 팀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02년 4강 신화에도 히딩크 감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속에는 합숙 훈련을 통한 오랜 시간의 훈련이 준비되어 있었고, 충분한 실험이
가능했다.
게다가 2002년 월드컵 당시처럼 이제는 모든 팀들이 월드컵을
위해 국가대표팀에 전폭적이고 헌신적으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2006년 월드컵 때만 하더라도 대표선수 소집과 관련하여,
소집 당일 오전에 소속팀 감독이 일부러 해당 선수들을 새벽 훈련을 시켰다는 논란까지 일기도 했었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양한 전술과 실험을 충분히 하지 못한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가장 익숙한 선수들을 선택하는 방법밖에
없다. 논란이 된 박주영은 2012년에도 논란의 중심이었지만 결국 동메달 결정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이번에도 대표 복귀전이었던 평가전에서 골을 터뜨렸다.
만약 홍 감독이 ‘의리’에만 집중을 했다면, 자신의 장학재단 장학생 출신인 김민우를 끝내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제외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 감독이 2009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맡기 전부터 기대를 나타내며 가장 관심을 두었던
공격수는 조영철이었다. 박주영보다 오히려 ‘학연’
논란에 시달린 것은 박희성이었다. 그러나 홍 감독은 결정의
순간에 ‘옛 정’과 ‘의리’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감독 취임 당시 공언했던 것처럼 홍 감독 역시 더 많은 선수를 보고 확인하여 다양한 부분을 실험하고 폭넓은 기용을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영과 김진수의 발탁과 같은 성과도 분명 있었다. (물론 김진수는 최종 명단에서는 부상으로 제외됐다.)
개인적으로 홍 감독의 이번 대표팀 명단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이번 명단이 ‘의리’에 맞춰졌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번 대표팀 명단은 홍 감독의 ‘신뢰’에 맞춰졌으며,
그것은 감독의 당연한 결정이다. 홍 감독은 이전 런던
올림픽때도 그렇게 했고, 그때는 결과가 뒷받침되자 ‘영웅 대접’이 이어졌으며,
이번에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비난을 받게 됐다.
홍 감독은 선수 선발과 관련하여 자신의 원칙을 공개적으로 너무
자세하게 설명했고, 이것이 결국 자신을 구속하는 결과가 됐다. 지금까지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던 감독 중에 자신이 선발할 선수의 기준에 대해
홍 감독처럼 자세하게 말한 감독도 없었고, 준비 기간이 짧았던 감독도
없었다. 홍 감독은 자신이 말한 기준으로 선수들을 판별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고 결국 제한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월드컵에 나서는 감독이 자신이 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맴버 대신 친분에 의존한다고 색안경을 끼는 것이 더 문제다.
② 대표팀의 '투지' 논란
가장 많은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대표팀의 경기력 문제가
집중된 것은 알제리 전이었다. 정확히는 실점이 집중됐던 전반 26분부터 15분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외의 경기에서 ‘홍명보호’의 대표팀이 투지를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보여 온 대표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러시아와의 경기에서도 대표팀의 경기력은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플레이가 예상보다 날카롭지 않았고, 이로 인해
우리 수비는 어느 정도 버텨냈지만 공격에서는 오히려 제대로 된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근호의 슛이 행운의 골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지 모르는
경기였다. 그러나 러시아 전에 대한 특별한 비난은 없었다. 승점을 얻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던 경기에서 비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제리 전은 달랐다. 물론 준비부터 지고 들어간
경기였다. 전술에서도 패했고, 첫 골 이후 집중력이 무너지며 완패했다. 전반 중반 이후 선수들의 모습에서 투지와 이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후반 들어 선수들은 만회를 위한 노력을 했고,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도 분명 최선을 다했다. 대표팀이
투지에서 아쉬움을 보인 것은 알제리 전에서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15분이 이번 월드컵에 나선 대표팀의 전체를 대변하는 상황이 됐다.
FIFA랭킹 57위,
본선 참가 32개국 중 31위인 것이 우리나라의 객관적인 지표다. 16강에 오를 확률 자체가 낮은 것이 현실이었다. 엄밀히 1무 2패의 성적은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능력만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 중 절반 이상은 16강에 갈 수 있다고
믿었고, 심지어 8강까지 기대한 이들도 상당했다는 설문 조사도 있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4년에 한 번씩 밤잠 설치며 애국심을
불태우고, 근거 없는 자신감과 맹신으로 관전한 월드컵에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는 군중 심리가 마녀사냥을 나서며 그 명분으로 ‘결과가 아닌 투지’를 내걸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져서 화가 난다"고 말하기 부끄러우니까 "투지가 없어서 화가 난다"라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대표팀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도 알제리에게 12분 동안 3골을 내줬지만,
브라질도 독일에게 5분 동안 4골을 내줬다.
그것이 축구다.
③ 98년에는 독박!
이번에는 왜?
협회가 우선적으로 홍 감독의 유임을 결정하자 심지어 1998년에는 당시 차범근 감독에게 책임을 지웠으면서 이번에는 왜 그러지 않냐는
말까지 나왔다. 얼마나 여론이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은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5로 패한 뒤, 우리나라가 2패로 16강이 좌절되자 경질됐다. 그러나 직접적인 경질 이유는 패배 때문이 아니었다.
“16강이 좌절된 만큼 마지막 벨기에 전은 어린 선수들 위주로
구성해 다음 대회를 준비하겠다”고 발언했다가, 월드컵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국민 정서에 위배된다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희생됐다.
뒤집어 보건데 당시 차범근 감독의 생각은 잘못된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월드컵은 경험을 위한 대회가 아니다”라는 말도 진리인 양 판에 박아야 할 이유도 없다. 아울러 당시 차범근 감독의 경질은 축협의 대표적인 실정(失政)이었다.
과거의 잘못을 다시 답습하라는 것인가?
이 후에는 ‘땅 투기’ 설을 거론하며 ‘직무유기’를 거론했고,
선수들과의 회식자리 영상과 사진유포를 통해 자격 논란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월드컵 경기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냥 맘에 들지 않는 홍명보를 몰아내기 위한 이유를 찾겠다고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홍 감독이 자진 사퇴를 발표하는 날까지도 이런 흐름은 계속됐다.
벨기에전 이후 선수들에게 개별적으로 이구아수 폭포 관광이 허락됐고,
협회가 기자들에게도 이 같은 일정을 공식적으로 공지했음을 브라질 현지 취재 기자들이 증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심지어 평소 축구에 관심도 보이지 않던 매체들이 앞 다투어 포털 조회수 올리기에 나서며 이슈를 부풀리자, “축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던 축구 팬들이 이러한 보도를 퍼나르며 홍 감독을 공격하는 우스운
모습까지 형성했다.
책임이 필요한 이유를 찾아라
목표에 이르지 못한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 책임를 따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책임을 분명히 하는 이유는 더
나은 결과와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이지 단순히 누군가를 모욕하고 벌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번 월드컵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음 대회의 성공과 한국 축구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6강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 규명이 필요한 것이다.
축구 대표팀에게 가장 큰 대회가 월드컵인데도 불구하고 홍 감독의 임기를 아시안컵까지로 한 것은 오랫동안 아시안컵에서 성적을 올리지
못하며 탑시드를 배정받지 못하고, FIFA 랭킹이 떨어지며, 우리 축구의 위상과 경쟁력이 추락한다는 위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년 1월에 호주에서 펼쳐지는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은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집중해야 한다. 1960년 이후 54년간 우승하지 못했고, 심지어 1988년 이후에는 26년간 결승에도 올라보지 못한 무대에서 우승 외의 성적은 성과라고도 인정하지
않는 눈높이를 갖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새롭게 감독이 선임되고 대표팀이 소집되면 준비기간은 길어야 4개월이다.
해외의 어떤 명장을 데려다놔도 성적을 내라고 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답 밖에 나올 수 없는 시간이다. 국내 지도자를 찾아도
마찬가지다. 현재 현역이 아닌 지도자가 선임되면 한껏 눈이 높아진
팬들은 저명한 외국 감독의 이름을 거론하며 무능한 협회의 수준을 탓할 것이다.
반면, K리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팀의 사령탑을
임명하면 해당 팀 팬들의 반발이 강력하게 이어질 것이다. 결국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홍 감독을 경질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2015년 아시안컵을 포기한 것이다. 홍 감독이 2015년 아시안컵의 성적을 보장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최선의 카드였다.
적어도 홍 감독이 지도자로서 걸어온 그간의 과정을 볼 때, 홍 감독은 자신이 실패를 채워가며 발전하고 있는 감독이었고, 월드컵에서 실패한 경험을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의 자양분으로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회조차 거부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후의 대안도 없으면서 그러한 결정으로 상황을 내몰았다는
것이다.
후임 감독은 이제부터 선임해야 한다. 모든 것은
제로베이스다. 정녕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걱정한 이들이었다면, 월드컵에서의 결과가 마뜩치 않았더라도 “아시안컵 이후 평가한다”라는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했다.
무능한 축협의 환골탈태는 필수
이 모든 문제의 중심은 결국 협회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감독을 3번이나 바꾸고 숱한 잡음 속에 교통정리도 제대로 못했던 협회는
주관을 지키든, 능력을 키우든, 무엇 하나라도 강점이라는 것을 갖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사의를 표명한 홍 감독의 유임을 결정했다면 협회는 여론의 어떠한 마녀사냥에도 홍 감독을 지키는 힘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무능했다.
정치세력과 다를 바 없이 여론의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었고,
홍 감독 혼자 날 선 비난과 인신공격에 노출됐다. 지킬
자신이 없었다면, 홍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을 때 놓아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들 스스로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던 홍 감독을 마치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투기꾼처럼 물러나게 만들고
말았다.
2002년 월드컵 4강 위업과 2012년 올림픽 동메달로 ‘축구인 홍명보’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던 ‘차붐’을 1998년,
실패한 지도자로 낙인찍었던 여론은 올림픽 첫 메달을 이끌었던 감독을 2년도 안되어 다시 바닥으로 내쳤다. 지금 우리에게 또 하나의 축구 대체자의 이름인 박지성도 10년 후에는 어떻게 버려질지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가 ‘월드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지만,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경험을 갖는 것 만큼 의미가 있는 것은 없다.
2002년 4강의 위업 역시 숱한 월드컵에서 '도전과
실패'라는 경험이 만들어 낸 선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월드컵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을 우리 선수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분명히 증명했다.
현재 한국 축구의 실력이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인지.
그리고 한국 축구를 바라보고 있는 팬들의 눈높이와 그것을 수용하고 인식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이다. 또한 4년마다 돌림병처럼 창궐했다가 사라지는 애국성 월드컵 전염병의 열기가 얼마나
광적이고 단편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이다.
“이 엿 먹어야 하는 건가요?”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대표팀 막내였던 손흥민이 했던 그 말을 이제는 이 모든 흐름의 여론에게 똑같이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토요경제 / 2014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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