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금융 2025-2026 여자프로농구가 개막했다. 첫 두 경기에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던 '2약'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선을 보였다. 신한은행은 이번 시즌 타이틀스폰서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BNK의 홈 개막전 상대였고, 하나은행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이자, 2012-13시즌 이후 2위 아래로는 떨어진 적 없는 강호 우리은행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홈 개막전을 치렀다. 두 팀 모두 전반에 선전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신한은행은 후반 고비를 넘지 못했고, 하나은행은 충격적인 결과를 선사했다.
1. 변수에 대한 준비가 불가능했던 신한은행
BNK 65(11-15 21-12 20-11 13-16)54 신한은행
김소니아 14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
김정은 14점 5리바운드
안혜지 10점 5어시스트(이상 BNK)
신이슬 17점 - 3점슛 3/6
홍유순 14점 4리바운드(이상 신한은행)
(1) 경기 리뷰
비시즌에 연습경기를 치르지만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전은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다. 그래서 경기 초반에 뻑뻑한 흐름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공식 개막전이었던 이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양 팀 모두 출발이 좋지 않았다. 먼저 흐름을 잡은 쪽은 신한은행이었다.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신인왕' 홍유순이 1쿼터에만 6점을 득점했고, 수비에서의 성과를 통해 BNK의 공격을 제어했다. 신한은행이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지난 시즌, 정상에 오른 경험이 있던 BNK는 무너지지 않았다. 신한은행이 더 좋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달아나지 못했던 이유는 앞서가던 초반부터 승부처까지 꾸준히 존재했다.
우선은 리바운드다. 슛이 듣지 않을 때는 리바운드가 더 중요해 지는 건 당연하다. BNK는 센터 포지션이 확실하게 잡혀있는 팀이 아니다. 그리고 수비와 궂은일을 전담하며 우승의 기틀을 확실하게 마련했던 주역 중 하나인 '아시아 쿼터' 이이지마 사키가 떠났다. 안혜지-이소희-박혜진-김소니아의 확실한 라인업 외에 비어있던 한 자리의 선발은 박성진이 차지했지만 특별한 위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변소정과 김정은이 잇따라 투입됐지만 이들은 리바운드 경쟁에서 그다지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1쿼터, 신한은행은 코트를 밟은 7명 중 6명이 리바운드에 가담한 반면, BNK는 김소니아와 이소희가 각각 1개씩의 리바운드를 잡았다. 그런데 박혜진이 혼자 8개의 리바운드를 건져냈다.
신이슬의 3점슛이 성공했고, 홍유순을 앞세워 인사이드 득점도 더 안정적이었던 신한은행에게 리바운드 싸움에서 밀렸다면 BNK의 출발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 18년차에 MVP만 8회 수상(정규리그 5회, 챔프전 3회)했던 박혜진은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무엇을 해야하는 지 가장 잘 아는 선수다. 박혜진이 1쿼터에만 8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면서 BNK는 신한은행에게 경기 흐름을 내주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쿼터. 주인공은 김정은이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신한은행은 김소니아, 박혜진, 이소희 등, BNK의 주력 선수들에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확실한 4명의 베스트 라인업을 제외한 플러스 알파 영역에 존재하던 선수들에 대해서는 맞춤 수비를 준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팀이 이기려면, 이 영역의 선수에 대해서는 코트 위에서 조금 더 경험 있던 선수들이 개인 능력으로 제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변수'였던 BNK의 김정은이 너무 독보적으로 튀어 올랐다. 3점슛 2개 포함, 2쿼터에만 10점을 득점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김정은이 득점을 주도한 가운데 김소니아의 득점도 이어졌다. BNK는 안혜지와 이소희가 2쿼터에 상당한 시간을 뛰면서 무득점(심지어 슛 시도조차 각각 1개)을 기록했음에도 흐름을 뺏어왔다. 32-27로 BNK가 열세를 뒤집었다.
승부처는 3쿼터였다. 전반에 양 팀의 균형이 크게 무너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후반의 시작은 경기 결과를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점수를 따라잡기도 하는 남자 농구와 달리 여자 농구는 박빙의 승부에서 3쿼터 초반에 흐트러지면 경기력을 다시 수습하기가 쉽지 않다.
신한은행은 신이슬과 최이샘의 연속 득점으로 3점차까지 추격했다. 그런데 안혜지의 득점으로 도망간 BNK는 다음 수비에서 박혜진이 스틸에 이은 속공 상황을 과감한 3점슛으로 마무리하며 39-31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돌아볼 때 이 경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급해진 신한은행은 효과적인 공격작업을 펼치지 못했다. 치외샘, 김지영, 고나연, 김진영이 연달아 3점슛을 노렸지만 모두 불발됐다. 이 사이 BNK는 김소니아와 안혜지의 득점이 이어지며 12점차를 만들었다. 기어이 신이슬의 3점슛이 통했지만, BNK는 이소희가 3점슛으로 맞받았다.
이 경기, 전반의 흐름을 주도한 것은 양 팀의 어린 선수들이었다. 2005년 생 김정은(BNK)과 홍유순(신한은행)이 10점을 올리며 양 팀의 최다 득점자였다. 박정은 감독은 전반을 마친 후 사이드라인 인터뷰에서 스피드를 활용한 홍유순의 공격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신한은행 역시 김정은에 대한 수비를 하프타임 때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3쿼터를 결정한 것은 어린 선수들이 아니었다. 결국 '해줘야 하는 선수들'의 역할에서 명암이 갈렸다.
박성진의 3쿼터 첫 득점 이후, BNK는 안혜지-박혜진-김소니아에 이어 이소희의 3점슛까지 터졌다. 기존의 베스트라인업들이 정상적으로 터진 것이다. 반면, 신한은행은 베스트라인업 싸움에서 밀렸다. 기존의 선배라인이 터진 BNK는 10+ 득점을 잡은 이후 김정은과 변소정의 득점이 이어지며 16점차를 만든다. 사실상 승부가 결정된 지점이다. 베스트 라인업이 터지면서 백업 영역의 선수들을 막아낼 여력이 신한은행에는 없었다. 반면, 신지현과 최이샘의 공격이 터지지 않은 상황이 되니 BNK는 전반에 활약했던 홍유순을 제어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홍유순은 승부처였던 3쿼터에 무득점으로 묶였다. 신이슬이 후반 14점(3쿼터 7점, 4쿼터 7점)을 집중시켰지만 다른 선수들의 득점이 제어된 상황이었기에 BNK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최대 18점차까지 벌어졌던 4쿼터에서 상황이 바뀔 여지는 없다고 봐도 되는 상황. 그렇게 BNK가 경기를 가져갔다.

(2) 지향점과 지속 가능성
신한은행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최윤아 감독이 언급했던 투지와 에너지, 적극성에 관한 부분을 보여줬다. 2쿼터에 김정은에게 맹폭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반에는 어느 정도 경쟁력이 유지됐다. 하지만 3쿼터 승부처에서 흐름이 바뀌자, 전반의 기세와 에너지가 증발했다. 지향점은 확실했지만 초반에 나타났던 그 부분이 경기 내내 지속되지는 못했다.
지난 번 글에도 지적했던 신한은행의 3무(無)와 관련된 사항이다. 신한은행에 없는 3가지, '에이스' '리딩 가드' 그리고 '미친 선수'의 약점이다. 매 상황마다 벤치가 끊어가면서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 경기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흐름이 넘어갈 것 같으면 그걸 잡아주고 정리해주는 선수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신한은행은 이런 포인트에서 역할을 해줘야 하는 에이스가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이 역할을 신지현과 최이샘아 맡아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확신의 영역에 들어서지 못했다. 신지현과 최이샘은 모두 17분 정도를 소화했고, 7점을 합작하는데 그쳤다. 두 선수 모두 부상 등의 문제로 비시즌 준비가 완전치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컨디션이 올라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확실한 주전 센터이자 골밑 핵심 자원으로 준비하던 미마 루이가 발목 부상으로 빠진 것도 참작해야 한다. 하지만 신지현과 최이샘은 지난 시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신지현은 지난 시즌 30경기에서 평균 28분 45초를 뛰며 8.6점 3.1리바운드 4.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최이샘은 작년에도 부상으로 17깅기만 뛰었고 평균 26분 55초를 소화하며 8.3점 5.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신지현은 4년 연속 이어가던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이 깨졌고, 최이샘도 2020년 이후 최저 득점을 기록한 시즌이다. 두 선수 모두 이적 첫 해였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성공적이지 못한 이적 첫 시즌을 보내고 비시즌 훈련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게 핵심 자원 역할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년 이후를 바라본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만 놓고 보면 신한은행에게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다. 정상 전력이어도 경쟁력이 높은 편은 아니기에, 초반 연패를 당하거나 순위 경쟁에서 밀리면, 추후에 전력이 정비되도 4위권으로 반등하기가 쉽지 않다. 정돈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의 승률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에이스 롤을 수행해야 하는 선수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가운데, 근성과 분위기, 에너지 등으로 흐름을 깨뜨릴 수 있는 '미친 선수'도 보이지 않는다. '레알 신한은행'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신한은행에는 꾸준히 이 역할을 하는 선수가 있었다. 그 역할을 병행하는 에이스가 존재했다. 확실한 구심점이다. 그런데 지난 시즌부터 신한은행은 그런 존재가 없는 농구를 하고 있다. 포지션으로 봤을 때는 혼란을 정리해줘야 하는 건 결국 가드의 몫인데 이 자리도 안정적이지 않다. 가용인원도 충분치 않다. 홍유순과 신이슬은 4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시즌 첫 경기라 큰 무리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신한은행은 미마 루이의 복귀가 급선무이고, 신지현과 최이샘이 최소 25분 이상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야 한다.

(3) 사키의 공백을 극복했나?
BNK는 고무적인 개막전을 치렀다. 1쿼터가 불만이었지만, 시즌 첫 경기였음을 고려하면 개막전의 낯가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김소니아가 매 쿼터 꾸준하게 득점을 올려줬고 베테랑 박혜진(7점 11리바운드 3어시스트 5스틸 2블록)이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김정은이 맹활약하며, 이이지마 사키의 대체자로 부각됐지만 플레이만 놓고 봤을 때, 사키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박혜진이였다. 궂은일을 하면서 핵심 선수들의 장점을 살렸고, 중요한 순간에는 득점을 올렸다. 경기 시작 후 공백이 길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의 첫 득점, BNK가 본격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던 3쿼터 스틸에 이은 속공 3점슛 등 필요할 때는 확실히 득점도 올렸다. 문제는 박혜진이 이런 활약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느냐다. 지난 시즌 BNK에서 9.6점 5.3리바운드를 기록했던 사키는 30경기를 모두 소화했고, 평균 33분 47초를 버텼다. 반면 WKBL을 대표하는 금강불괴였던 박혜진은 이제 부상으로 인한 결장 리스크가 따라다니는 상황이다. 지난 두 시즌 동안 60경기 중 22경기에 결장했다. 일단 개막전이에서는 31분은 안정적으로 뛰었다. 박혜진의 기량이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확연히 내리막이라 지적하는 시선도 있지만, 박혜진은 박혜진이다. 승부처 운영 능력과 클러치 타임의 존재감, 혼전인 상황을 정리하는 능력은 여전히 탁월하며, 앞선에서의 수비 능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개막전에서 궂은일에 집중하며 스스로 그림자 영역의 역할도 무리없이 소화한 박혜진이 시즌 내내 꾸준히 뛸 수 있느냐가 BNK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BNK는 안혜지-박혜진-이소희-김소니아의 구성은 튼실한 팀이다. 베스트 라인업에서의 한 자리, 그리고 빅맨의 고민이 존재한다. 박정은 감독이 선발로 선택한 카드는 박성진(2점 2리바운드)이었지만, 그렇게 만족스러운 첫 경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정은이 맹활약하면서 개막전의 부담은 털어냈다. 김정은은 이미 두 시즌 전부터 박정은 감독이 김민아와 더불어 상당히 기대를 했던 선수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인해 거의 활약이 없었지만 충분히 지켜볼 가치가 있는 선수다. 다만 확실하게 전력의 핵심 축으로 올라섰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개막전에서의 활약은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안정적인 모습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김정은, 변소정, 박성진,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김도연까지 BNK는 선수 구성 상 플러스 알파가 되는 자리에 대한 고민을 당분간 계속할 것이다. 적어도 한 라운드는 지켜봐야 김정은의 활용도가 지속적일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확실하게 BNK의 인사이드를 공략할 수 있는 옵션을 갖고 있는 팀이 아니라면 BNK를 상대로는 이번 시즌에도 상당한 고전이 예상된다.
2. 비시즌의 조짐을 증명한 하나은행
하나은행 66(15-12 11-4 24-10 16-19)45 우리은행
박소희 14점 8리바운드
이이지마 사키 11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
진안 10점 6리바운드(이상 하나은행)
김단비 16점 13리바운드 3블록
이민지 11점 2블록(이상 우리은행)
(1) 경기 리뷰
하나은행의 완승이었다. 안방에서 우리은행에게 27연패를 기록 중이었던 하나은행은 2016년 2월 13일 이후 3566일(9년 9개월 11일) 만에 홈에서 우리은행을 잡았다.
전체적으로 하나은행은 2012-13시즌의 우리은행처럼 보였다. 경기 내내 풀코트 압박을 펼쳤던 당시의 우리은행과는 차이가 있지만 꾸준하게 올라붙으면서 상대를 괴롭히는 농구를 펼쳤고, 우리은행이 이를 떨쳐내지 못하면 2쿼터부터 하나은행의 우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수비로 김단비를 묶은 것이 매우 컸다. 김단비는 전반에 18분을 뛰면서 4점에 그쳤다. 팀 동료들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김단비지만 어시스트도 1개였다. 리그에서 가장 공인된 무기 중 하나인 김단비의 드라이브인을 어린 박진영이 블록으로 저지하는 장면은 이날 경기에서 우리은행의 답답함을 보여준다.
하나은행은 적극적으로 부딪치며 우리은행의 공격을 저지했고, 우리은행은 이민지가 전반에만 9점을 넣었지만 하나은행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김단비의 득점과 김단비에서 파생되는 공격 효과가 제어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은행의 외곽이 터지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은행에게 매우 고무적인 부분이었다. 우리은행은 외국인 선수 제도가 중단된 이후 박지수가 버티는 KB를 무너뜨리기 위해 외곽의 위력을 키워왔다. 지난 시즌에도 가장 많은 3점슛을 시도한 팀이 우리은행이다. 그런데, 이날 우리은행은 전반에 13개를 던져 1개를 성공하는데 그쳤다. 이명관이 철저히 묶였다. 이명관이 김단비와 더불어 원투펀치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대 수비에 흔들림을 줄 수 있는 한방을 만들어줘야 하는 선수임에도 공격에서의 역할이 나타나지 않았다. 전반 무득점보다 더 컸던 것은 슛 시도 자체가 1개 뿐이었다는 부분이다.
하나은행이 전반을 26-16으로 앞섰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정도 차이를 뒤집는 것은 우리은행이 지난 10여년 동안 수없이 보여줬던 장면이다. 반면, 이 정도 리드를 까먹는 것 역시 하나은행이 자주 보여줬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경기 또한 3쿼터 초반의 흐름에서 승부가 결정났다. 하나은행은 센터가 없는 우리은행의 골밑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이이지마 사키와 진안이 먼저 득점을 가져갔다. 안쪽이 뚫린 우리은행을 상대로 정예림과 정현의 3점슛도 터졌다. 3쿼터 시작 4분 만에 더블스코어가 됐다. 우리은행은 심성영의 3점슛이 터지기 전까지 3쿼터 시작 후 4분여 동안 필드골 야투를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리바운드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흐름이 기울어졌다. 높이와 상관없이,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몸싸움을 펼치고 리바운드 경쟁에 달려드는 팀이 우리은행이다.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이는 우리은행이 자랑하는 팀컬러가 됐다. 박지수를 상대하는 KB와의 경기에서 우리은행은 전투와도 가까운 몸싸움과 악바리같은 리바운드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는 49-32로 리바운드 싸움 자체를 하나은행이 압도했다. 5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은 선수가 우리은행은 김단비(13개)와 김예진(5개) 뿐이었던 반면, 하나은행은 6명이 5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가져갔다.
고비마다 터진 3점슛도 하나은행의 승리를 만든 요인이다. 하나은행은 우리은행보다 더 높은 외곽 결정력을 자랑했고, 4명이 2개의 3점슛을 터뜨리며 우리은행의 수비를 괴롭혔다. 김단비는 고립됐고, 지난 시즌 내내 김단비의 오른팔이었던 이명관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하나은행이 66-45, 21점차의 대승을 거뒀다. 그나마 더 어린 선수들이 들어오고 긴장감이 사라진 4쿼터 막판에 몇 점을 더 좁힌 것이고, 한때 32점차까지 벌어졌던 엄청난 결과였다.

(2) 기록
이날 승리는 하나은행 창단 후, 개막전 최고의 성과다. 하나은행은 '하나외환'이라는 이름으로 2012-13시즌부터 WKBL에 참가했다. 해체한 신세계 쿨캣의 선수단을 인수받았지만 재창단 형태로 리그에 입성했기에, 신세계의 역사를 이어받지는 않는다. 하나은행의 역대 개막전 성적은 2승 11패. 시작부터 험난한 길을 걸었고, 함께 하위권 대결을 펼쳤던 BNK(KDB 포함) 외에는 이겨본 적이 없다. 승리한 두 경기도 모두 신승이었다. 그런데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인을 상대로 21점차의 대승을 거뒀다. 창단 후 개막전 3번째 승리이며, 가장 큰 승리다.
| ▲ 하나은행 역대 개막전 성적 2012-13시즌 70-75 KB / 패 2013-14시즌 74-76 KDB / 패 2014-15시즌 60-75 신한은행 / 패 2015-16시즌 84-80 KDB / 승 2016-17시즌 64-72 신한은행 / 패 2017-18시즌 67-76 삼성생명 / 패 2018-19시즌 85-89 OK저축은행 / 패 2019-20시즌 82-78 BNK / 승 2020-21시즌 55-73 신한은행 / 패 2021-22시즌 62-76 우리은행 / 패 2022-23시즌 69-85 삼성생명 / 패 2023-24시즌 66-67 삼성생명 / 패 2024-25시즌 56-64 KB / 패 2025-26시즌 66-45 우리은행 / 승 |
또한 하나은행은 이 경기에서 21점차의 대승을 거뒀다. 하나은행이 창단 이후 지난 시즌까지 20점 이상의 대승을 거둔 것은 총 13차례. 422경기에서 144승 밖에 없음을 고려하면, 그래도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은행을 상대로는 20점 이상의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2016년 1월 30일, 63-52로 이겼던 경기가 가장 큰 점수차 승리였다. 버니스 모스비와 첼시 리가 더블더블을 기록했던 경기다.
| ▲ 하나은행 역대 20점차 이상 승리 | |||
| 날짜 | 상대 | 점수 | 점수차 |
| 2015. 2. 7 | KDB | 88-67 | 21점 |
| 2015. 2. 9 | KB | 79-59 | 20점 |
| 2015. 2. 28 | KB | 88-61 | 27점 |
| 2017. 2. 23 | KDB | 66-44 | 22점 |
| 2017. 11. 22 | 삼성생명 | 92-66 | 26점 |
| 2017. 12. 27 | 삼성생명 | 93-64 | 29점 |
| 2018. 1. 6 | KDB | 74-50 | 24점 |
| 2018. 3. 7 | KDB | 84-61 | 23점 |
| 2018. 11. 12 | 신한은행 | 82-43 | 39점 |
| 2019. 12. 22 | 신한은행 | 96-74 | 22점 |
| 2020. 1. 2 | 신한은행 | 82-50 | 32점 |
| 2023. 2. 23 | 신한은행 | 95-75 | 20점 |
| 2023. 3. 3 | 삼성생명 | 92-65 | 27점 |
| 2025. 11. 18 | 우리은행 | 66-45 | 21점 |
반면,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에게는 역대 가장 큰 점수차 패배다. 위성우 감독은 우리은행에 부임한 2012-13시즌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규리그에서 20점 차 이상으로 패한 적이 없다. KB에게 58-78로 패한 적이 있지만, 이는 2023-24시즌 챔프전이었다. 2015년 KB, 그리고 지난 해 BNK에게 당했던 19점차 패배가 정규리그에서 가장 큰 점수차 패배였다. 곧, 위성우 감독은 감독 데뷔 후 427경기 만에 처음으로 정규리그에서 20점 이상의 대패를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21점차는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을 다 포함해도, 위성우 감독이 당한 가장 큰 점수차 패배다. 13시즌 동안 84번의 맞대결에서 15%의 승률밖에 기록하지 못했던 하나은행이 우리은행과 위성우 감독에게 가장 확실한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
| ▲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우리은행 15점차 이상 패배 경기 (붉은 글씨는 플레이오프 및 챔프전) | |||
| 날짜 | 상대 | 점수 | 점수차 |
| 2012. 10. 21 | 삼성생명 | 57-73 | 16점 |
| 2012. 10. 27 | 신한은행 | 48-66 | 18점 |
| 2014. 3. 5 | KB | 58-75 | 17점 |
| 2015. 1. 12 | KB | 55-71 | 16점 |
| 2015. 2. 12 | KB | 64-83 | 19점 |
| 2015. 11. 25 | KB | 54-70 | 16점 |
| 2019. 2. 23 | KB | 59-74 | 15점 |
| 2021. 1. 1 | KB | 58-74 | 16점 |
| 2021. 3. 3 | 삼성생명 | 47-64 | 17점 |
| 2022. 3. 27 | BNK | 62-78 | 16점 |
| 2024. 4. 10 | KB | 58-78 | 20점 |
| 2024. 4. 14 | KB | 60-78 | 18점 |
| 2024. 11. 2 | BNK | 54-70 | 16점 |
| 2024. 12. 4 | BNK | 50-69 | 19점 |
| 2025. 11. 18 | 하나은행 | 45-66 | 21점 |

(3) 추락일까?
우리은행의 개막전 패배는 팬들에게 주는 충격도 크다. 21점차의 대패도 대패지만, 우리은행이 지난 13년간 천적으로 군림했던 하나은행에게 패했다는 부분에서 그런 효과가 더 배가되는 것 같다. 주축 선수들이 빠진 상황에서도 지난 시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우리은행의 한계가 왔다는 반응도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추락일까?
속단하기는 이르다. 우리은행이 개막과 동시에 독주를 이어갔던 시즌도 많지만 초반의 불안함을 시즌을 통해 수정했던 적도 적지 않다. 그리고 개막전에서의 부진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상황인지는 이후의 몇 경기를 더 지켜봐야 한다. 김단비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았고, 철저하게 고립됐다. 이민지가 두자릿 수 득점을 올렸지만, 승부처였던 2-3쿼터에는 침묵했다. 최고의 도우미였던 이명관도 철저히 부진했고, 우리은행의 빅맨 자리를 십시일반으로 채워야 할 자원들의 역할도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이번 시즌 꾸준히 이어질 약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은행은 경기가 안풀려도 어쨌든 상대에게 앞설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인 몸싸움과 투지, 그리고 강력한 수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모두 하나은행에게 졌다. 하나은행이 비시즌 연습경기에서 완전히 달라진 적극성과 운동량, 몸싸움을 앞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우리은행 선수들은 충분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우리은행이 이미 수년동안 누구에도 뒤지지 않게 준비했던 부분이며, 당연히 이번 시즌에도 갖췄던 사항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의 저항이 그동안 우리은행이 하나은행을 상대로 겪어보지 못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무쌍'을 찍으며 사태를 해결했던 김단비의 공격이 상대의 어린 선수에게 제지당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오자, 우리은행의 다른 선수들이 집단으로 당황했고, 제 플레이를 가져가지 못한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승부는 결정됐다.
박혜진, 김정은, 박지현, 최이샘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했던 시절과는 분명 차이가 나는 우리은행의 체급이다. 김단비라는 특급 에이스가 존재하지만, 김단비가 혼자 해결해야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꼬이게 되면 예전과 달리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지난 시즌에도 증명됐다. 게다가 야투도 듣지 않았다. 우리은행에게 반드시 필요한 외곽이 응답하지 않았다. 해야 하는 역할이 워낙 많은 김단비는 지난 시즌부터 3점슛 성공률이 부쩍 떨어졌다. 외곽에서의 지원은 두 아시아쿼터 선수들과 이민지, 이명관, 심성영 등이 더 적극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이 보적했다. 심성영의 3점이 터졌을 때는 이미 전세가 기울었고, 이민지는 11점을 넣었지만 3점슛은 7개를 시도해 모두 실패했다. 결국 우리은행의 모든 불안 요소가 모두 불거져나온 개막전이었다.
우리은행이 가장 잘하는 부분을 하나은행이 들고 나와 우리은행을 깨뜨렸다. 하지만 다른 팀들도 우리은행을 상대로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은행이 같은 방식으로 연달아 무너질까? 한 번 약점이 드러나면 다른 팀에게도 지속적으로 같은 공략을 당하기 마련이지만, 우리은행은 이런 부분에 상당히 대처가 잘 되는 팀이다. 아직까지 한엄지, 유승희, 이다연이 가세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지금의 스쿼드를 갖고도 바로 다음 경기에서 회복의 기미를 만들 저력은 있는 팀이다.

(4) 기대되는 스타트
이상범 감독은 하나은행을 잡초라 했고, 젊은 선수들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 리빌딩 팀이라고 보기 좋다. 일단 이번 시즌의 성적보다는 장기적인 비전이 우선이라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하나은행보다 신한은행이 더 강하다. 이상범 감독은 리빌딩이 예상되는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단순히 리빌딩을 할 거 였으면 이 팀이 나를 부를 이유가 없다"고 했다. "무조건 플레이오프에 들 것이고, 그 후에는 대권까지 노리겠다"고 했다.
연습경기를 보고 하나은행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평가했던 것은 단순히 경기를 이겨서가 아니다. 이전까지 하나은행이 비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일 때는 경기를 이기는 능력, 운영과 전술적인 측면에서 버텨가는 방법 등에서 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정규리그 시작 후 플랜 A가 막힐 때 이를 풀어가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말하면 '살이 빠졌나'라는 느낌이었고, '몸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경기 내내 쉼없이 움직였다. '젊기 때문에 체력과 운동량으로 상대를 앞서야 한다'는 말은 하나은행이 창단한 이후 거의 매년 지속됐던 이야기지만, 제대로 구현된 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그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남자 농구에서 충분히 단련된 이상범 감독의 전술적인 특별 노하우가 있었을까? 이상범 감독은 개막 직전에 이 부분에 대해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나은행 선수들에 대해 "새로운 걸 집어 넣어야 하는 수준이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에서 덜어내야 한다"고 했다. 농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피지컬의 움직임을 강조했다. 높은 농구 지능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것으로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꾸준히 경기를 뛸 선수 중에서 농구를 알고 하는 선수는 이이지마 사키 한 명 뿐이라는 것이 이 감독의 설명이다. 그래서 복잡하고 전략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응용은 오히려 선수들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박신자컵을 통해 실패를 경험하며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이상범 감독이 말한 농구는 '기본'과 '단순함'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선수들은 쉼없이 달리고 부딪쳐야 하고, 이를 위해 체력과 운동량에 중심을 뒀다. 10월 이후 연습 경기에서 이 부분이 성과로 나타나자 선수들에게도 자신감이 생겼다.
하나은행 선수들은 자신들이 가져갈 장점에 대해 '4쿼터 집중력'이라고 했다. 그동안 하나은행에게 유독 없었던 부분이다. 그들은 체력적인 면에서 앞서기 때문에 4쿼터에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은행과의 개막전에서 이 부분이 실제로 드러났다. 4쿼터 종료 3분 45초 전 심성영에게 3점슛을 허용했지만, 이 때 하나은행의 정현은 심성영에게 연결되는 볼을 뺏으려고 페인트존에서 상당히 먼 거리를 달려나갔다. 4쿼터에도 그렇게 코트를 누빌만큼의 여력과 집중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개막전에서 단 한 명도 30분 이상을 뛰지 않았다. 풀타임을 뛴 이민지를 비롯해, 김단비, 세키 나나미가 30분 이상을 뛴 우리은행과 확실히 달랐던 점이다. 양인영이 출전하지 않았고, 김시온이 부상으로 결장 중임에도 선수들의 출전시간이 잘 관리가 됐다. 이를 토대로 선수들은 체력과 운동량의 100%를 발휘했고, 후반에만 뛰는 것으로 고정된 베테랑 김정은도 단 2점에 그쳤지만, 수비의 중심을 잡으며 우리은행의 반격을 저지했다. 적극적으로 리바운드에 가담하며 6명이 5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은 점도 인상적이다. 여러 선수가 비슷한 시간을 뛰며, 코트에서 체력과 에너지 레벨을 균등하게 유지하고 리바운드를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는 모습은 어찌보면 일본 여자농구와도 닮았고, 경기 내내 올라붙는 수비의 모습은 과거 우리은행과도 비슷하다. 구분의 의미는 없지만 백코트 자원에 가까운 고서연과 박소희가 17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낸 것도 그런 느낌을 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하나은행의 이런 흐름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외곽슛이 계속 위력을 발휘해야 한다. 많이 뛰면서 상대를 흔들고 안에서 꾸준히 싸워주는 가운데, 만들어진 찬스에서 확률 높게 성공을 해줘야 체력 소모 싸움에서 힘을 낼 수 있다. 하나은행은 이날 26개의 3점슛을 시도해 9개를 성공했다. 고서연, 박소희, 정예림, 정현 등 4명이 2개를 성공했다. 특히 승부처에서 연속 3점슛이 터지면서 우리은행을 좌절시켰다. 과감하게 던졌고, 효과적으로 꽂혔다.
하나은행은 지난 시즌 3점슛 최하위 팀이다. 모든 팀들이 경기당 최소 6개 이상의 3점슛을 성공했지만 하나은행은 경기당 4.8개에 그쳤다. 그런 와중에 성공률도 22.3%로 꼴찌였다. 고소연이 퓨처스 무대에서 좋은 슛감을 보였고, 정예림이 2022-23시즌 부터 2시즌 연속으로 높은 확률을 보였지만, 확실한 슈터는 없는 팀이었다. 심지어 박소희는 데뷔 후 4시즌 동안 통산 3점슛 성공률이 20%에 못미친다. 예년 전력에 보강된 자원은 이이지마 사키 하나일 뿐이기에 확실한 슈터가 등장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개막전에서는 여러 선수가 중요할 때 돌아가면서 터졌다.
이상범 감독의 주마간편으로 달리는 농구와 체력 위주의 단순화 된 공략은 꾸준히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플레이를 꾸준히 지속하면서 가시적인 효과가 되어 선수들 스스로에게 당근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은 확률 높은 야투, 결정적인 3점슛의 성공이다. 하나은행이 개막전에서 보여준 이 긍정적인 효과를 1라운드에 어느 정도 평균치를 보이면서 가져간다면, 이상범 감독이 말했던 돌풍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