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訃告를 받은 느낌이었다.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12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말일까지 술을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폐업이었다. 생경했다.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할까? 묘한 괴리감이 시간과 공간을 비트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바빴나보다. 신경 써야 할 메시지였지만 그렇게 흘려 보냈고, 다시 두어 달이 지나 문득 그 문자를 다시 기억했다. 이미 마지막 셔터가 내려간 후였다.
2.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31-39, 7층 JAZZ FEEL
어쩌다가 참 추억서린 이름이 되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번 출구에서 연세대 정문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과거 명물거리(현재 명물길)로 빠지는 사거리가 나온다. 그때도 이 사거리에는 파스쿠찌가 있었고, 그 뒤편에는 형제갈비가 있었다. 신촌 상권이 활발하던 시절,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넘쳐나던 곳이다. 그 사거리에 고만고만한 높이의 빌딩들 사이에서 살짝 높은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는 건물이 있었다. 1층에는 삼성 핸드폰 매장(애니콜인지 갤럭시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이 위치하고 있었고, 3층인가 4층에는 피자헛이 있었다. 지금 네이버 지도를 쳐보니, 1층에는 미그웨치 신촌점이 있는 베스트프렌드 한국어학원 건물이라고 나온다. 거리뷰에 의하면 건물 사진이 위와 같이 뜬다. 가장 윗 층인 7층에 재즈필이 있었다.
3.
내게 신촌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이었다. 지금도 차를 달리면 30분내에 도착할 곳이지만, 한 번에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어 애매한 곳이었다. 삐삐 세대인 우리에게 '신촌 현대 백화점 정문' 혹은 '신촌 현대백화점 시계탑'은 무척이나 보편적이었던 약속 장소였지만, 또래에 비해 이곳을 지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등학생 시절에는 놀이터였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뜸해졌다.
안 해 본 것 없이 충분히 잘 놀았던 날나리지만, 놀이 문화 자체에 심취할만큼 집중력이 좋지는 않았다. 학교 근처에도 특별히 자주 가는 장소를 정하지 않았었다. 공연 때문에 홍대 쪽은 갈 때가 있었지만 그 기간도 채 1년을 넘기지 않았다. '클럽'보다 '나이트' 문화에 가까운 세대지만, 춤에 관심이 없고, 저열한 몸뚱이를 놀릴 재주도 없었기에 나이트는 그저 양주 마시기 좋은 곳 정도로 인식했다. 그러다보니 자주 가는 곳은 강남 아니면 이태원. 그나마도 지금과는 퍽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남들 보다 일찍 맥주-소주-막걸리의 대중성에서 벗어나면서 바(BAR)도 또래보다 일찍 친숙해졌다. 한 곳에 앉아만 있으면 누가 특별히 귀찮게 하지도 않았기에 바는 나이트와 전혀 다른 공간이었고, 기호에 따라 자주 들렀던 '원스 인 어 블루문', 'JJ마호니스', '닉스 앤 낙스' 등은 하나 둘 추억이 되어버렸다. 가장 열심히 내 시가를 받아줬던 사람과는 이번 생에 다시 보지 않기로 약속을 했고, 모던 바에 대해 숱하게 강의를 했던 친구도 이제는 기억 너머의 얼굴로 더 익숙하다. 기분 좋은 날, 연주와 노래를 술 값 대신으로 넘기면서도 "내가 손해 보는 것"이라고 투덜대던는 것도 나름의 가치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참 치기 어린 행동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재수없는 짓이었을 거다. 그 시절의 나는 시가와 로얄 샬루트만 제공되면 어디든 만족스러웠다.
군 복무와 유학을 마치고 머리 속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던 때, 문득 재광이 형이 자신의 아지트를 소개했다. 거기가 재즈필이었다. 고향은 창원이면서 합정에 오래 살아 마치 이 지역 토박이 같았던 재광이 형이 공유해 준 곳이 재즈필 하나 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의 장소들 중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마지막까지 남은 곳은 재즈필 뿐이었다.
오후 2시부터 새벽까지 문을 열었던 이 곳에서 참 많은 기억을 쌓았던 것 같다. 퇴근 후에 가도 스스럼이 없었고, 약속 없이 가도 낯설지 않았다. 자주 어울리던 사람들의 아지트였고, 때로는 그 외의 다른 사람과, 혹은 혼자서 시간을 잔혹하게 살해하기 위한 용도로 자주 들렀다.
4.
ROYAL SALUTE 21y, JOHNNIE WALKER BLUEL, GLENFIDDICH 15y, CAMUS XO, PINK SQUIRREL
돈이 남아 비싼 술을 마시며 허영을 즐긴 건 아니었다. 일찌감치 알콜성 지방간 판정을 받고, 위 세척 후 눈을 뜨자마자 의사의 독설을 들었던 나로서는, 자주 갖는 술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주종이 비쌌지만 횟수로 치자면 일상으로 음주를 즐기던 이들과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같은 입장이었고, 이 곳의 호스트같은 게스트였던 재광이 형과 특히 자주 어울렸다. 그리고 재즈필은 영수증에 7자리 숫자를 아무렇지 않게 찍어주던 강남의 바에 비해 가격 또한 착했다. 남들이 좋다고 하면 괜히 따라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발렌타인은 일부러 피했다. 생각해보면 굳이 가릴 이유도 없는 것을... 그런데 여전히 누가 위스키를 권하면 여전히 발렌타인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나름의 치열함이 침전되어 있던 시절이지만, 편했고,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좋은 바텐더들이 있었기에, 그 시간마저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은 악명 높은 신촌에서 어떻게든 차를 세울 곳을 찾았고, 바텐더의 소소한 심부름으로 번이나 초밥을 사갔던 적도 있었다. 바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당시 여자친구도 재즈필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퍽 관대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심지어 축구 서포터들의 송년회를 했던 기억도 있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행사였지만, 그 마저도 허락을 해줬던 곳이다. 술 한 병 사는 것보다, 오로지 마시는 것 만을 좋아했던 종화 형은 취해서 졸다가 바 의자에서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 만취해서 폭주하는 여성분을 바텐더 대신 챙기러 뛰어나갔던 날도 있었다. 물론 나는 구경만 했다.
몇 번의 리모델링과 변화를 겪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고, 그렇게 추억이 빛바랬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했던 바텐더들도 바뀌었지만 재즈필 특유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 안에서는 마치 처음 재즈필을 방문했던 것처럼, 그 향수 속에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가 키핑해 둔 술을 찾아가라는 폐업 메시지였다.
5.
결국 마지막을 함께하지는 못했다. 오랜 친구의 부고를 듣고도 장례식에 불참한 느낌이 뒤늦게 밀려왔다. 죄책감보다는 아쉬움. 마지막 남은 술을 찾아가지 않은 것은, 그 곳에 남겨뒀던 2~30대 시절의 손 때 묻은 기억들을 애써 소환하지 않은 것이라 변명하고 싶다
아주 가끔 저 앞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7층을 올려다본다. 나름 전망이 참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새벽의 신촌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하루의 번잡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신촌의 새벽을 다른 시선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상당히 새로웠고 상쾌했다. 열린 공간을 눈에는 참 많이 담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게으름은 나의 발목을 잡는다.
몇 번의 생일, 몇 번의 연말연시, 몇 번의 크리스마스, 몇 번의 명절을 저 곳에서 보냈다.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서 찾으면 나올 법 하지만, 어디에 두었는지를 잊은 앨범처럼, 이제 재즈필은 실체가 아닌 기억의 범주에 전설처럼 존재한다. 사실, 폐업에 즈음하여 우리의 발걸음도 뜸했다. 죽어가는 상권에 일조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할애할 수 있던 시간의 배려가 그때에는 유독 각박했다. 언제든 돌아와 모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여겼는데, 재즈필이 사라지면서, 갑자기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마음 편히 시간을 의탁할 곳을 찾지 못했다. 어디를 가도 마음 편한 익숙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우리는 아지트가 없음을 토로했고, 그 이유가 재즈필이 문을 닫아서라고 했다.
조 아카리의 만화 <바텐더>에서 ‘카운터 앞에 서있다면 그게 누구든 바텐더는 손님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재즈필에서 우리가 혹은 내가 원했던 건 그저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볼 때, 그때가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필요했던 시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병인과 상태는 중요하지 않다. 절실했던 처방이 그것이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받을 수 있는 위로. 비록 바테이블에서의 흡연이라는 찬란한 자유는 새로운 법에 의해 제한됐지만, 달링하버에서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던 그 철없는 치기를 굳이 발휘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최소한의 안도. 그리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아련한 기억.
죽기 전 세상에 살았던 기억이 필름처럼 감긴다면, 아마도 그 컷들 속에서는 다시 한 번, 그때의 재즈필을 만날 수 있겠지.
"빨리 안 오면, 여기 남은 것도 다 마셔야 돼요!"
특별히 기념하지 않던 내 생일을 챙겨줬던 어느 겨울. 우리 밖에 남지 않은 재즈필에서 오랜 만의 폭음에 테이블에 널부러져 있던 나에게 정겹게 유혹하던 그 나른함이, 태엽 감긴 오르골의 환청처럼 아련함의 필름 속에서 꼭 마중 나오기를 소원한다.
'fAntasize | 글 > oTaku'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 이두나! (4) | 2023.12.22 |
---|---|
[음악] Endless Rain (2) | 2023.11.28 |
[영화] 죄의식의 해방은 심연의 죽음일까? - 렛 미 인 (0) | 2022.03.13 |
[뮤지컬] 죽음,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 '황태자 루돌프' (0) | 2015.02.08 |
[뮤지컬] 가장 화려한 비극의 주인공을 만난다 …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0) | 2015.02.08 |